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레째 곡기 끊은 화물노동자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고] 안전과 죽음 사이, 화물 투쟁 연속 기고 ①
[미디어오늘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빗댔다.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는 국민이 아니라고 선언한 대표적 방증이다. 정부는 화물 노동자의 안전과 생계의 불안을 먹잇감 삼아 노조혐오 여론전과 공안 몰이에 나섰다. 국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시장 원리에 전적으로 맡겨 생명안전을 수호하는 국가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겠단다. 여기, 국가 책임은 실종됐다.
안전운임 제도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총공세는 '법과 원칙'에 입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검사 출신 대통령이 '무법천지'의 구현자가 됐다. 두 차례에 걸친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공정위원회를 동원한 신종 노동탄압 수법,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손배소 추진과 파업에 대한 '사회 재난' 규정, 노동 후진국을 감추기 위한 국제노동기준의 폄훼 등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끝나지 않는 화물연대 투쟁을 통해 모두가 안전한 사회, 노동자 파업을 존중하는 보편타당한 가치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기고한다. - 편집자 주
화물연대 총파업이 16일 동안 진행되었고 종료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약간 올랐고, 나는 여드레째 곡기를 끊고 단식 중이니 대통령의 승리를 축하드려야 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 국민 갈등의 중심에서 “법과 원칙의 승리”라고 표현하셨기에 저 또한 “대통령의 승리를 축하드린다.”고 표현해 봤습니다. 지난 6월 화물연대 총파업에 '백기투항'했다는 경제계의 비판을 삼켜가며 한국무역협회 이관섭 상근 부회장을 국정기획수석으로 맞이한 보람이 좀 있으셨습니까?
대통령의 지지율 3%를 올리기 위해 화물노동자가 흘린 눈물과 피는 너무 무겁습니다. 한 달에 300시간, 하루에 14시간 일해서 버는 돈은 고작 300만원 남짓입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시급을 받는 이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감히 화주의 비용을 올릴 수 있는 안전운임 제도의 확대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귀족노조'가 되었습니다.
화물노동자들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복귀를 준비할 때 대통령께서는 경제 6개 단체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법과 원칙의 승리'라고 자화자찬 하셨습니다. 이제 화물노동자들은 매달 지출비용을 따지며 낡은 타이어를 언제 바꿀지 고민하는 하루살이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까 두려움에 밤잠을 설칩니다.
도로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화물노동자의 절규가 대통령께는 정말 '북핵 위협'과도 같은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단결하지 못하도록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지위까지 특별히 부여해가며 갈라놓았던 화물노동자들이, 화주가 주면 주는 대로 고맙게 받았어야 하는 화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니 '법과 원칙'에 따라서 용납하기 어려웠던 겁니까?
대통령님은 시장 원리에 맞게 화물운송산업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그러나 화물운송산업은 이미 고장 난 시장입니다. 정부가 시장을 믿고 산업을 방치하는 동안 대기업 화주들은 공급 사슬의 최정점에서 많은 것들을 착취했습니다. 이렇게 본 손해를 화물노동자의 운임을 깎아서 만회했습니다. 밑바닥 운임이 고착화 되고 이는 곧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져 도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화물연대가 안전운임 제도를 주장한 이유입니다. 안전운임 제도 시행 이후에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이 컨테이너의 경우 1%대로 감소했습니다. 다단계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그렇게 강조하시는 주체 간 대화와 협력도 안전운임 제도의 틀 안에서 지속해 왔습니다. 지난 3년간 안전운임위원회에서 화주-운수사업자-화물차주 그리고 공익위원까지 참여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논의해 왔습니다. 제도 일몰만 걸려있지 않았더라도 화주가 위원회를 보이콧하는 일은, 그렇게 사회적 합의 틀이 깨져서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나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대통령께서 안전운임 제도를 마치 '국가전복음모' 수준으로 호도하고 계시지만, 안전운임 제도는 노사 평화와 산업의 안정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했습니다. 무한경쟁을 유발하고 노동자와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파괴적 물류시장을 정상화하는 제도이지, 시장 경제에 어긋나는 제도는 아닙니다. 안전운임 제도를 이렇게까지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기업 화주들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전운임 제도는 이제 일몰을 채 한 달도 안 남겨두고 있습니다. 화물연대가 현장으로 복귀하자마자 대통령께서는 안전운임 제도에 대한 화주들의 소원 수리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화물노동자의 파업을 불법화하고,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강제노동을 시키고, 안전운임제도의 폐지를 통해서는 화물운송산업의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화물운송산업을 실패 한 '시장질서'가 아니라 '안전운임'을 통한 새로운 질서의 확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화물연대는 나와, 동료와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이 새로운 질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화주의 비용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물연대 총파업'이라는 전투에서 대통령이 승리했을지 몰라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화물연대는 목숨을 건 투쟁으로 우리사회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제 화물노동자의 절규에 우리 사회가 화답할 것입니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어떠한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자본과 모든 '법과 원칙'을 동원하며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여당이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도 지속과 품목확대를 위한 국회 내 논의기구 구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2년 12월19일, 영하 10도의 여의도 농성장에서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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