'노조 재정도 회계감사' 개정 추진…"자주성 침해" 반발

김지현 기자 2022. 12. 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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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국고보조금·조합비 모두 회계감사 받아 내역 보고
"깜깜이 불가능한데 노조에만 요구…길들이기 의심"
정부 '제도개선' 검토…과도한 통제시 ILO 협약 위반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대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12.1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지현 기자 = 정부가 노동조합의 재정운영 투명성 검증 강화를 시사한 가운데 노동계가 "자주성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 재정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에 위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고용노동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노조 재정운영 투명성 논의는 지난 18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노조 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서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한 총리는 "노조의 재정 운영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부가 과단성있게 적극 요구하겠다"고도 했다.

당정 회의에서 이 같은 총리 발언이 나온지 이틀 만인 이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노조 회계감사를 공인회계사가 맡고 대기업·공공기관 노조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 자료를 행정관청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관련법에 따라 국고보조금에 대해 외부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조합비 운영 내역을 조합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정부·여당이 '깜깜이' 의혹을 제기하며 '통제 강화'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는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사단법인, 종교단체 등 자주적으로 운영되는 여러 조직이 있는데 노조에 대해서만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노조 자주권 침해이자 길들이기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내년 초 노동개악 시도를 앞두고 노동계의 반발과 저항이 뻔한 상황에서 이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수순"이라며 "정부와 국민의힘은 노조에 대한 음해와 거짓 선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양대노총은 자체 규약에 따라 회계감사를 받고 대의원대회를 거쳐 조합원들에게 재정 운영을 공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단위로 회계감사를 선임하고 결과를 대의원대회에 보고해 의결하는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노총 역시 매년 정기 대의원대회 안건에 결산보고 및 회계감사보고를 올리고 있다.

국고보조금 집행 내역은 보조금관리법에 따라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정부에서 지원받은 26억9400만원 규모의 국고보조금 집행내역에 대해 회계감사를 받았다. 올해 국고보조금 26억300만원에 대해서도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입주한 경향신문사 건물 보증금 30억원 외에 정부 지원금을 받은 것이 없어 감사보고서 제출 의무가 없다.

노조법은 노조가 재정 운영을 투명하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노조 대표자는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를 실시해야 하며(25조), 회계연도마다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해야 한다(26조)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는 이 같은 법적 틀을 기준으로 자체 규약을 두고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노조에 재정운영 자료를 '요구'한다면 어떤 법규를 근거로 할 수 있는지도 논란이 된다. 노조법에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 노조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27조)는 규정만 있을 뿐이다. 그간 정부는 노조 내부에서 회계내역 공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한적으로 이 규정에 근거해 회계자료를 요구해 왔다.

고용부는 제도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이 조항만으로 정부가 노조 재정을 일률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행 보조금관리법이나 노조법 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으니 제도개선 방안도 검토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른 나라의 제도를 참고해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는 노조가 행정관청에 회계를 보고해야 하고, 미국에서는 연간 25만달러 이상 예산을 운영하는 노조에 대해 예산 보고 의무를 두고 있다.

노조법 개정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노조 운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ILO 결사의자유 기본협약(87호)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이 협약을 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 ILO 결사의자유 위원회는 노조 재정에 대한 정부 당국의 통제는 '정기적인 보고서 제출 의무'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fi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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