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깨끗해서 걸리는 병, 더럽지만 안전한 자극이 약이다
(16) 위생의 역설
과학 문명으로 깨끗한 환경 되자
감염으로 인한 면역 획득도 줄어
무색·무미·무취한 바이러스 존재
도시화·세계화로 감염 위험 증폭
백신으로 면역 체계 훈련시켜야
20세기는 뉴턴의 프린키피아에 뿌리를 둔 현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전개된 지식들은 새로운 지식의 토양이 되었고,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새롭게 피어났다. 여기에는 인류의 평균 수명을 극적으로 연장시킨 현대 의학과 생명 과학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면역과 바이러스는 완전 새로운 지식 영역이었고, 이들은 막연한 공포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전염병을 과학의 대상으로 이끌어 내렸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밝혀낸 지식이 대중 상식으로 녹아들기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못한 상태에서 팬데믹의 시대가 열린 상황이다.
면역과 바이러스의 상호 작용에는 기존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이다. 단어만 보면 깨끗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정반대로 지나친 깨끗함이 오히려 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번 시간에는 위생 가설을 바탕으로 깨끗함과 더러움, 그리고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단어들을 면역학적 관점에서 탐구해 볼 것이다.
현대 대도시의 발달이 본격화한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소아마비 공포가 휩쓸고 있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poliovirus)는 위장관 바이러스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전파가 된다. 그리고 감염으로 인한 열병이 지나면 하반신 영구 마비라는 후유증을 종종 일으킨다.
그런데 당시 유행에서 이해하기 어렵던 현상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성인이 걸리면 후유증이 더 크다는 것과, 또 하나는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중산층 이상에서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전염병 위험과 위생은 반비례한다는 당시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감염이다. 대저택에서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 마비가 된다.
지금의 면역 지식을 바탕으로 이 위생의 역설을 해석해 보자. 당시는 대도시의 공공 위생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한 시기로 계층 간 위생 환경 차이가 컸다. 비위생적 환경에서는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순환하며, 엄마와 아기는 동시에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하지만 이미 면역을 획득한 엄마는 기억세포에서 빠르게 항체를 만들어내고 이는 모유로 배출되어 아기에게 전달된다. 모유의 항체는 아이의 위장관에 있는 바이러스를 중화시킨다. 이를 수동 면역이라 하는데, 최근 개발되었던 코로나 항체 치료제와 동일한 기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특정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엄마는 모유를 통해 아이가 앞으로 자주 접하게 될 바이러스에 대한 기억을 안전하게 얻도록 도와준다.
반대로 깨끗한 위생 환경에서는 바이러스와 접촉할 가능성이 낮다. 모유에는 소아마비에 대한 항체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아이도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기억을 얻을 기회가 없다. 하지만 위생적인 환경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노릇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새로운 환경과 접촉하게 된다.
이때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면 아이는 엄마의 수동 면역 도움 없이 스스로 기억세포를 획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비위생적 환경에서 양육된 아이에게는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이미 익숙한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지만, 위생적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게는 신종 바이러스로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성인이 감염되면 왜 부작용이 더 심할까? 이는 소아마비뿐 아니라 코로나19를 포함해 모든 바이러스 감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앞 칼럼들에서 여러 번 언급한대로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증상은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면역 반응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와 어른의 면역 반응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면역도 발달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면역의 발달 : 선천면역에서 적응면역으로
우리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지만, 사람은 가장 무기력한 상태로 태어나는 동물이기도 하다. 미완성으로 태어나 부모의 오랜 보살핌 속에서 완전한 개체로 서서히 발달해 나간다. 엄마의 배 속에서보다 태어난 뒤 외부 자극을 통한 발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완전히 발달한 우리 두뇌를 다른 동물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면역 역시 외부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통해 발달해야 제대로 완성되게 된다. 그런데 두뇌를 발달시키는 자극이 감각이라면, 면역에 대한 자극은 외부 항원 즉 병원체와의 접촉이다.
태어난 이후 받는 면역 자극의 중요성은 동물 실험으로 오래전 증명되었다. 통제 가능한 실험실에서는 병원체가 전혀 없는 완벽한 무균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과학자들은 생쥐 새끼를 제왕절개를 통해 얻고, 무균 환경에서 무균 처리가 된 사료를 먹이며 기르는 실험을 하였다. 이렇게 절대 위생적인 환경에서 길러진 생쥐는 건강하게 자랄 것 같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덩치는 커졌지만 면역 기관들이 하나도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이 유리 상자 안의 생쥐들은 외부 환경에 노출되면 감염으로 즉시 죽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면역의 발달 과정은 시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태어나면 모든 병원체가 새로운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면역 반응을 담당하는 선천 면역이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리고 적응 면역의 기억세포를 점차 늘려가면서 면역기관들이 성장하면 항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적응 면역 위주로 반응하게 된다. 어른이 되고 나면 주변 환경에서 흔하게 접하는 병원체 대부분에 대해 기억 세포를 가지게 되고, 이 상태에서 부작용이 심한 선천 면역 반응을 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처음 감염되면 약한 선천 면역 반응으로 바이러스의 초반 증식이 제대로 억제되지 못한다. 그리고 늦게 개시된 선천 면역은 더 강렬하게 반응해야 하고, 제대로 된 항체가 만들어지기는 시간 동안 더 강한 염증성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유년시절 또래 친구들과 단절되어 자란 루스벨트가 늦은 나이에 소아마비에 감염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익숙한 더러움’과 ‘낯선 깨끗함’
포유류의 면역 발달 단계는 비위생적 환경에서 오랜 시간 진화하면서 다듬어져 왔다. 지구에 포유류가 등장한 시기는 공룡이 지배하던 세상이었다. 포유류는 포식자의 눈을 피해 어둡고 습한 환경에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달된 능력들이 예민한 청각,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구분하는 시각, 포식자의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 그리고 위험을 예측하는 지능, 흔하게 접하는 병원체에 대한 면역 등이다.
특히 면역은 접하는 병원체의 항원을 기억해 다시 감염이 되면 효율적으로 대처하도록 발달되었다. 따라서 면역의 관점에서 익숙한 더러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낯선 새로움이 위험이 된다. ‘신종’ 바이러스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면역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너무 많은 병원체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대응이 불가능하다. 면역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량의 병원체에 노출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균의 존재는 부패 현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지가 가능하다(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인간 역시 감각을 이용해 더러운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는 시각, 미생물 부패를 감지하는 후각, 그리고 신 맛과 쓴 맛을 감지하는 미각 등을 통해 위험한 음식을 구분할 수 있다. 이런 능력들은 감염의 위험을 효율적으로 회피할 수 있었던 개체만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인간이 지나쳐 온 진화의 시간에 비하면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는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면역엔 위생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없다. 진화와 환경 변화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면역학적 질환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위생 가설이다. 과거에는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 곰팡이 등의 다양한 병원체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면역은 이것을 극복하도록 발달하였다. 하지만 문명 발전은 면역이 접하는 병원체들의 빈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공공 위생, 냉장고, 그리고 항생제의 발견은 면역의 가장 큰 적이던 세균, 기생충, 곰팡이 등의 노출과 위험을 극적으로 감소시켰다.
면역에는 '백수는 악당이다’는 말이 있다. 일정한 강도를 유지하는 경향을 가진 면역은 외부 병원체의 자극이 없으면 자기 자신의 세포를 착각해 공격하는 실수를 한다. 이를 통해 소위 선진국형 질병이라 불리는 아토피 등의 자가면역(autoimmune) 질환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일부 의사들은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기생충(비교적 안전한)을 치료가 어려운 궤양성 대장염 환자에게 일부러 감염시켜 좋은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놀고 있는 면역에 익숙한 더러움이라는 자극을 주는 시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위생 가설은 진화론만큼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증명이 어려워 가설이라는 딱지가 계속 붙어 있다.
호흡기 바이러스가 위험한 이유
면역과 바이러스 감염으로 돌아가 보자. 바이러스의 존재는 세균과 달리 감각을 통한 간접적 인지조차 불가능하다. 물과 영양분만 있으면 증식을 하는 ‘독립 영양 생물’인 세균과 다르게, 절대 세포 기생체인 바이러스는 입자 상태에서 완전 무생물이기 때문에 부패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위생에 대한 직관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세균과 같이 물이나 음식물을 통해 전파되는 위장관 바이러스는 부패에 대한 직관적 위생 관념으로 어느 정도는 같이 막아진다.
문제는 호흡기 바이러스다. 공기 중에 아무리 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해도 우리 감각은 무색, 무미, 무취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또한 현대 문명의 발전도 호흡기 바이러스의 위험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아파트와 대도시로 대표되는 밀집된 주거 형태는 호흡기 바이러스 유행에 유리하며, 항공 운송의 발달은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세계로 퍼트리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런 환경 변화가 21세기를 호흡기 바이러스 팬데믹의 시대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물이나 음식 위생과 달리 공기 위생은 보장하기 어렵다. 공기 중 바이러스 오염에 대한 감시는 미세 먼지 같은 대기 오염 물질의 감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호흡기 바이러스의 오염원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감염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팬데믹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영유아시기는 면역의 초기발달 단계로 앞으로 살아가면서 흔히 접하게 될 바이러스들을 경험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접하는 병원체의 기억들은 세포매개면역의 다양한 레파토리가 되어 나중에 자신의 세포와 침입자를 구분하는 기본 재료가 된다. 쉽게 말하면 외부 항원에 빈번하게 노출이 되면 나중에 완전 동일한 병원체가 아니라도, 최소한 내 세포가 아니라는 구분은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생적인 현대 환경에서는 면역이 충분한 경험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더러운 환경에서 아기를 방치하며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부에서는 일부러 바이러스에 감염되도록 노출시키기도 하는데 이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대안이 바로 백신이며, 이것이 면역을 자극하는 낯선 깨끗함이다.
소아마비에 걸린 루스벨트는 재단을 설립하였고, 후원을 받은 조나스 소크는 최초의 현대적인 백신인 소아마비 백신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소크는 자신의 백신에 특허를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유는 ‘당신은 태양에도 특허를 신청할 것입니까?’라는 그의 대답에서 찾을 수 있다. 덕분에 저렴한 백신이 보급되고 소아마비는 더 이상 유행하지 않게 된다.
이 백신은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예방이라는 단순한 의미 이상을 가진다. 이를 계기로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증식시킬 수 있는 세포 배양 기술이 확립되고, 안전하고 깨끗한 항원을 제공할 수 있는 현대적 백신 제작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후 아이들의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홍역(measles), 풍진(rubella), 볼거리(mumps) 등에 대한 백신이 차례로 개발된다. 만약 이 백신들이 없었다면 밀집된 환경의 도시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백신은 면역에 새로운 경험을 깨끗하게 제공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호흡기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에 필요한 위생 관념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주철현 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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