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치유, 시로 노래… 재난 이후의 삶 ‘생활 밀착형’ 소설로

박동미 기자 2022. 12. 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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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시 부문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나희덕(왼쪽부터)·박형준·문태준 시인. 윤성호 기자
정용준(왼쪽부터)·정소현·조경란 소설가가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을 선정하기 위해 토론 중이다. 윤성호 기자
동화 심사를 맡은 강정연(왼쪽) 작가와 김지은 평론가. 박윤슬 기자
김형중 문학평론가. 김호웅 기자

■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경향

4개 부문에 작품 4012편 접수

아픔 · 희망 공존 ‘엔데믹’ 표현

현실의 고난 드러내는 시어 다수

소설엔 코로나 이후의 풍경 그려

동화는 ‘이혼’ 다룬 응모작 많아

평론, 페미니즘·동물권리 담아

“채무나 폐업, 고된 노동에서부터 조문, 장례 등 죽음과 무력감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았다. 우리 모두 어려운 때를 지나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현실의 곤고함을 시로 표현하고 또 극복하려는 태도들이 엿보였다.”(문태준 시인)

“코로나의 흔적이 거의 사라진, 재난 이후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기반 붕괴, 주택난으로 인한 거주 불안 등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이고 생활 밀착형 이야기들이 늘어났다.”(정소현 소설가)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의 전반적인 경향은 ‘지금, 여기’의 고통과 ‘내일’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는 ‘엔데믹’ 시대 그 자체였다. 응모작들은 저마다 개인과 사회의 괴로움을 촉발한 근원을 파헤치고, 지금 서로에게 가능한 위로의 방법을 모색하며,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를 통해 삶의 진실과 인간의 본질 탐구라는 문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달 2일 공모가 마감된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단편소설, 동화, 문학평론 4개 부문에 1304명이 응모, 총 4012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시 응모작이 3385편으로 가장 많았고, 단편소설 404편, 동화 206편, 평론 17편 순이었다. 총 4020편이 응모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소설과 동화 부문에서 각각 20편 이상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영화와 드라마, 웹툰 등 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그 원천이 되는 ‘이야기’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증폭된 결과로 분석된다.

응모작들에 대한 심사는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4개 부문 모두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진행했다. 시는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시인이, 소설은 조경란·정소현·정용준 소설가가, 동화는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와 강정연 동화작가가, 문학평론은 김형중 평론가가 맡았다.

가장 많은 응모작이 들어온 시 부문은 올해도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을 뽑는 데 고심했다는 평이다. 나희덕 시인은 “본심에 오른 응모작 대부분이 고른 작품성을 보여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시대적 문제뿐 아니라 자기 삶의 고통을 대면하고 이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 많았다.

박형준 시인은 “현실이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이기보다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경향이 짙었다”고 분석했다. 박 시인은 “인터넷, 휴대전화, 브이로그 등 요즘 세태를 반영한 시어들이 눈에 띄었고, 이를 통해 지금의 젊은이들이 바라는 관계나 바람들이 읽혔다”고 설명했다.

단편소설에서는 가장 최근의 변화된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소설 속 인물들은 유튜버나 작가 지망생, 택배 기사나 전화 상담원 등 막연한 진로 앞에서 고민하고,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특히, 조경란 소설가는 “‘죽음’을 전면에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면서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무수한 죽음들이 남은 자들에 의한 애도와 상실 치유의 방법으로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고 했다. 다만, 대다수 작품이 사태나 문제의식을 펼쳐 놓을 뿐 설득력과 뒷심이 부족한 지점은 아쉬웠다. 정용준 소설가는 “좀 더 뚜렷하고 용감한 주제의식, 그리고 확실한 마무리 등이 보완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화의 소재 역시 다양해졌다. 강정연 작가는 “시대의 변화나 사회상을 반영해서인지,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지만, 유독 ‘이혼’을 소재로 한 응모작이 많았다는 게 특이했다”면서 “아이들의 아픔을 동물과의 교감이나 자연 속에서의 삶을 통해 치유하는 주제의 동화가 많았다”고 했다. 김지은 평론가는 “어린이의 입장에서, 어린이의 마음과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가 엿보이는 응모작이 예년에 비해 늘었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내용은 훌륭하지만, 동화보다 소설에 가까운 응모작들은 많이 아쉬웠다”고 평했다.

문학평론은 두어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독해야 할 만큼 수준이 높고 고르다는 평이었다. 김형중 평론가는 “페미니즘과 동물권, 그리고 포스트 휴먼 등 대부분의 작품이 지금 가장 유효한 담론들을 담고 있었다”면서 “그중 한국 문학장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보탬이 될 새로운 담론을 산출할 능력이 되는지를 우선해 작품을 선별했다”고 전했다.

20일 현재 최종 당선작이 개별 통보된 상태며, 해당 작품은 2023년 1월 2일자 문화일보 지면을 통해 공개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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