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문화 결산]올해 K팝은 ‘빌보드·4세대·거장’으로 요약
4세대 걸그룹 전성시대 돌입
가왕 조용필, ‘거장의 귀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빌보드 #4세대 #거장.
여전히 뜨거웠다. 과거 ‘소수의 음악’, ‘비주류의 음악’이던 K팝은 이미 미국, 영국의 주류 팝 시장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세계적인 팝스타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블랙핑크, 그 뒤를 따르는 4세대 K팝 그룹들이 올 한 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았다. K팝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음악으로 그 어느 해보다 반짝였다.
2022년 K팝은 미국 빌보드 음악 차트에서 또 한 번 진기록을 세운 한 해였다. 올해에만 무려 세 팀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올해 데뷔 9년의 역사를 되돌아본 앤솔러지(선집) 음반 ‘프루프’를 내고 제1막을 마무리했다. 지난 6월 발매한 이 앨범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는 실물 앨범 등 전통적 앨범 판매량, 스트리밍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SEA),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TEA)를 합산해 앨범 소비량 순위를 산정한다.
방탄소년단은 이 앨범으로 2018년 6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LOVE YOURSELF 結 Answer),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MAP OF THE SOUL : PERSONA), ‘맵 오브 더 솔 : 7’(MAP OF THE SOUL : 7), ‘비’(BE) 등 총 여섯 장의 앨범을 ‘빌보드200’에 1위에 올렸다.
타이틀곡 ‘옛 투 컴’(13위)과 수록곡 ‘달려라 방탄’(73위)도 발매와 동시에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진입에 성공했다. 이후 방탄소년단은 그룹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본격적인 개별 활동에 돌입했다. 제이홉을 시작으로 최근 입대한 맏형 진, 리더 RM으로 이어지는 개인 활동의 성과도 상당하다. 최근 RM은 첫 공식 솔로 앨범 ’인디고‘ (Indigo)로 메인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에 동시에 차트인,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다. 방탄소년단은 현재 멤버들의 순차적 입대를 계획하고 있으며, 오는 2025년 팀 활동 재개를 목표로 두고 있다.
스트레이 키즈는 올 한 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은 그룹이다. 방탄소년단에 이어 ‘빌보드 200’에서 2회 이상 1위에 오른 K팝 가수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올 한 해 안았다. 지난 3월 전작 ‘오디너리’(ODDINARY)로 사상 첫 ‘빌보드 200’ 1위에 올랐고, 10월엔 ‘맥시던트’(MAXIDENT)로 이 차트에서 정상을 밟았다.
블랙핑크는 아시아 그룹 최초로 영·미 세계 양대 앨범 차트 정상을 밟는 기록을 썼다. 특히 K팝 걸그룹 최초이자, 14년 만에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른 여성 그룹이라는 역사도 썼다.
빌보드는 당시 “블랙핑크가 글로벌 최강자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블랙핑크가 14년 동안 이어진 여성 그룹의 빌보드 200 차트 1위 부재를 깨뜨렸다”며 “이는 미국 내 블랙핑크의 존재감이 바위처럼 단단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다”라고 평가했다.
올 한 해 블랙핑크는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2022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2관왕에 올랐고, 150만명을 동원하는 K팝 걸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월드투어도 진행 중이다.
이들 외에도 NCT127(빌보드 200 3위), 에스파(빌보드 200 3위), 나연(빌보드 200 7위)도 이 차트에서 약진했다.
2022년 K팝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4세대 걸그룹’의 돌풍이다.
K팝의 세대 구분은 1990년대 후반 등장한 1세대 아이돌 그룹 H.O.T.와 젝스키스에서 시작된다. 이후 2000년대 중후반부터 활약하며 아시아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한류를 견인한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등을 2세대,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블랙핑크, 엑소, 트와이스 등 K팝 팬덤을 전 세계로 확장한 이들을 3세대로 부른다. 4세대는 이르면 2017년~현재까지 데뷔한 신예들이다.
올 한해 두드러진 4세대는 아이브, 뉴진스, 르세라핌, 엔믹스 등 걸그룹이다.
아이브는 ’4세대 걸그룹 전성기‘의 주역이다. 데뷔곡 ’일레븐‘부터 ’러브 다이브‘·’애프터 라이크‘까지 3연타 히트를 기록, 연말 음악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가져가며 단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르세라핌은 ’하이브 최초 걸그룹으로, 데뷔 이전부터 따라 다닌 멤버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바람잘 날 없던 그룹이다. 팀의 재정비 후 돌아온 르세라핌은 일련의 시련이 탄탄한 성장 서사가 돼 매력적인 세계관을 부여했다. 최근 발매한 ‘안티 프래자일’은 56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 K팝 걸그룹으로는 사상 최단 기간인 6개월 만에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4위를 차지했다.
뉴진스는 올 한 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를 한 그룹이다. 일명 ‘민희진표 걸그룹’이라는 수사를 안고 나와 기존 K팝 그룹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요계를 공략했다. 어떤 프로모션도 하지 않은 채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앨범 수록곡 4곡 중 3곡을 타이틀로 내는 과감함과 자본의 공세는 새로운 스타 제작 공식을 만들었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 4세대 걸그룹은 데뷔 이전부터 쌓아 올린 인지도, ‘걸크러시 강박’이 사라진 이미지와 가사, 정교한 세계관 구현”을 주요한 특징으로 봤다.
아이브와 르세라핌의 특이점은 ‘서사’에 있다. 두 걸그룹 모두 ‘나’의 이야기에 집중한 노랫말로 이들만의 세계관을 만들었다. 아이브는 ‘일레븐’부터 ‘애프터 라이크’까지 당당하고 주체적인 나를 넘어 심지어 ‘나’와 사랑에 빠지는 서사를 강조한다. 이른바 ‘나르시시즘’ 세계관을 통해 나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이어왔다. “내 장점이 뭔지 알아? 그건 솔직한거야”라는 가사는 ‘가을선배’ 신드롬과 함께 수많은 밈을 탄생시켰다.
르세라핌은 의도와 계획을 넘어선 ‘우연의 연속’으로 그룹의 서사가 힘을 받은 사례다. 데뷔 전부터 학교폭력 논란이 따라온 멤버 김가람이 탈퇴한 이후 발표한 ‘안티 프래자일’에서 르세라핌은 시련을 극복하고 세상에 맞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곡은 르세라핌이 데뷔 과정에서 미리 준비한 곡으로, 그룹의 변화와는 무관했다. 하지만 르세라핌의 상황과 맞물리며 앨범과의 연결고리를 완성했다. 탄탄한 성장 서사가 그룹에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안티 프래자일’에 등장하는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토슈즈(toe shoes)” (카즈하) “무시 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사쿠라)라는 노랫말은 15년간 발레를 하다 데뷔한 카즈하, HKT48부터 르세라핌까지 활동하고 있는 사쿠라의 실제 이야기로, 단연 ‘올해의 가사’로 꼽힐 만하다.
K팝이 세계 무대에서 꿈틀할 때 ‘거장의 귀환’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뿌리를 굳건하게 했다. ‘가왕’ 조용필은 2013년 19집 ‘헬로’ 이후 13년 만의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발표했고, 최백호는 CJ ENM이 신인 작곡가들을 육성·발굴하기 위한 프로젝트 ‘오펜 뮤직’과 손잡고 새 앨범 ‘찰나’를 냈다. ‘영원한 디바’ 패티김은 KBS 2TV ‘불후의 명곡’을 통해 10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1980년대를 풍미한 밴드 송골매는 배철수·구창모 콤비가 뭉쳐 약 40년 만에 콘서트를 열었다.
단연 화제를 모은 주인공은 가왕 조용필이다. 가왕의 위대한 실험은 하반기 가요계에 상당한 충격파가 됐다. 완전히 새로운 시도의 음악, 세월을 잊은 가창력, 앞서가는 콘서트 기획 등 모든 면이 화제였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조용필은 1980년대부터 앨범 한 장 한 장에 예술성을 추구하고 변화를 도모한 실험주의자였다”며 “자신과 함께 해온 세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세대를 바라보는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고 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조용필처럼 거장이고 전설인 선배 가수들이 본인이 해오던 음악을 넘어 젊은 세대와 호흡하는 음악을 선보이는 모습에 음악계 종사자들의 반응이 너무나 뜨겁다”며 “현재 진행형으로 활동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용기와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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