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법원장 후보 추천제, 위법 소지 크다

2022. 12. 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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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내년 전국 20개 법원으로 확대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와 함께

개혁 빌미로 한 사법 포퓰리즘

재판 지연되고 예규도 큰 문제

김명수 5년 사법의 정치화 심각

인사권 남용 방지할 개혁 시급

내년 1월 인사를 앞두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19년에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양승태 대법원장 재직 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명분으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와 함께 김명수 대법원장이 핵심 개혁 과제로 추진한 것이다. 종전 대법원장이 임명하던 법원장 인사를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와 뜻’을 반영해 소속 법원 판사들의 투표로 2∼4인의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그중 한 명을 법원장에 임명토록 했다. 지금까지 13개 지방법원에서 시행됐는데 내년부터 20개 법원으로 확대된다.

논란의 본질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사법의 관료화’를 타파하고 재판의 독립과 사법 기능 향상에 기여했는지 여부와 관련 법적 근거의 적절성 여부다. 그런데 모두 문제가 적지 않다. 지난 5년간 1심 선고에 2년 이상 걸린 장기미제 사건은 민사소송이 3배, 형사소송이 2배로 늘었다. 과거 엄격한 근무평정으로 이뤄졌던 고법 부장 승진이 폐지되고, 지방법원장 후보를 능력이나 실적과 무관하게 소속 판사들의 투표로 뽑으니 열심히 연구하고 재판할 동기가 사라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최근 2년 새 유능한 중견 판사의 퇴직이 2배 이상 증가한 것도 법관 인사제도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법원 내부에서도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다 득표자가 법원장에 임명되지 않거나 추천되지 않은 판사가 법원장에 임명되는 사례가 있고, 대법원장이 자신의 측근을 법원장에 앉히기 위해 후보 추천에 유리한 수석부장판사로 임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법원장 후보가 추천된 12개 법원 중 서울중앙지법, 서울남부지법을 포함해 10개 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가 후보로 추천됐다. 후보 중 한 명을 대법원장이 법원장으로 임명한다는 점에서 ‘사법의 관료화’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고 ‘사법 포퓰리즘’ ‘법원의 인기투표’라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법적 근거다. 법원조직법 제44조 1항은 ‘판사의 보직은 대법원장이 행한다’고 규정하고, 구체적 사항은 대법원규칙인 ‘법관인사규칙’에 정해져 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대법원예규로 규정했는데, 법원조직법은 물론 대법원규칙에 근거 없이 하위 규정인 예규로 정한 해외 사례는 없다. 프랑스는 법원장 인사와 관련, 사법권 독립 보장을 위해 의회에서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헌법 제65조에 못 박아 두고 있다.

예규에서 ‘법관 재직 10년 이상인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법원장 후보 자격을 제한한 것도 문제다. 법원조직법 제44조 2항은 15년 이상 판사 등의 직에 있던 사람 중에서 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할 뿐 고법 부장판사의 법원장 임명에 제한이 없다. 법원 내부 의견 수렴도 없이 예규로 법원장 임명을 원천 봉쇄한 것은 위법 소지가 크다.

사법의 신뢰가 흔들리면 법치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국민이 법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도 법이 공정하고 사법부가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고 법관의 신분 보장을 규정하는 것도 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수호하라는 국민적 명령이다. 김 대법원장이 임기 5년 동안 남긴 성과는 참담하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확보하고 사법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할 중대한 책무를 외면하고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이념과 성향을 같이하는 특정 그룹 판사들을 대거 중용하면서 사법의 정치화와 공정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심해졌다.

사법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핵심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인사권 제한이다. 법관의 독립은 외부적 독립 못잖게 대법원장의 자의적 인사권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 헌법 개정 사항이 아닌 한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법관의 독립과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개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법권 독립 보장의 제도적 장치로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법관 부동성(不動性) 원칙’의 도입, 법관의 인사와 징계를 관장하는 최고사법평의회의 신설, 판사의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법관 근무평정의 강화 및 승진 제도 도입 등이 본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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