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얼라이브] "전문용어 순우리말 대체어도 자리잡기 쉽지 않아"

박정연 기자 2022. 12. 2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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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학계, 정부, 언론, 국민 공론장 마련 필요"
왼쪽부터 송진웅 서울대 교수, 이동환 서울대 교수, 채종철 서울대 교수, 김재용 과기정통부 디지털소통팀 과장, 원용숙 ETRI 기술전략연구센터 책임기술원, 이대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센터장

과학 분야 전문가들은 전문용어를 쉽게 바꾸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고충이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기본적으로 전문용어의 양 자체가 방대하며 순화 대상이 될 용어를 선정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쉬운 대체어를 마련해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그대로 사라지는 경우 또한 많다고 설명했다.

제3회 사이언스얼라이브는 '공감하는 과학용어 만들기'라는 주제로 20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렸다. 동아사이언스가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사이언스 얼라이브는 과학자와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과학용어와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행사다. 올해 행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기초과학연구원(IBS) 주관, 한국과학창의재단 후원으로 열렸다.

이날 발표에 나선 이동환 대한화학회 화학술어위원회 위원장(서울대 화학과 교수)은 “2022년 노벨화학상에서 ‘클릭화학’이란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전까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용어”라며 “우리말로 옮기면 ‘생체직교화학’인데 일반 대중들이 이 뜻을 쉽게 이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전문용어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만 이 때마다 생소한 개념을 쉽고 간결한 용어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방대한 전문용어를 모두 순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앞서 대한화학회는 화학분야 전문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는 대규모 작업에 나섰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협업해서 2026개 표제어를 집필한 화학백과를 구성했다.

하지만 수많은 전문용어를 대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동환 위원장은 “문헌에 보고된 화학물질만 2억개이며 현재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분자는 2억3000만개 정도나 된다”며 “모든 전문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순화 대상이 될 단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순화된 용어가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기도 한다. 독일식, 일본식의 원소, 화합물명을 미국식으로 바꾼 시도가 대표적이다. 앞서 대한화학회의 제안에 따라 ‘저마늄(게르마늄)’, ‘아이오딘(요오드)’, ‘메테인(메탄)’등의 용어가 표준용어로 도입됐지만 일상 속에서 쉽게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이동환 위원장은 “용어를 바꿔쓸 때는 바꿔쓰는 이유에 대한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쉬운 용어가 보편화되기 위해선 이같은 대중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학계와 대중 모두 순우리말보다 영어 전문용어를 선호한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적절한 대체어가 있음에도 널리 쓰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날 발표에 나선 채종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전 한국천문학회 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는 “한자어, 고유어, 영어 표현 중 어느 하나를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에는 음역(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김)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천문학은 순우리말로 바꿔쓸 수 있는 용어가 많은 전문분야 중 하나다. ‘태양’은 ‘해’로, ‘항성’은

‘별’, ‘은하’는 ‘미리내’로 각각 바꿔 쓸 수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도 이러한 고유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채종철 교수는 “음역인 ‘헤일로(Halo)’는 ‘해무리’, ‘달무리’로 옮겨 쓸 수 있으며 ‘블랙홀(blackhole)은 ’검은 구멍‘으로 사용하는 작업이 이뤄졌지만 결국 학계나 대중 모두에게서 자리잡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적절한 순우리말이 있더라도 연구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면 대중들 또한 영어 표현을 사용하게 되기 쉽다”고 분석했다.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어려운 전문용어를 쉬운 용어로 순화하는 작업은 학계, 정부, 언론, 국민 모두의 소통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지 각계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원용숙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전략연구센터 책임기술원은 “연구기관에서도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 분야가 다른 연구자들 간에 소통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과학기술과 관련한 신조어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쉬운 과학용어를 사용하기 위한 공론장이 구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대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센터장은 “교육과정에서 어떤 전문용어를 사용할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교육을 통해 인식된 용어를 다른 용어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재용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소통팀 과장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문용어는 억지로 바꾸는 것보다는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여러 개의 후보를 정한 뒤 자연스럽게 채택되는 방식이 바람직하겠다”며 “전문가, 언론, 국민이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정부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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