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피하기 어려운 ‘위드 코로나’ 다리 앞에 선 중국
중국이 드디어 코로나의 강을 건너는 걸까. 2022년 전 세계는 부단히 일상을 되찾아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국경이 열렸다. 중국만은 예외였다. 감염자 한 명도 허용할 수 없다는 기조 아래 극단적인 고강도 방역 정책을 3년째 고수해왔다. 다른 나라들이 ‘위드 코로나’의 영토로 넘어갔다면 중국은 홀로 강 건너편의 ‘제로 코로나’ 대륙에 남아 있었다.
12월 들어, 철통같던 중국의 코로나19 대응 태세에 전향적 변화가 찾아왔다.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 지방정부에서 방역 수위를 낮췄다는 뉴스가 속속 전해졌다. 12월7일에는 중국 국무원이 방역 조치를 큰 폭으로 푸는 10개 조치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증상에 관계없이 확진자 전원을 시설에 격리했는데, 이번 조치에 따라 무증상·경증 확진자들은 ‘자가격리’를 택해 집에 머무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이 팡창(方艙·격리시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 주민들 사이에서는 ‘시설격리’에 대한 반감이 쌓여왔다. 지역 간 이동을 할 때 PCR 음성 결과를 제출하는 의무도 해제됐다. 감염 취약시설 이외의 공공장소에 들어갈 때도 PCR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11월 말, 중국 각지 그리고 해외에서도 터져 나온 ‘백지 시위’ 이후 뒤따른 일대 변화다. 억압적 봉쇄정책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PCR 원하지 않는다. 자유를 원한다” “시진핑 물러나라! 공산당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성난 민심을 확인한 중국 정부가 인민들의 요구를 계기로 고강도 방역으로부터 출구 찾기에 속도를 붙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통상팀의 박민숙 전문연구원은 상황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제로 코로나’ 종료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아직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반대 시위 이후 중국공산당 지도부에서 나온 발언들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메시지이다.”
중국의 방역 사령탑으로 통하는 쑨춘란 부총리는 11월30일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전문가 간담회에서 “오미크론 변이의 증상이 덜 치명적이고, 많은 이들이 백신을 접종받은 데다 코로나에 대한 예방 경험도 쌓이면서 코로나와의 전쟁은 새로운 단계에 돌입했다”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인구 대국인 중국에서 오미크론이 여전히 많은 사망자를 낼 수 있다는 경고 없이, 중국의 고위 관료가 바이러스의 특성 변화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신봉했지만, 중국 밖에서는 제로 코로나 전략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가 누누이 제기되어왔다. 오미크론 변이는 코로나19 오리지널 타입, 델타 변이보다 치명률은 떨어지고 전파력은 한층 강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2021년 말에서 2022년 초 오미크론이 전 세계적 우세종이 되면서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등 적극적인 방역을 펼치던 나라 대부분이 그간 고수하던 대응 기조를 전환했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 오미크론이 한창 퍼질 때 기존 방역 조치들로 감당이 안 됐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비슷한 압력이 점점 누적돼오다 더는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기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강력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가 다른 나라보다 오랫동안 오미크론 유행을 억눌렀지만 이제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달 사이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급격히 불어났다.
130만~210만명 사망 예측한 모델링
방역의 효과는 꺾인 반면 피해와 비용은 점차 또렷하게 가시화됐다. 백지 시위의 도화선이 된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우루무치 화재 사고’는 제로 코로나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사상자 19명을 초래한 참사 이후 바리케이드에 막힌 아파트 단지 밖에서 불이 난 아파트를 향해 물을 쏘는 영상이 돌았다. 봉쇄 때문에 구조와 대피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주장이 빠르게 힘을 얻었다. 신장웨이우얼 지역은 100일 넘게 봉쇄조치가 내려진 상태였다. 앞서 9월에는 격리시설로 주민들을 이송하던 버스가 전복돼 27명이 사망했다. 제로 코로나가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보다는 위협하는 사건이 잇따르며 쌓였던 불만에 불이 붙었다. 오랜 기간 누적돼온 사회경제적 피해와 인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부조리가 결합하면서 공산당 지도부가 무시하기 어려운 경고음이 울렸다.
최근 일련의 조치에 비춰보면 중국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 향하는 다리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다리에 접어든다면 그때도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고, 그 피해를 줄일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현재 중국이 처한 곤란함이다. 〈상하이 예방의학저널〉에 게재된 중국 논문에 따르면, 중국 본토가 홍콩처럼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는 경우 확진자 수가 2억3300만명으로 늘고 사망자는 200만명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네이처〉는 영국의 정보분석 업체 에어피니티의 모델링 결과를 인용해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종료하면 3개월 동안 1억6000만~2억8000만명이 감염되고 그 결과 130만~21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예측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0만명 넘는 사망자 발생이 추정되는 것이다.
사망자 규모 100만명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월8일 기준 공식적으로 집계된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는 660만명이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108만명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미국은 3년에 걸쳐 이 정도 숫자의 사람들이 숨졌지만 중국에서는 그보다 단기간에 사망자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차단 전략으로 유행을 낮은 수준에서 억제하다 오미크론 확산 시기에 방역을 완화한 나라들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는 패턴을 보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2월1일 ‘중국이 빠진 제로 코로나의 늪(China’s Zero-COVID Trap)’이라는 기사에서 2022년 초 홍콩의 사례를 다루었다. 중국 본토 못지않게 억압적이고 강력한 방역 정책을 시행했던 홍콩은 전파력 높은 오미크론의 압력에 떠밀려 그간 고수했던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힘을 잃었다. 인구 750만명인 홍콩에서 2~4월 10주 동안 약 9000명이 숨졌다.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 그래프를 보면 이 시기 홍콩의 그래프는 고드름을 뒤집어 놓은 듯 뾰족하다(〈그림 1〉 참조). 홍콩보다 봉우리가 낮긴 하지만 한국도 지난봄 오미크론 대확산 시기에 사망자 그래프가 불쑥 치솟은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에서는 화장터가 포화되고 장례가 며칠씩 밀리는 일이 벌어졌다. 2~4월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약 1만6000명으로 파악된다.
지난 3년을 보내며 팬데믹의 전개 방향은 명확해졌다. 코로나19의 파도가 훑고 지나가며 인구의 전체적인 면역수준이 높아져야 사회를 제약하는 방역 조치 없이 유행이 안정세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백신접종은 이 과정에서 감염으로 얻은 자연면역에 인공면역을 더하고, 감염자의 상태가 중증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큰 파도가 치고 지나간 뒤에도 유행이 오르락내리락하기는 하지만 일상 속에서 코로나와 함께 살기를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위드 코로나’ 영토에 들어선 나라들은 이러한 코로나의 강을 건너왔다. 인구 100만명당 각국의 ‘누적’ 확진자 수를 나타낸 〈그림 2〉를 보면 아직 코로나의 강을 건너지 못한 중국의 위치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역학자인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답은 정해져 있다. 거기에 도달하는 풀이 과정을 어떻게 쓰느냐가 남아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모범 풀이 과정’은 이미 나와 있다. 백신접종률을 높이고 의료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제로 코로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방역을 완화하면 바이러스는, 특히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퍼진다.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니 백신접종률을 높여 중증 환자 발생을 줄이고, 중증 환자가 생기더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역량을 확충해 인명 피해를 줄여야 한다.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희생 불가피
간명한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해내기는 매우 어렵다. 중국은 백신접종률 자체가 낮지 않지만 고위험군인 고령층에서는 비율이 떨어진다. 80세 이상 3차 접종자는 40%대로 집계됐다. 중국 정부가 고령층의 백신접종률 제고에 나섰지만 중국에서 쓰이는 자국산 백신이 화이자나 모더나의 mRNA 백신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 불안 요소이다.
중환자 병상 확보로 대표되는 의료 측면의 준비는 더욱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의료 자원이 두텁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의 인구 10만명당 중환자 병상 수는 3.6개로 한국과 비교해 3분의 1 정도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인구를 고려하면 대규모 유행이 닥쳤을 때 국가 전체의 중환자실을 동원하더라도 코로나19 중환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중환자실은 시설도 시설이지만 중환자 치료를 할 줄 아는 인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병상을 늘릴 수도 없다. 중증 환자가 중환자 병상에 들어가지 못하면 대부분 사망한다고 봐야 한다.”
점진적으로 방역을 완화해서 확진자가 천천히 늘어나게 하는 방법은 어떨까? 정재훈 교수는 “방역으로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데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공식 인구는 14억2588만명이다. 이런 인구 대국에서 단기간에 대규모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면 그 파장을 짐작하기 어렵다. 한국만 해도 오미크론이 급격히 확산되던 2022년 봄 몇 달간 큰 혼란을 겪었다. 보건의료 분야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회가 마비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업마다 재난 발생 시 ‘업무지속계획’인 BCP(Business Contingency Plan)를 세워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중국은 어떨까? 코로나의 강을 건너는 데 깔려 있는 혼란마저 강력한 중앙통제로 질서 있게 관리해낼 수 있을까? 뒤로 돌아간다 해도, 앞으로 나아간다 해도 희생을 피하기 어려운 다리 앞에 중국은 서 있다. 2020년 우한 이후 중국 대륙은 또 한 번 코로나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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