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을 품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상감
호림박물관은 개관 40주년 맞이하여 <상감-이질적인 것들의 어우러짐>전을 개최했다. 상감(像嵌)은 우리나라 옛 공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시도 되었다. 도자기에서는 바탕흙이 다른 자토(?土)와 백토(白土)가, 금속공예에서는 금과 은이, 목공예에서는 자개, 대모(玳瑁), 어피(漁皮) 등이 사용되었다. 상감은 중국에서 유입되었으나 변용되고 발전하여 우리만의 고유한 미감으로 자리를 잡고 옛 미술을 대표하는 분야가 되었다.
전시는 우리의 아름다운 청자에서부터 시작된다. 녹청색 청자 바탕에 섬세하게 꾸며진 흑백의 상감문양은 고려청자만의 독창적이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상감은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 후 그 흠에 바탕흙과 다른 색을 띠는 흙을 메꾸어 넣는 장식 기법이다. 이 기법은 고려 10세기 무렵에 등장하여 13세기에 절정에 달한다. 고려청자에 상감하는 흙은 주로백토와 자토가 사용되었다. 두 흙은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 흰색과 검은색이 된다. 녹청색 청자 바탕에 흰색과 검은색을 띄는 문양은 그 조화로움이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다음전시는 분청사기와 백자이다. 조선초기에는 청자를 계승한 분청사기, 연질과 경질의 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자기가 만들어졌다. 상감은 고려청자에 이어 이들 자기에서도 중요한 장식기법으로 활용되었다. 고려 말 상감청자와 차이가 거의 없는 듯 보이나 흑상감이 줄어들고 백상감의 비중이 커졌으며 도장으로 문양을 찍고 백토를 상감하는 인화(印花)상감이 유행한다. 흰 바탕에 자토를 상감하여 색의 대비가 뚜렷하고 문양은 간략화, 추상화 된 상감자기의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전시는 나전이다. 나전은 광채가 있는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넣거나 붙여서 장식하는 기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칠(漆)이 된 기물의 바탕에 자개를 붙여 꾸미는 이 전통이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시대에 나전기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후 조선시대에는 나전 기법이 보편화 되었다. 칠 위에 자개를 붙이고 그 위를 또 칠하고 닦아내기를 수없이 반복하면 표면은 반듯해지고 오색찬란한 나전의 광채가 드러난다. 아름다움의 완성이 결코 쉬이 될 리 없는 것을 알면서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빛나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누가 한번 손 댄 적 없이 저절로 탄생한 완벽함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 전시는 입사다. 우리의 옛 금속 공예에서 상감이 처음 시도된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금속에서 상감은 주로 기물의 표면을 선으로 음각하고 여기에 금이나 은과 같은 광택이 좋은 귀금속을 끼워 넣는다. 서로 다른 금속 재질의 색채 대비를 통해 장식효과를 얻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과 은 재질의 선을 박아 넣기 때문에 입사(入絲)라 부르고 있다.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맞고 조선시대에 더 빛난 입사공예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용품에서 보였으며 때문에 그 시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지배계층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미술품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컬렉터의 안목은 고미술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값진 작품이 있더라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극인가. 굳이 유능한 컬렉터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품 안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까지 아름다움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보영 우버칼럼리스트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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