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실패’ 가 ‘윤의 개혁’ 불렀다… 비전 주며 전광석화 같이 추진해야[허민의 정치카페]
■ 허민의 정치카페 - ‘윤 개혁 드라이브’ 읽는 법
문, 성장 · 안보 · 통합 모든 영역서 실패… 윤의 ‘Anything But Moon’ 추진 동력 · 정당성 생겨
윤, 기득권 · 이데올로기 아닌 국익 · 시장논리 따른다는 의지 내보여… ‘비전 · 전략 · 속도’ 필수
윤석열 대통령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윤 대통령은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라면서도 노동·연금·교육 등 제반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개혁을 가속화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윤 대통령의 개혁은 전임 문재인 대통령 정책에 대한 ‘안티(反)테제’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시장논리에 따르겠다는 의지, 기득권이 아닌 국익에 봉사하겠다는 결단이 그렇게 만들었다. ‘문의 실패’가 ‘윤의 개혁’의 정당성과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 테제 : 文의 실패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9대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꼭 지켜야 할 세 가지’로 “첫째 경제, 둘째 안보, 셋째 통합”이라고 답했던 일이 있다(‘대한민국이 묻는다’, 257쪽). 문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이 세 가지 대통령의 과제를 몽땅 저버렸다.
첫째, 반(反)성장. 문 전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소득주도성장론(소주성)을 내세우다 ‘정부의 실패’를 불렀고 한국 경제는 휘청거렸다. 혁신성장이 철저히 외면당한 결과는 반 성장, 양극화 심화, 재정 고갈, 국가부채 급증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국가통계까지 조작하면서 분식 성장을 만들어 국민을 눈속임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 장난질에 대한 감사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반 안보. 문 정권은 대중국 저자세와 북한 정권 눈치 보기 기조를 5년 내내 이어갔다. 그는 취임 첫해 공식 방중 기간 ‘혼밥’을 먹는 수모 속에서도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소국(小國) 한국은 ‘중국몽’과 함께 하겠다”(2017년 12월 15일 베이징대 연설)며 중국을 향한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사대주의적 충성심을 발휘했다.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북한 퍼스트’ 정책으로 안보 위기를 초래했다. 이에 한·미 관계와 동맹이 흔들렸다.
셋째, 반 통합. 국민 분열책은 문 정권 시기 최대의 정치 중범죄다. 그는 집권 5년 내내 국민을 ‘촛불 대 적폐’ ‘친일 대 반일’로 갈라치기 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는 “지금 내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했지만, 거짓이었다. 집권 후 그는 “임기 내내 적폐청산을 해도 부족하다”며 ‘적폐 대청산=보수 대청산’에 열을 올렸고, 나라가 완전히 두 동강 났다.
◇ 反테제 : 尹의 개혁
통상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의 전 정권 지우기, ‘부정의 정치(politics of undo)’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새 권력의 전임 권력에 대한 차별화로 국정 운영이 불연속성과 단절을 경험하는 현상을 겪는 것이다. 제도적 다당제를 토대로 합의제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서구 국가와는 달리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부정의 정치’는 종종 목격된다.
‘부정의 정치’엔 두 개의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전임 대통령과 주변의 권력자들에 대한 징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임 노무현 대통령 가족 비리를 수사했고, 이는 ‘노의 비극’을 발생시킨 한 원인이 됐다. 문 전 대통령 역시 적폐청산 명분으로 전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들을 감옥에 보냈다. 같은 진영 출신이어도 ‘부정의 정치’는 종종 일어난다. 이른바 ‘살부(殺父)의 정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임 전두환 대통령을 백담사에 유배 보냈고, 노 전 대통령은 전임 김대중 대통령을 대북송금 특검으로 압박했다.
‘부정의 정치’의 두 번째 유형은 전 정권과 정치적·정책적으로 차별화한 ‘개혁’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의 국정 운영을 비판했던 조시 W 부시 대통령 시절의 정책 기조를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 정책 폐기)라 불렀다. 윤 대통령도 ABM(Anything But Moon·문재인 정책 폐기)으로 가는 중이다. ‘문의 실패’가 ‘윤의 개혁’을 위한 길을 닦고 ABM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개혁’은 ‘문재인 실패’라는 테제에 대항하는 안티테제 즉 ‘반 명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처럼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혁명은 힘으로 기존 질서를 붕괴해 새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지만, 개혁은 합의를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역대 정권이 개혁을 내걸었지만 성공한 경우는 드물었다. ‘윤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윤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비전, 전략, 속도
개혁에 필요한 3요소는 비전, 전략, 속도다.
첫째 비전. 개혁이 어려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이 개혁에 따른 이익을 지금 당장 체감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 삶을 불확실한 미래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발동된다. 기존의 관행에서 오는 익숙한 편리함을 떨쳐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비전의 제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혁으로 변화할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그려져야 한다.
둘째 전략.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지지자를 늘리고 반대자를 줄이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개혁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는 약하고 반대의 목소리는 강하다. 미래의 보이지 않는 이익을 위해 현재의 손에 잡히는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건 개혁이 갖는 숙명이다. 이 숙명을 받아들이자는 사회적 컨센서스를 만들어 내야 한다. 여야 협치는 중요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의 선의에 기댈 수만은 없다. 중도층과 합리적 유권자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구해야 한다.
셋째 속도. 비전과 전략이 세워지면 남은 건 속도다. 개혁은 전광석화와 같이, 기득권의 울타리 안으로 도둑처럼 들이닥쳐야 한다. 속도가 떨어지면 실패는 필연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군 하나회 해체’는 취임 10일 만에, ‘금융실명제 도입’은 집권 6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전광석화와 같이 이뤄졌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속도전’을 천명한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평가할 만하다. 당정이 노조의 재정 운영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잘한 일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연금개혁과 관련,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한 것은 ‘속도의 상실=개혁의 실패’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 세상에 ‘느슨한 개혁’이란 말은 없다.
◇ 무엇을 할 것인가
‘포이어바흐 테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마지막 11째 테제를 재구성하면, ‘정치의 임무는 세상을 해석하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윤의 개혁’은 노동·연금·교육개혁과 금융·서비스 개혁, 그리고 지난 몇 년간 광범위한 모럴 해저드를 부른 ‘문재인 케어’의 폐기, 나아가 국방개혁과 후진적 정치제도의 전면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부정의 정치’란 주로 대통령제 아래에서 새 정권이 전 정권의 정책을 폐기하거나 차별화를 꾀하는 것. 강원택 교수가 ‘politics of undo’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 ‘무효화의 정치’로도 쓰임.
‘만절필동’은 공자의 말에서 비롯된 고사성어. 강물(황하)이 일만 번을 꺾여 굽이쳐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 중국 황제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킨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쓰임.
■ 세줄 요약
테제 ‘文의 실패’ :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의 3대 과제로 경제, 안보, 통합을 내세움. 하지만 집권 후 문 전 대통령은 이 과제들을 저버림. 그 결과는 反성장, 反안보, 反통합으로 나타남.
反테제 ‘尹의 개혁’ : ‘文의 실패’는 ‘尹의 개혁’을 부르고, ‘ABM’ 즉 Anything But Moon(문재인 정책 폐기)으로 가는 정당성을 제공. ‘윤석열 개혁’은 ‘문재인 실패’에 대항하는 안티테제이자 ‘부정의 정치’임.
비전, 전략, 속도 : ‘尹의 개혁’은 기득권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국익과 시장논리에 따르겠다는 의지임. 개혁에 필요한 3요소는 비전, 전략, 속도. 국민에 비전을 주고 치밀한 전략을 세워 전광석화처럼 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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