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로, 수당 대신 휴가로 저축 가능… ‘월1회 주69시간’ 4번땐 ‘한달 휴가’ 도[10문10답]

정철순 기자 2022. 12.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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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소속 교수들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노동개혁 과제에 대한 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 10문10답 - 미래노동시장硏 ‘노동시장개혁’ 권고안

연장근로 관리 기준이 週 → 月 단위 이상으로 바뀌면

최대 ‘주 69시간 근무’ 가능하나 ‘총량’ 은 같거나 줄어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 권고… 정년연장 본격화도 주목

전태일 열사가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숨진 지 52년이 지났다. 전 열사가 그토록 지켜달라고 외쳤던 ‘산업화’ 시대 근로기준법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개혁의 대상이 됐다. 69년간 유지된 ‘공장형 8시간 교대 근무’의 근로기준법을 이제는 정보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시대에 맞게 개편해야 할 임계점에 다다랐다. 전문가들은 미래 노동환경에 맞지 않는 현행 노동시장의 개혁을 주문했지만, 정치권은 의지가 부족했고 노동계는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 이를 외면했다. 노동시장 개편은 단순히 직장 내 변화가 아닌 사회 변화에 귀결된다. 안식월이 도입되면 월 단위 휴가가 가능해져 생활 환경이 바뀌고, 정년연장은 국민연금과 맞물려 풀어야 한다. 노동개혁 과제 발굴을 위한 전문가 논의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권고안 주요 내용을 쟁점별로 풀어봤다.

1. 연장근로 기준 바뀌면

연장근로 산출 단위가 월 단위 이상으로 바뀌면 주 최대 69시간 근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연장근로 총량은 줄거나 같아진다. 현재 ‘주 52시간(기본 40+연장 12시간)’ 단위에서 ‘월 이상’이 도입되면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연속 휴식을 빼고 최대 13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일주일에 하루 이상 보장되는 법정 휴식을 제외하고 6일을 일할 경우 ‘6×13=78시간’이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상 4시간 일하면 30분의 휴게 시간이 주어지므로 78시간에서 9시간(1.5×6)을 뺀 ‘주 69시간’ 노동이 최대 노동시간이 된다. 연구회는 이 같은 산출식을 “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연장근로 현황 등을 고려할 때 빈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특히 특정 주에 연장근로가 몰릴 경우 다른 주의 연장근로 시간은 줄어들고 분기 이상일 경우 총량이 줄어든다. 연구회의 ‘연장근로 총량관리안’에 따르면 월 단위 연장근로 시간은 52시간으로 지금(주 12시간)과 같으며 분기는 140시간, 반기는 250시간, 연 440시간으로 현행 ‘주 52시간’에 비해 총량은 오히려 10~30% 줄어든다.

2. 직무에 따라 임금 바뀌나

임금 문제는 노사 합의 사항이지만 현행 연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바꿀 것을 연구회는 권고했다. 그중 직무급 선호도가 높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전문직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이다. 현행법상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사업장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취업규칙 변경 의견을 들어 과반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같은 사업장에 있다는 이유로 경쟁력이 높은 직군 근로자가 상대적 손해를 보는 것이다. 연구회는 “사업장 내 다양한 사업 또는 직군이 있고, 이 가운데 A직군만의 특성을 고려해 해당 직군을 대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려는 경우, 개편된 임금체계를 적용받는 ‘A직군’을 대상으로 취업규칙 변경 절차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도 개별 공장·사무실 내 전문적인 직무에 대해서는 관행적으로 수당을 더 주지만, 연구회는 한발 더 나아가 임금체계 변화를 제언한 것이다.

3. 임금 상승 요인이 있나

연구회에 참여했던 교수들은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현장에서 의견을 들어보면 임금 수요가 생각보다 높다”고 밝혔다. 일하는 시간을 늘려 임금을 더 받고 싶은데 주 52시간에 막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밤에도 사무실 불이 켜져 있어 ‘오징어잡이 배의 도시’로 불리는 판교의 개발자들은 주 52시간을 일한 후 일단 근무기록을 끄는 것이 관행이다. 주 52시간 초과 근무는 근로기준법에 정면으로 반하고 지방노동청의 근로감독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보다 승진이나 프로젝트 완료에 따른 인센티브 수요가 강하다. 현행 제도에서 이들은 주 52시간 이후의 근로시간을 회사에 무료로 봉사했고, 오히려 사업주가 유리한 구조였다. 노동계에선 특정 주에 연장근로가 몰려 야근이 관행화할 것이란 우려가 크지만, 노동시장에서 사업주 또한 연장근로 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일방이 극단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은 적다.

4. 주휴수당 개편 권고 배경은

주휴수당은 일주일 동안 정해진 근로일수를 채우면 주어지는 유급휴일 수당이다. 근로기준법 제55조 1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한다. 하루 3시간,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휴일에 일하지 않아도 하루치 임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장시간 저임금 근로에 대한 휴일 보상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입장에선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 속에 쉬는 날에도 임금을 줘야 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하루 2시간 등 ‘주 15시간 미만 쪼개기’ 일자리를 내놓고 있다. 연구회는 “근로시간과 임금 산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사업자가 근로자에게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근로의 쪼개기 계약을 하게 하는 원인”이라며 개정을 권고했다.

5. 파견 제도 무엇이 문제였나

노동계는 물론 경영계도 연구회가 파견 제도 개선을 공론화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할 만큼 해당 사안은 그동안 금기시됐다. 파견 제도를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고, 노동계는 해당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는 것에 완강히 반발했다. 하지만 연구회는 “약 25년간의 노동시장 격변에도 불구하고 1998년 제정된 파견법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속돼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법률로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파견 제도의 전면적 검토와 개선 모색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파견법은 허용업종을 32개로 제한하고 기간도 최장 2년으로 묶어두고 있다. 특히 제조업에서의 파견 근무를 제한해 노동시장 경직성이 심화했다는 지적이 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4개국은 파견 업무와 기간에 제한이 없고, 제한을 두더라도 업종과 기간 둘 중 하나에 국한한다.

6. 노조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

연구회는 권고안에서 노사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양측 간 관계에서의 법·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대표적인 사안이 노조의 파업 시 사업장 점거와 대체인력 투입에 관한 사안이다. 연구회는 “2022년 현재에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87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매년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갈등과 주요 사업장의 쟁의가 반복되고 있다”며 “노사관계의 정치화는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자율적 이해조정의 기능 복원이 긴요하다”고 제언했다. 대체인력 투입의 경우,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컸으며, 사업장 점거의 경우 사용자의 영업·조업 자유와 시설 관리권 보장 차원에서 적용됐다.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 5개국은 노조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7. 포괄임금 개편 방향은

노동계, 특히 젊은 연구직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사용자는 노동자가 실제 근로한 시간에 따라 시간외근로 등에 상응하는 법정수당을 산정·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포괄임금은 근로기준법상 제도가 아닌 대법원 판례에 의해 사후적·개별적으로 인정되는 임금지급 관행이었다. 대법원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거나,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고 근로시간 규제를 위반하지 않을 경우 △당사자 간 합의가 있을 경우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은 상황에 한해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만큼의 수당만을 지급하는 제도다. 현장에선 포괄임금이 ‘공짜 노동’으로 악용돼왔다. 연구회는 “공짜 야근 근절을 위해 투명하고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관리 등을 토대로 포괄임금·사전 정액수당제(고정OT) 약정의 오남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종합대책의 수립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8. ‘한 달 휴가(안식월)’ 갈 수 있나

현행 근로기준법상으로 연장근로는 ‘1.5배 가산수당’으로 받지만, 연구회는 이를 가산수당 대신 ‘휴가’로 줄 수 있도록 권고했다. 산술적으로 ‘주 69시간’ 근로를 4번만 해도 안식월을 갈 수 있다. 주 40시간 기본근로에서 29시간을 더할 경우, 5.4일(29×1.5/8)의 휴가가 생긴다. 이를 4번 할 경우 21.6일의 휴가가 나온다. 주 69시간 근로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연장근로 시간을 모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노동계는 연장근로를 먼저 한 후 휴가를 받는 방식 특성상 회사·개인 사정에 따라 실제 안식월을 사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한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연장근로를 휴가 혹은 수당으로 받을 수 있고, 업무 특성상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리고 다른 기간엔 시간이 남는 사업장에서는 이를 활용하는 빈도가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9. 정년연장 본격화되나

연구회 권고안 상당수는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지만, 정년연장 문제만큼은 노사를 떠나 사회적 공감대가 높다. 연구회는 “고용연장은 고령 인구의 급속한 증가, 연금 수급 연령 상향, 경제의 활력 유지 등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며 “현행 고령자고용법상의 60세 법정 정년 제도와 계속 고용 노력 의무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회의 정년연장 권고 배경엔 현행 만 62세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23년에는 63세,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5년마다 1살씩 늦춰진다는 데 있다. 정년 후 연금 수급까지 기간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만큼 이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

10. 향후 추진방향과 노동계의 반발은

정부는 연구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빠른 시일 내 입법화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고용부는 권고안 주요 내용을 리스트화하고 2023년 초부터 입법화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근로시간 개편을 비롯해 파견 제도, 노사관계 등 주요 사안 대부분이 법 개정 사안이다. 여소야대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 주도로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다만 직무급제·안식월 등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 MZ세대를 비롯해 국민적 지지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요 산업 조합원을 기반으로 한 양대 노총은 개혁안에 즉각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결정권을 사용자에게 내맡기는 개악 권고문”이라고 밝혔으며, 한국노총은 “정부가 미리 정해놓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 체계라는 결론에 학자들의 논리를 더해 장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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