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고착화 과정, 한국 미래 비전 등 대목 수정해야"

김태훈 2022. 12. 2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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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시민사회,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비판
"분단 고착화, 6·25전쟁 맥락에서 배울 필요 없어"
한국 미래 비전이 '분단 극복'? "악용될 소지 크다"
지난 8월 첫 공개 직후 좌편향 논란에 휩싸인 ‘2022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이 건전한 보수 진영의 요구를 반영해 일부 수정되었으나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북한과 관련된 서술에서 반(反)대만민국의 그릇된 시각을 완전히 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계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한국이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고 문화 발전을 이룩한 사실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6·25전쟁 도중인 1950년 11∼12월 함경남도 개마고원 부근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 당시 미군 장병들이 영하 30도의 혹한을 버티는 모습. 최근 장진호 전투 72주년을 맞아 유엔군사령부는 이 사진을 유엔사 SNS에 올리며 “한국의 극심한 추위를 견뎌내고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운 모든 유엔군 병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유엔사 SNS 캡처
20일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역연)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 14일 ‘2022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을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에 보고했다. 이는 8월에 발표했다가 “심각한 좌편향 의식과 종북적 태도를 드러냈다” 등 여론의 질타를 받은 원안을 상당 부분 뜯어고친 것이다. 한국이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수립되었음을 명기한 점, 고교 한국사의 전근대사 및 근현대사 비율을 조정해 전근대사를 33% 수준으로 확대한 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역연의 지적이다. 가장 잘못된 대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냉전 체제’라고 파악하는 점이다. 역연 측은 “‘냉전 체제’라는 말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용어”라며 “이 용어로는 1941년의 미·영이 주도한 대서양헌장과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 의해 성립된 유엔 체제와 자유무역질서라는 현대 세계질서의 두 축을 포괄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로 6·25전쟁과 분단의 고착화 과정을 병치(竝置)한 점이다. 이렇게 하면 6·25전쟁 당시 자유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유엔군의 개입 ‘탓에’ 민족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단이 고착화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역연은 “6·25전쟁은 전 국민이 학습할 필요가 있지만, 분단의 고착화 과정에 대해서는 반드시 6·25전쟁의 맥락에서 학습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로 한국의 미래 비전과 한국 국민의 사명을 ‘한반도 분단과 동아시아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제시한 점이다. 해괴하기 그지없는 이 같잖은 비전에 대해 역연은 “‘한반도의 분단 극복’은 시각에 따라서는 북한 중심이나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로의 통일도 긍정하는 가치관을 주입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평화의 실현 문제도 세계적인 시야가 아니라 중국과 북한 등과의 갈등 극복에만 적용되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부 장관이 지난 10월10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캐나다 묘역에 있는 어느 6·25전쟁 전사자 묘비를 어루만지는 모습. 이곳에는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캐나다 군인이 400명 가까이 안장돼 있다. 졸리 장관은 “이분들야말로 오늘날 번영하고 민주적인 대한민국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졸리 장관 SNS 캡처
이처럼 오류투성이인데도 ‘2022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은 국교위 의결을 거쳐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오는 31일까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역연은 교육부, 그리고 국교위를 향해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한 제안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역연은 “6·25전쟁을 ‘대한민국의 수호’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6·25전쟁의 결과 1953년 맺어진 한·미동맹이 한국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유세계와 연대하여 오늘의 발전을 있게 한 중요한 주춧돌임을 역사교과서에 명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오는 2023년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자 한·미동맹 출범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역연은 한국이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고 문화 발전을 이룩한 사실도 역사교과서를 통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60년대 이래 자유무역의 기초 위에 산업화를 달성한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발전함으로써 많은 저개발국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명시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가 한국의 경제, 그리고 문화에 자부심을 갖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연 관계자는 “교육부와 국교위가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해주기를 진정으로 염원한다”며 “앞으로도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 내용 개선에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배우 이정재가 지난 9월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기뻐하는 모습. ‘오징어게임’은 에미상에서 비(非)영어권 드라마로는 처음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했다. 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고 문화 발전을 이룩한 나라로 많은 저개발국의 모델이 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역연은 한국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여러 단체들의 연합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 엉터리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10월10일 ‘한국 역사학계가 한국을 부정하고 그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려는 세력에 의해 장악돼 있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창립했다. 청구역사연구소, 역사연구원, 교육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교육정상화를바라는전국네트워크, 자유역사포럼, 전국학부모단체연합, 국사교과서연구소, 미래생각교수모임, 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 교육자유회의, 한국근현대사편향성시정협의회, 학교바로세우기전국연합회, 대한민국교원조합, 올바른교육을위한교사연합, 신전국대학생협의회,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이승만학당 등 단체들이 참여 중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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