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ESG 기업’ 낙인땐 치명타...무방비 中企 ‘발등에 불’
EU 수출비중 큰 철강 직접 타격
관세 증가+낙인효과 ‘이중 피해’
글로벌 무역장벽에 중기 더 위기
“정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유럽연합(EU)이 철강·비료 등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에 합의한 가운데 유럽의회도 18일(현지시간) “탄소배출권거래제(ETS) 개편을 위한 의회·이사회·집행위원회 간 삼자 합의가 타결됐다”고 밝혔다.
ETS란 산업 시설과 공장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EU 각 회원국에서 정한 수준을 초과할 경우, 초과량에 대한 배출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탄소국경세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을 수입할 때 기준치보다 초과된 배출량에 대해 수입업자가 비용을 더 내도록 하는 제도로, 해외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추가적인 관세로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CBAM 합의와 ETS 개편 등으로 유럽에서 탄소국경세 도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한다.
이번 합의로 적용되는 품목은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력·수소 등 6개다. EU는 내년 10월부터 이들 수입품의 탄소 함유량이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ETS와 연동한 탄소 가격을 추가 부과하는 조치를 시범 운영한다. 특히 탄소배출이 많은 ‘탄소집약산업’으로 꼽히는 철강·비료·알루미늄 등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제도 시행 후 첫 3년간 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당장 한국에서는 EU 수출 비중이 큰 철강 관련 업종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당장 관세 부담보다 ‘반(反)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기업’이라는 낙인이 더욱 큰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기업이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탄소배출권을 유럽이 어느 정도 인정해 줄지 여부에 따라 세금 부과액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현재로서는 한국 제품에 세금 부담이 추가될 공산이 크다.
국제기후변화 싱크탱크인 E3G 등에 따르면 CBAM 시행으로 한국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2026년 9600만유로(약 1330억원)에서 2035년 3억4200만유로(약 4700억원)로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탄소국경세 적용으로 철강업계에 연간 1억3500만달러(약 176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은 제도 시행 이후 국내에서는 알루미늄 13.1%, 철강 12.3%, 시멘트·비료 각각 1.8%의 수출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각 자료는 대부분 추산치다. 실제 부담액은 CBAM 법안의 하위 법령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중소·중견기업이다. 대기업과 달리 대부분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에너지 목표관리제 대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한 탄소 배출량 산정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도가 11월 ‘ESG 경영 및 탄소국경세’ 교육 참여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이 탄소국경조정제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BAM가 특정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중소·중견기업에 부담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시설 단위로 평가가 이뤄진다. 반면 탄소국경세는 플라스틱 등 일반 제품과 관련 제품 원료인 납사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관계자는 “대기업은 제품별로 탄소 배출량이 얼마인지 산정할 수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이런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정부도 EU의 이번 제도 도입이 새로운 ‘글로벌 무역장벽’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출산업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탄소 배출량 검증 등 인프라 확충과 기업 대응 능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다만 경제단체 관계자는 “EU가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무역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 스스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별개로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대근 기자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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