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영웅' 김고은 "노래 부르다 울컥, 말하듯 쓰인 가사 와닿았죠"

조은애 기자 2022. 12. 2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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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고은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CJ ENM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설희가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 중에 '다시 태어나도 조선의 딸이기를'이란 가사가 나와요. 그 대목을 부를 때마다 너무 울컥해서 소리가 잘 안 나왔어요. 설희를 표현해주는 말이라 더 저릿하고 아팠어요."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으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영화화했다. 앞서 '해운대', '국제시장' 등을 연출하며 '쌍천만' 흥행 신화를 쓴 윤제균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다. 김고은은 지난 9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과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당신을 기억합니다 황후마마여'라는 곡의 도입부만 부르면 되는 장면이었는데 연습한답시고 끝까지 감정을 실어서 불렀어요. 그날 음 이탈이 엄청 났어요.(웃음) '컷'하고 윤 감독님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둘 다 웃겨서 박장대소를 했어요. 그때 느낀 그 막막함이 잊혀지지 않아요. 저도 웃음은 터졌지만 속으로는 '큰일났다', '나 라이브 어떻게 하지?' 엄청 걱정했어요. 근데 그렇게 한 번 말도 안 되게 부르고나니까 '난 이제 더 이상 창피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될 때까지 가보자 마음먹고 열심히 불렀죠."

'영웅'에서 김고은이 연기한 설희는 조선의 마지막 궁녀다.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자,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군의 정보원으로 활동한다. 신분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위장해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한 설희는 그에게 얻은 정보들을 독립군에게 전달하며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명성황후와의 인간적인 친밀감이 잘 드러나서 설희의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보였다는 점이 좋았어요. 설희의 서사나 감정선도 뮤지컬보다 좀 더 자세히 나와 있어서 좋았고요. 촬영 전부터 지금까지 설희를 연기하셨던 배우 분들의 영상을 많이 봤고 노래 외에 일본어 연습도 열심히 했어요. 전혀 모르는 언어라서 걱정했는데 한글이랑 어순은 비슷하더라고요. 대사를 하나하나 대조해가면서 공부했고 최대한 원어민처럼 들리도록 발음 연습을 반복했어요."

캐릭터를 위해 일본어, 난도 높은 노래들까지 소화한 김고은은 '영웅'의 수많은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책임졌다. 그의 청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는 노래의 감동을 몇 배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그 배경엔 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영웅'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시도된 적 없는, 현장에서 직접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으로 배우들의 노래를 생생하게 담아내는 데 성공하며 공연을 넘어선 감동을 선사한다. 실제 스튜디오 녹음이 불가피한 분량을 제외하고 영화의 70%가 현장에서 녹음된 라이브 가창 버전으로 담겼고, 이를 위해 배우들은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거쳐 영화 속 모든 넘버를 직접 불렀다.

"설희는 대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노래 가사가 곧 대사라고 생각했어요. 감정이 아무리 올라와도 가사를 뭉개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하루에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노래 연습을 했어요. 몇 시간 단위로 돈을 내면 개인 연습실처럼 쓸 수 있는 작은 독방 같은 공간들이 여기 저기 되게 많거든요. 그런 곳들을 찾아가서 적게는 하루 2시간, 많게는 반나절 정도 혼자 갇혀서 연습했어요. 특히 '당신을 기억합니다 황후마마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노래인데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가장 말하듯이 쓰인 가사여서 굉장히 와 닿았어요. 어려운 노래였고 연습실에서 저를 제일 많이 울린 넘버이기도 해요. 그래도 설희의 서사가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라 좋았어요."

섬세한 연기력은 물론 특유의 맑은 음색, 가창력까지 갖춘 김고은은 설희 캐릭터와 꼭 맞는 배우였다. 앞서 윤제균 감독은 제작보고회, 언론배급시사회 등에서 "김고은 씨가 노래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캐스팅이 안 되면 집까지 찾아가려고 했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김고은은 "윤 감독님 덕분에 현장이 재밌었다"고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너무 거장이셔서 약간 멀게 느껴졌고 큰 어른 같았는데 촬영하면서 너무 놀랐어요. 권위적인 느낌이 전혀 없더라고요. 모두와 수평적인 관계를 갖고 굉장히 유쾌하세요. 무게감 있는 작품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무겁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어요. 특히 첫 미팅 때 저한테 설희 역을 제안하시면서 막 떠시더라고요. 그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해서 나중에 '감독님, 그땐 왜 떠신 거예요?' 여쭤봤더니 '그만큼 간절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놀랐고 되게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김고은에게 '영웅'은 '유열의 음악앨범' 이후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적은 분량에도 출연을 망설이지 않은 건 순전히 작품을 향한 애정 때문이었다. 올해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유미의 세포들2', tvN '작은 아씨들'의 인기를 이끈 그는 연말 극장가를 장식할 '영웅'으로 연타석 흥행을 노리고 있다.

"연기하는데 꼭 주연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영웅'에 끌렸던 건 독립군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에요. 좋은 의미를 담은 영화라서 분량 상관없이 출연하고 싶었고 이 작품으로 올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저한테 2022년은 너무 감사한 해였어요. 이제 데뷔한 지 딱 10년차가 됐는데 올해 공개한 두 작품 다 많은 사랑을 받았거든요. 작품의 흥행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저한테 맡겨주시는 역할은 누구보다 잘 표현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물론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공감을 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허투루 하지는 않으려고요. 그게 제 책임감이에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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