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만약 세상에 반도체 월드컵이 열린다면? <2편-중국·대만·EU>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습니다. 리오넬 메시 선수가 ‘축구의 신’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죠. 정말 월요일 새벽 짜릿한 재미를 주는 결승전이었습니다.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끝이 났지만 말이죠. 반도체 업계에서는 월드컵만큼 더 처절하고 치열한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술 패권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죽고 사는 문제’가 됐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올 정도인데요.
그래서 지난 주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만약 세상에 반도체 월드컵이 열린다면? <1편>'에서는 세계 시장에 반도체 월드컵이 열린다고 가정했을 때 강팀으로 꼽히는 한국·미국·일본 반도체 대표팀의 전력을 분석해봤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강자인 중국, 대만, 유럽연합(EU) 대표팀의 라인업과 올해 있었던 이슈들을 살펴보면서 이들이 어떤 전략으로 ‘반도체 월드컵’에 대응해 나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주의: 분량 압박이 상당합니다.
◇중국 반도체 대표팀, 미국의 전방 압박 견뎌낼 수 있을까
지난 2015년. 중국 정부는 야심찬 발표를 합니다. '반도체 굴기(?起: 우뚝 섬)'. 10년 뒤인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인데요.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세계 반도체 소비량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대만·한국 등에서 수입하는 반도체가 너무 많아지고 무역 적자가 늘어나자 자체 반도체 생산과 기술 투자에 고삐를 죄기 시작한 겁니다.
이후 중국의 투자는 어마무시했습니다. 2015년 이후 10년 간 1조 위안(약 188조원)을 쏟아 부으면서 메모리·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 설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한번쯤 들어본 푸젠진화(JHICC·D램), 양쯔메모리(YMTC·낸드업체), 창신메모리(CXMT·D램), 중신궈지(SMIC·파운드리), 하이실리콘(시스템반도체 업체·화웨이 자회사) 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히 D램과 낸드 회사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에서 일했던 우리나라 고급 인력들을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는 사례도 늘어나면서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지게 됐습니다.
바닥에서 시작한 중국은 무섭게 인프라와 기술을 끌어올리는 중입니다. 중국 내 소재업체 안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현지에서만 운영 중인 중국 회사 팹만 52개(12인치·8인치 웨이퍼 통합)로 집계됩니다. 기술 수준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YMTC는 192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하면서 낸드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기술력을 바짝 추격 중입니다. SMIC는 세계 5위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해 지속 생산 확장의 기회를 넘봅니다. 2015년 17%에 불과했던 반도체 소재 내재화율은 어느덧 27%를 넘었고 무수불산·황린 등 환경과 안전 이슈가 있는 반도체 원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도 현지 팹리스 수가 급증하고, 각 연구 기관들이 특허 확보에 주력하며 아시아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모습도 보입니다. 중국 우시 ‘중국 반도체 설계 산업 연례회의(ICCAD 2021)’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팹리스 기업은 총 2810곳에 달합니다. 2016년 1362곳에서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한국의 팹리스 업체 수(120곳)의 20배를 넘는 수준입니다.
이런 중국을 라이벌인 미국이 그냥 두고 볼수만은 없죠. 반도체 공급망 회복을 꿈꾸는 미국은 '반도체 종가'로서 축적해둔 모든 노하우와 기술을 동원해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2018년에는 중국 내 D램 개발을 주도하던 푸젠진화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제재를 받은 뒤 그 기세가 아예 꺾여버렸고요. 2019년과 2020년에는 화웨이 시스템 반도체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케이던스·시높시스 등과의 거래가 제한되면서 한때 업계 톱 10까지 들어왔던 회사 규모가 지난해 세계 25위권 바깥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2019년에는 네덜란드의 ASML이 미국 제재 영향으로 중국 내 극자외선(EUV) 장비 판매를 못하게 된 뒤 여태 중국 내 EUV 장비 거래 사례가 없습니다.
올해 미국은 더욱 강력한 중국 압박 전술을 들고 나왔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10월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시스템반도체 생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D램과 낸드플래시는 중국 현지 메모리 회사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 14㎚ 이하 시스템반도체 생산 장비의 수출 통제는 SMIC를 겨눈 조치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 등 미국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중국 내 매출 타격을 감소하면서도 중국의 반도체 수족(手足)을 잘라내겠다는 '아주' 강한 결심이 보입니다. 이번 달에는 일본·네덜란드까지 이 제재에 동참하게끔 협의 중이라는 미 상무부 발표까지 나왔죠. 지난 15일에는 YMTC, 캄브리콘 등 36개 중국 반도체 기업을 '블랙리스트'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4년 YMTC가 반도체 생산을 중단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중국도 미국 발 위기 속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 일본·네덜란드와의 공조를 언급한 뒤 중국은 향후 5년 간 걸쳐 1조 위안(186조원) 지원금을 마련해 반도체 생산·연구에 투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제재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도 했고요. 현지에서는 어떻게든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고급 인력 영입·소부장 국산화에 안간힘을 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과연 중국이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앞세워 반도체 굴기에 다다를 수 있을지 △미국은 중국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나갈지 △G2의 치열한 싸움으로 중국에 거점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업계에서는 이 세 가지가 내년 세계 반도체 산업을 관전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TSMC 보유국 대만, 세계 최강 '실리콘 방패'
대만 대표팀의 최전방 원톱 스트라이커는 세계 파운드리 업계 50% 이상 점유율을 지배하고 있는 TSMC입니다.
TSMC의 가장 큰 장점은 1987년부터 쌓아온 파운드리 노하우와 설비입니다. 첨단 극자외선(EUV) 기술부터 후방 8인치 파운드리 기술까지 풍부한 설계자산(IP)과 생산 기술을 확보하고 있고요.
생산 인프라 12인치 웨이퍼 환산 기준 연간 1300만~1400만장을 생산합니다.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의 지난해 월간 12인치 웨이퍼 생산량이 약 42만장으로 알려진 걸 고려하면, 연간 생산량이 2배 이상 차이가 나죠.
또 7나노 이하 공정을 위해 필요한 대당 2000억원 수준 EUV 노광기 대수는 100대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죠. 총 40대 가량 EUV 노광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와 첨단 공정 생산 규모에서 차이가 나는 상황입니다.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등 유명한 반도체 설계 거물들이 TSMC 공장에 생산을 맡깁니다.
패키징 기술에서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회로 미세화 한계로 한 개 칩에 연산장치(트랜지스터)를 넣는 작업이 쉽지 않게 되자, 여러 개 칩을 한 개 칩처럼 이어붙이는 패키징 기술이 화두가 되고 있죠. TSMC는 이 분야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지난 10월 '3D 패브릭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OIP)'을 출범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메모리 업체는 물론 케이던스, 시높시스 등 각종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앰코·ASE 등 패키징 업체까지 포함돼 있는데요. 업계에서는 사실상 TSMC가 '내가 3D 패키징에 대한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대만에는 TSMC만 있는 게 아닙니다. TSMC를 중심으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상당히 조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 대표 선수는 '미디어텍'이 있습니다. 미디어텍은 아시아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업체 가운데 최강자, 세계 팹리스 5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기업입니다. 중·저가 시장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해서 '퀄없미왕(퀄컴이 없으면 미디어텍이 왕)'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출하량 기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 점유율은 미디어텍이 39%로 1위, 퀄컴이 29%로 각각 1,2위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매출 기준으로는 퀄컴이 44%, 미디어텍이 22%로 퀄컴이 앞섭니다. 퀄컴이 고성능(이자 비싼) 반도체를 많이 팔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이죠.
다만 이들을 '싸구려 반도체' 업체라고 치부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TSMC와의 오랜 협력으로 5나노 반도체는 물론 4나노, 3나노 칩 설계까지 순항 중입니다. 모바일폰 외에도 AP TV, 무선통신 칩셋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생산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도 상당히 튼튼합니다.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를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것이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또 미디어텍 외 GUC, 알칩 등 TSMC와 생태계를 꾸리는 디자인하우스를 포함한 250개 팹리스, TSMC와 세계 3위 UMC 등 13개 파운드리, 37개의 후공정 업체들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만반도체산업협회(TSIA) 자료에서 볼 수 있듯 이런 탄탄한 생태계를 바탕으로 대만 반도체 산업은 꾸준히 성장 중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시장 비수기 영향으로 그 기세가 약간 꺾이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 시장 성장률 대비 타격을 덜 받으면서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는 스쿼드를 갖춘 것이 상당히 부럽습니다.
올해는 해외 소부장 업체의 투자도 있었습니다. 지난달 네덜란드 ASML은 대만에 300억 대만달러(약 1조2000억 원)를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ASML은 이미 대만에 5개 공장을 운영하며 450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데요. 2023년까지 신규 생산 공장과 R&D 센터를 설립한다고 하죠. 비슷한 시기 경기도 화성시에 2400억원을 투자해 새로운 트레이닝센터·재제조센터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규모보다 5배 정도 큽니다.
올해 대만은 지정학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이 대만에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와중에도 중국이 무력 강도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반도체'입니다. 중국의 무력 공세로 TSMC 운영에 타격이 간다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될 확률이 높죠. TSMC와 대만의 견고한 반도체 생태계가 어느 때보다 단단한 방패, 이른바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 무기가 된 셈입니다.
그런 와중에 TSMC의 움직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에 신규 공장 구축과 함께 투자 규모를 더욱 늘리려고 하고 있죠. 반도체 주요국들과 첨단 기술·공급망 협력을 타진하려는 움직임도 있겠지만요. 대만 본토에 몰려있는 반도체 인프라를 세계 각지로 분산시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내년 TSMC의 움직임과 미국과 대만 간 공급망 동맹, 시시각각 바뀌는 중국의 압박을 관찰해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U, 반도체 신대륙 발견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EU) 대표팀 역시 반도체 육성을 위해 활발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EU는 삼성전자, 인텔, TSMC같은 세계 톱 10 규모 초대형 반도체 회사를 확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알짜 회사들이 많습니다. 독일에 본사를 둔 인피니언 테크놀로지, 네덜란드 NXP, 스위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은 차량용 반도체 5대장(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일본 르네사스 포함) 안에 드는 강자들입니다. EU 안에 있는 폭스바겐, BMW 같은 세계 최강 자동차 업체들과 협력이 가능하죠. 지난 2020년 극악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이슈 이후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칩 개발에 뛰어든 것도 포인트입니다. 올해 폭스바겐은 TSMC와 협력해 새로운 고급 반도체를 개발하겠다고도 알린 바 있습니다.
유럽에는 뛰어난 반도체 소부장 강자들도 포진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륙과는 달리 ‘원톱’ 스트라이커를 맡고 있는 회사는 칩 제조사가 아닌 장비 회사 네덜란드 ASML입니다.
ASML은 EUV 노광 장비를 세계에서 100% 독점 생산하는 초대형 장비 회사인데요. 현재 ASML은 연간 40대 안팎의 EUV 장비만을 생산할 수 있어 칩 제조사 간 치열한 수급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죠. 다만 이 회사는 2025~2026년까지 지금의 2배 이상인 90대가량 EUV 장비, 2027년~2028년까지 20대 이상의 하이(High)-NA EUV 장비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고 하니 향후 생산 규모와 EUV 공급망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DUV(불화아르곤(ArF), 불화크립톤(KrF) 등) 장비까지 유력 반도체 회사들에게 공급하면서 세계 노광 시장 점유율의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캐논 등이 옛 명성을 찾고 ASML의 아성을 깨기 위해 최근 신공장 투자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내년 노광 장비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네덜란드에는 ASML 말고도 ASM이라는 세계 톱 10 장비 회사도 있습니다. 이 회사는 반도체 공정을 위해 웨이퍼에 막을 쌓아 올리는 증착 공정 중 분자층이 아닌 ‘원자층’ 두께로 상당히 얇은 막을 쌓아올리는 ‘원자층증착(ALD)’ 선구자입니다. 앞으로 반도체 공정에서 ALD의 활용도가 늘어나는 만큼 이 장비 회사의 성장도 기대해 볼만 합니다.
독일에도 눈여겨볼 만한 반도체 대표 소부장 선수들이 있습니다. 자이스(Zeiss)라는 회사인데요. 이 회사는 광학계, 그러니까 빛과 레이저 기술을 이용한 제품들을 상당히 잘 만듭니다. 1846년부터 지금까지 광학계 기술만 파낸 기술 회사죠. 자이스는 EUV 장비 안에서 까다로운 성질의 EUV 빛을 잘 반사해 웨이퍼에 도달하게 만드는 ‘미러’라는 부품을 ASML에 독점 공급하는 것으로 상당히 유명합니다. 미러 하나가 수억 대에 달하고, 최첨단 렌즈 기술이 총동원된다고 합니다. 올해 10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독일 자이스 본사를 찾아 회사의 생산 인프라를 살펴보는 등 새삼 자이스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입니다. 최근 자이스는 한국에 480억원을 투자해 R&D 센터 설립한다고도 발표했습니다.
자이스와 함께 반도체 소재로 한국에 잘 알려진 기업은 독일 머크(MERCK)가 있습니다. 머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에 각종 반도체 소재를 공급하기도 하는데요. 지난해 10월 한국에 2025년까지 6억유로(약 8300억원)를 투자해 R&D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한국과 친분을 과시하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최근 EU는 대륙 내 반도체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달 EU는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430억유로(약 59조원)을 쏟아붓는 EU 반도체법(Chips Act)에 합의했습니다. 2030년까지 EU의 전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현재의 2배 수준인 20%로 키우는 것이 목표인데요. 지난 2월에 처음으로 반도체법을 제안한 지 약 10개월 만에 이뤄진 일입니다.
조금 전 톱 10 업체가 유럽에 없다고도 말씀드렸죠. EU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굴지의 기업들을 유럽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미국 인텔은 지난 3월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2027년부터 가동할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 170억 유로(23조5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죠. 아일랜드 공장 규모는 2배로 늘리고, 프랑스·이탈리아 등에 R&D·패키징 시설까지 들이면서 10년간 800억유로(110조원)를 투자하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함께 발표했습니다. 최근 인텔이 EU에 독일 반도체 팹 건설을 위한 추가 보조금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나왔는데요. 어떤 결론이 날 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TSMC 역시 독일 공장 설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결론이 날지 지켜봅시다.
유럽 내 각국 정상 역시 반도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1편에서 언급드렸듯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11월 잇따라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시찰하면서 반도체 팹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갔는데요. 향후 우리나라 기업과 유럽 간 협력이 있을 지도 지켜볼 대목입니다.
어떠셨나요, 여러분. 세계 각국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대표 선수를 발굴하려는 모습이 꼭 월드컵 같지 않나요.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코페티션(Cooperation+Competition)’ 양상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리나라 역시 반도체 핵심 기술을 지니고 있는 만큼 글로벌 이슈에 귀를 기울이고 발빠른 정책을 시행하면서 대응해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들, 메리 크리스마스! :)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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