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킨대로만 했다? 순종은 미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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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이라는 말은 자기 일에 충실하고 유순하다는 뜻이다.
부모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는 자녀, 교사 지도를 잘 따르는 학생, 상사 지시나 규정을 잘 준수하는 직장인,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 모두 순하고 착하다는 평을 듣는다.
자기주장을 유보한 채 타인의 요구나 부당한 지시도 잘 이행하면 우직하다거나 순종적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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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순종적이라는 말은 자기 일에 충실하고 유순하다는 뜻이다. 부모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는 자녀, 교사 지도를 잘 따르는 학생, 상사 지시나 규정을 잘 준수하는 직장인,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 모두 순하고 착하다는 평을 듣는다.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유순한 사람이라는 말도 순종을 강조하며 격려하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자기주장을 유보한 채 타인의 요구나 부당한 지시도 잘 이행하면 우직하다거나 순종적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권위나 지시를 아무 생각 없이 추종하다 보면 커다란 잘못이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뒤 독일 전범 재판에서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 친위대원들은 스스로 나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들은 지시에 순종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주변 상황의 압력이나 권위에 스스럼없이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명령을 단순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학살과 만행이 자행됐다. 1961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 교수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 학생들은 상대방의 오답에 대한 처벌로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지시받았는데, 그들은 상대방의 고통 호소에도 끝까지 지시를 따랐다. 권위자인 교수의 요구를 성실히 이행한 것이다.
2009년 프랑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실험 결과를 얻었다. 방송 진행자의 권위적인 지시에 맹종한 실험 참여자들의 성격 특성은 성실하고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흔히 순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2014년 4월 고등학생이 250명이나 숨진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미숙한 대처와 구조활동의 지연 등 여러 원인 말고도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에서 ‘움직이지 말고 자리에 있으라’는 잘못된 선내 방송에 학생들이 무심코 순종한 결과도 작용했을 것이다.
선악 기준은 모호할 때가 많다. 순종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조장하는 이유는 통제가 쉽기 때문일 수 있다. 결국 환경에 순응하는 행동도 주변 상황과 전체적인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이뤄져야 한다. 세분된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행동 과정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을 사물처럼 대할 수 있다. 나치 전범재판을 지켜본 유대계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친위대 장교들이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순한 사람들일 수 있지만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과 타인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평범함 속에서 만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분석한 바 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내 일에만 전념하면 그만이라며, 남의 일에 개입하거나 연루되지 않으려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직생활이나 단체활동에서는 순종이나 동조가 요구되는 상황도 있겠지만, 영혼 없는 사람처럼 부여받은 업무나 역할에만 맹목적으로 충실하면 공동체는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이 하는 일의 정당성이나 후유증은 외면하고 이웃의 안위와 사회정의를 도외시한다면, 공정한 사회, 다 함께 편히 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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