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현상’ 본격화…거장·해외악단 내한 ‘풍성’ [어떻게 보십니까 2023]
기존 클래식 팬덤과 다른 양상
코로나19 그 후…보복소비 절정
팬데믹 리스크 사라진 2023년
거장, 해외 악단 내한으로 풍성
경제사정 악화로 불안요소 커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임윤찬현상 #보복소비 #빈약한시장.
2022년 12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선 개관 이래 처음 만나는 ‘데시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2500석을 꽉 채운 열광의 주인공은 10대 ‘클래식 스타’ 임윤찬. 지난 6월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1위를 차지한 임윤찬의 등장은 올 한 해 클래식계의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클래식 음악계 관계자들은 올 한 해의 키워드로 예외 없이 ‘임윤찬’을 꼽는다. 새로운 ‘스타’의 등장에 2022년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전에 없던 흥미로운 광경이 속속 그려졌다. 임윤찬과 함께 각종 콩쿠르를 석권한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약진했고, ‘엔데믹’과 맞물리며 공연계는 이전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회복했다. 음악공연을 기다린 관객들의 ‘보복 소비’가 시장을 이끈 것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2023년은 그리 청신호는 아니다. ‘임윤찬 현상’이 클래식 전반으로 확장하진 않았으며,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공급에 빈약한 내수시장은 ‘불안한 장밋빛’을 그리고 있다.
2022년 클래식 음악계는 명실상부 ‘임윤찬의 해’였다.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밴 클라이번 콩쿠르’ 영상이 유튜브에서 반복 재생됐다. 지난 6월 임윤찬이 결승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은 현재 913만회를 기록하며 이 곡을 연주한 영상 중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으로 올라 있다. 임윤찬의 등장은 기존 클래식 스타와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해외 특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을 선보이는 한 클래식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임윤찬의 등장은 한 마디로 ‘현상(Phenomenon)’이라고 할 수 있다”며 “임윤찬으로 인해 단 한 번도 클래식 음악공연을 보지 않던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새롭게 유입된 팬들의 성향이 독특하다. 기존 클래식 음악계에선 볼 수 없던 결속력으로 임윤찬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지난 10일 열린 콘서트에서도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임윤찬의 팬덤은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CD와 프로그램북 구입에 분주했다. 1인 2부로 판매를 제한한 프로그램북과 음반은 심지어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동이 났다. 음악계 관계자는 “클래식 공연장에서 음반 1000장을 모두 판매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귀띔했다.
음악평론가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임윤찬 현상은 기존 클래식 팬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며 “단지 음악이 좋아 소구하는 팬들과는 달리 기존의 아이돌 팬덤처럼 팬카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아티스트와 거리를 좁히려는 의지를 실현하는 팬덤”이라고 봤다.
이는 달라진 시대에 등장한 ‘스타’와 ‘새로운 세대’의 팬들이 만나 나타난 현상이다. 2015년 ‘쇼팽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대형 스타’ 조성진과 함께 커진 클래식 팬덤이 임윤찬의 등장으로 또 한 번 진화했다. 류 평론가는 “조성진을 통한 학습 효과와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MZ세대 클래식 팬덤이 임윤찬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만나 전에 없던 클래식 팬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임윤찬 현상’이 클래식업계 전반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윤찬의 등장으로 클래식 음악계는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해졌다. 강력한 티켓파워를 보여주는 임윤찬과 달리 많은 음악회가 여전히 초대권 소진에 힘을 쏟는다.
류 평론가는 “임윤찬이 최근 광주시향과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앨범으로 인해 지휘자 홍석원과 광주시향이 녹음한 윤이상 음악으로도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임윤찬 현상의 클래식 전반으로의 확산은 요원하지만 활약 여부에 따라 음악계 전체로 퍼져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2020년 팬데믹 시대가 도래한 이후 클래식 음악계는 오랜 ‘위기의 시간’을 보냈다. 클래식은 ‘조용한 공연’의 대명사였지만 연주는 멈췄다. 공연장이 문을 닫았고 해외 오케스트라와 거장 음악가들의 발이 묶였다. 한국을 방문하는 ‘대형 공연’에 의지해 클래식 관객을 유치했던 음악계의 허점은 팬데믹 기간에 여실히 드러났다.
올해는 달랐다. ‘엔데믹’과 맞물리며 전 세계에서 스타 음악가와 대형 오케스트라들이 줄줄이 한국을 찾았다.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부터 틸레만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파보 예르비의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 등을 비롯해 랑랑, 당 타이손, 안드라스 시프 등 거장이 줄줄이 내한, 음악팬들에겐 더없이 ‘풍성한 한 해’였다.
류 평론가는 “코로나19로 해외 공연을 접하지 못한 클래식 음악관객들의 보복 소비가 이어지며 음악계가 호황을 이뤘다”며 “코로나19라는 리스크가 완전히 걷힌 2023년은 양적·질적으로 더 풍성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공개된 2023년의 음악계 라인업이 화려하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등 유럽의 명문 악단이 한국을 찾아 클래식 스타들과 호흡을 맞춘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 ‘클래식 스타’ 조성진·임윤찬과 함께다.
수라상 못지않은 상차림이 많은 클래식 기획사를 통해 나오고 있으나 우려도 적지 않다. 클래식 내수시장은 여전히 빈약하기 때문이다. 서울국제음악제의 음악감독인 작곡가 류재준은 “서울시의 인구는 1000만명에 달하지만 클래식을 즐기는 인구는 7만~10만명 미만이라는 통설이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의 수요는 여전히 적다. 소수의 예술인데도 시장은 도리어 ‘공급 과잉’ 현상을 빚고 있다. 심지어 팬데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맞물린 ‘물류비 급증’으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은 티켓값을 감당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됐다. 올해 열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티켓 가격은 최고가 48만원을 기록했다.
류 평론가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산업으로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는 양적 기반이 부족하다”며 “대형 공연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겹치게 되면 지갑을 여는 소비자로서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나 물가 상승 등 여러 요인으로 내년엔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경제적 상황인 만큼 클래식 음악계의 불안요소도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클래식 공연의 티켓 가격은 가장 저렴한 티켓의 가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측면에서 지나친 상승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저가 티켓 가격이 무너지는 것은 클래식 음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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