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오현규, “16강 기다리던 때 흥민이 형 말 기억 남아”
[스포티비뉴스=상암, 허윤수 기자] 12년 만에 16강 진출을 해낸 대한민국. 수많은 영웅 속에 비록 등번호가 없었지만, 누구 못지않게 헌신했던 이가 있었다. 바로 오현규(21, 수원삼성)다.
지난 16일 ‘스포티비뉴스’와 만난 오현규는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거 같다”라며 귀국 후 바쁜 일상을 말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새로 소집한 선수에겐 빠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표팀의 철학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시간을 충분히 줬다. 그러나 오현규만큼은 달랐다. 첫 소집에 이어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바로 A매치 데뷔전까지 치렀다.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오현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데뷔할 줄 몰랐는데 감독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슬란드전 이후 벤투 감독은 오현규의 카타르행을 확정했다. 최종 명단 발표보다 앞서 자기 뜻을 오현규에게 전달했다.
오현규는 “경기가 끝난 뒤 감독님께서 따로 부르셔서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몸에 전율이 돋았다”라면서도 “사실 감독님께서 부르실 때 약간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살짝 들었다”라며 좋은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예비 명단으로 동행한 만큼 독특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가 출전하게 된다면 기존 대표팀의 계획이 꼬였다는 걸 의미했다.
오현규는 “예비 선수로 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아주 기뻤다. 사실 명단이 바뀐다는 건 부상 선수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면 정말 불편했을 것 같은데 내가 들어가지 않고 잘 마무리돼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월드컵이란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주축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20세 이하(U-20) 월드컵은 코로나19로 취소됐다. 이번 대회가 첫 월드컵 경험이었다. 그는 “U-20 월드컵을 하지 못해 아주 아쉬웠다. 이번 무대를 밟진 못했지만, 함께한 것만으로도 많이 느끼고 배웠다. 다음을 기약할 기회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루이스 수아레스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을 좋아하기도 했고 워낙 대단한 선수들 아닌가. 그런 선수들과 같은 조에 속해 한 번이라도 보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팬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예비 선수. 오현규는 카타르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그는 “훈련은 똑같이 진행했다. 경기장도 사실 라커룸까지는 같이 들어갔었다. 경기를 못 뛰는 선수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처음엔 같이 있어도 되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형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공도 줍고 했다”라며 사소한 것부터 도움을 줬던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이 16강 진출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오현규는 씬스틸러로 활약했다. 손흥민을 비롯해 경기를 마친 선수들에게 휴대전화로 우루과이-가나전 결과를 중계했다.
오현규는 “벤치에서 우루과이-가나전을 함께 봤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모르기에 빨리 전해주고 싶었다. 사실 흥민이 형은 포르투갈전 승리만으로도 벅차올랐다. 돌아보면 타 구장 결과보단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려야 했던 거 같다”라고 돌아봤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경우의 수를 어떻게 파악해둘까. 오현규는 “경기 전날부터 식당에서 경우의 수를 따진다. 우리 조뿐만 아니라 다른 조도 계산해본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라며 웃었다.
한국이 우루과이-가나전을 기다리며 하프라인에 모여있는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됐다. 영국의 ‘로이터’가 선정한 월드컵 10대 명장면에 꼽히기도 했다.
오현규는 “그때 흥민이 형이 하신 말씀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흥민이 형은 ‘모두가 자랑스럽고 고맙다. 경기를 뛴 선수와 못 뛴 선수도 정말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흥민이 형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라며 하프라인 대화를 전했다.
이어 “기쁨의 욕 같은 건 나오지 않았고 서로 너무 좋아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라며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기적적으로 16강에 오른 한국은 FIFA 랭킹 1위 브라질을 만나 높은 벽을 느꼈다. 특히 완벽한 연계 패스로 만든 세 번째 골은 팬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현규는 “다른 실점과 달리 전술적으로 완벽한 플레이로 허용했다. 그 골을 보며 충격을 많이 받았다. ‘브라질 선수들은 정말 우리와 다른 선수인가?’라는 생각과 스스로 물음표를 던지게 됐다”라면서 “다른 선수들과도 어쩔 수 없는 실점이었고 브라질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결과론적이지만 16강 상대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포르투갈을 이기고 모든 선수가 자신감이 많이 차올랐었다. 선수들도 브라질이 아니었다면 더 높이 올라가지 않았겠느냐는 말을 많이 하더라”라고 말했다.
끝으로 오현규에게 등번호가 없는 유니폼의 의미를 물었다.
“언제든 대표팀에 가면 등 번호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기회가 있을 거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동기부여와 자극이 많이 됐어요. 4년 뒤 월드컵에서는 꼭 등번호를 달고 가야겠다는 저와 약속을 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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