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타게 놔두지”…재난 ‘보상’이 부르는 2차 피해

한겨레 2022. 12. 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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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경북 울진에서 일어난 대형산불 때 불과 맞서 싸우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이가 주민에게서 들은 이야기란다.

언뜻 보면 이게 다 보상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보상의 전제가 되는 피해상황과 정도는 타인이 정확히 알 수 없다.

피해상황과 거리가 있는 행정적인 보상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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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과 삼척 일대에 대형산불이 계속된 지난 3월5일 저녁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한 주민이 민가 가까이 다가온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왜냐면] 정다경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 멤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왜 불을 껐어!? 왜 그랬냐는 말이야!”

올해 3월 경북 울진에서 일어난 대형산불 때 불과 맞서 싸우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이가 주민에게서 들은 이야기란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대피하기 바빴고, 집이 타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어르신들은 속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고 발 빠른 사람들은 불을 끄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호스를 가지고 나와 물을 뿌려가며 불과 싸웠다. 그 덕에 일부 주택은 무사했지만 대부분은 전소했다. 그런데 무사한 집 소유주들이 불을 꺼줬던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화내며 죄인 취급을 했다. 왜 그랬을까?

울진 산불은 서울 면적의 40%에 가까운 숲을 태웠고 비가 내린 뒤에야 간신히 꺼진 재앙이었다. 전소한 마을에 국민 성금을 비롯한 여러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거주지는 자재와 관계없이 평수 기준으로, 그리고 파손된 기준(전파, 반파, 소파)으로 보상이 이뤄졌다. 전소(전파)한 슬레이트 지붕 집은 깔끔한 새집으로 바뀌었지만, 작게 훼손된(소파) 석조 주택은 보수만 이뤄졌고 불에 탄 자국이 있는 기존 집에 살아야 했다. 그러니 적게 훼손돼 깔끔한 새집을 얻지 못한 주민은 불을 꺼준 이들에게 되레 화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난, 참사 피해자들은 ‘보상’ 문제로 2차 피해를 받는다. 그들끼리 분열되거나 제삼자가 ‘비용’ 프레임을 씌워 억울해하거나. 언뜻 보면 이게 다 보상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보상의 전제가 되는 피해상황과 정도는 타인이 정확히 알 수 없다. 재난으로 변화한 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피해자가 정확하게 잘 알기 때문이다. 과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기에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지만, 보상기준을 정하는 데 주민 참여와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상기준은 정부가 정한다. 예컨대 이번 경북 산불 피해로 송이 농가들이 큰 피해를 봤다. 평생직장에서 실직당해 앞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한 처지다. 그런데 임산물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 피해상황과 거리가 있는 행정적인 보상기준이다.

정부나 사람들 모두 기준만 이야기한다. 왜 지급 안되냐고 물어도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한다. 피해자는 결국 돈에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먹고 살아야 하고, 이에 필요한 것을 요구할 뿐인데도. 그리고 운 좋게(?) 행정기준에 들어맞아 최대한 보상받은 사람에게 ‘갈 곳 없는 화’가 갈 수밖에 없다. 현실을 모르는 행정기준이 피해자 사이 갈등을 조장한다.

고향에서 임산물을 팔아 딸의 학비를 댔는데 산이 모두 타 버린 상황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정확한 건 피해자만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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