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처럼 싫진 않지만 과거를 잊을 순 없다 [2022 한국인의 대일본 인식 ①]

김은지 기자 2022. 12. 2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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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현재 우리에게 친구인가, 위협인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은 일본과 어떻게 지내야 하나. 〈시사IN〉은 한국리서치와 공동 기획으로 ‘2022년 한국인의 대일본 인식’ 웹조사를 실시했다.
11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연합뉴스

2022년 한국인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먼저 2022년의 국제관계부터 살펴야 한다. 훗날 역사가들은 올해를 거대한 변환기로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현상 변경’을 가리키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했다.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이루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바이든의 민주당이 수성했다. 타이완의 지방선거에서는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여당(민진당)이 참패했다.

위처럼 올해 이어진 국제적 사건들의 핵심 축에는 ‘미국과 중국’이 있다. 그래서 각각의 사건들이 세상을 어느 쪽으로 이끄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살펴야 한다. 지정학적 위기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 놓인 한국인에게 국제 정세는 생존과 연관된 이슈다.

그래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은 현재 우리에게 친구인가, 위협인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구심점이 점점 더 강해지는 현실에서 한국은 일본과 어떻게 지내야 하나. 대중국 견제를 위해 두 나라가 한 배를 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반면 과거사를 사과하지 않는 일본과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실제 한국인의 인식 속에서 일본은 어떤 나라이고, 그것이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세대별·지지 정당별 인식 차이와 각 정치권의 대(對)일본 대응에 관한 평가는 어떠한가. 왜 우리는 일본과 잘 지내야 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훼손할 수 없는 원칙이 있나, 여론의 역린은 어디인가 등등. 다양한 질문이 따라붙는다. 〈시사IN〉이 ‘2022년 한국인의 대일본 인식’을 조사한 이유다.

〈시사IN〉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와 공동 기획으로 248개 질문 문항을 설계해 웹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웹조사 설계와 분석에는 한국리서치의 정한울 연구위원(정치학 박사)과 이동한 여론본부 차장, 이소연 연구원이 함께했다.

‘감정온도 2위’로 올라온 일본

2022년 11월 말 현재 한국인의 주변국(미국·중국·북한·일본) 감정온도 중에는 단연 미국이 가장 높다(〈그림 1〉 참조). 감정온도가 0이면 매우 부정적, 50이면 부정도 긍정도 아님, 100이면 매우 긍정적이다. 미국은 62다. 다음으로 일본 36.2, 중국 27.3, 북한 24.3 순이다. 일본·중국·북한은 미국에 비하면 ‘하위 리그 다툼’이랄 수 있는 수치다.

하지만 시계열로 비교하면 꽤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된다. 2018년 하반기 북한에 대한 감정온도는 최근 4년 중 가장 높은 48.7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연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당시 흐름이 반영됐다.

2020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감정온도는 4개국(미·중·북·일) 중 가장 낮았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에 반발해 일본이 반도체 관련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무역 보복’을 했다. 그러자 한국 시민들은 ‘노재팬(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벌였다. 2019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에 대한 감정온도는 21이었다. 지난 4년 중 가장 낮은 때였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반등 추세다.

일본과 화해 무드에 들어섰다는 뜻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을 몇 가지 대비되는 이미지로 물었다. 신뢰-불신, 친구-적, 책임-무책임과 같이 세 가지 질문 항목에 대한 응답이 〈그림 2〉다. 긍정 응답은 낮았다. 신뢰(10.6%), 친구(10.9%), 책임(13.1%)은 모두 10%대다. 부정 평가가 절반에 가깝거나 넘는다. 다만 ‘어느 쪽도 아니다’가 세 항목 모두에서 30% 이상을 차지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이런 ‘데면데면함’의 배경은 〈그림 3〉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각 영역의 나라별(한국·미국·중국·일본) 역량을 물었다. 전 세계 최상위·중상위·중간·중하위·최하위 중 어느 수준인지 평가해달라고 했다. 항목은 △대중문화 △군사력 △경제 분야의 국제경쟁력 △복지 △정치 및 민주주의 5가지였다. 이 중 최상과 중상위라고 한 대답을 추렸다.

우리 자신이 보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평가(68.8%)는 미국(71.3%)에 버금간다. K팝·K콘텐츠의 선전 덕이다. 일본(32.5%)을 압도한다. 군사력(한국 44.5%, 일본 42.2%), 복지(한국 34.4%, 일본 36.5%)에 대해서는 한·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고 평가했다. 경제 분야의 국제경쟁력(한국 43.1%, 일본 51.8%)과 정치 및 민주주의(한국 16.2%, 일본 21.1%)는 일본보다 부족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한국은 부상하고 일본은 쇠퇴할 것”

일본이 ‘좋지도 싫지도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한·일 사이 격차가 있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일본의 미래 전망에 부정적이다. 지금도 일본을 군사·경제에서 세계 최고 대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림 4〉 참조). 게다가 10년 후 일본의 상황에 비관적이다(〈그림 5〉 참조).

현재 각 나라의 국가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대답은 31.2%, 중진국은 54.2%였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대답은 51.1%, 중진국은 38.7%였다. 그러나 10년 후 한국이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응답은 일본을 넘어선다. ‘한국 부상, 일본 쇠퇴’를 전망하는 여론이 큰 것이다. 10년 후 한국은 선진국 45.5%, 중진국 41.1%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10년 후 일본은 선진국 34.7% , 중진국 45.1%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조만간 한국이 일본의 국력을 추월할 것이다’(63.3%)라거나, ‘일본의 국력은 쇠퇴하고 있다’(67.7%)라는 응답이 많았다(〈그림 6〉 참조).

이런 조사 결과를 두고 단순히 ‘국뽕’이나 희망 섞인 인식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실제로 최근 발표된 각종 국제사회의 경제·군사력 지표에 따르면, 한·일의 차이가 크지 않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2022년 군사력 지수에서 전 세계 142개국 중 일본을 5위, 한국을 6위로 꼽았다. 지난해 일본(〈니혼게이자이 신문〉 계열 연구소 일본경제연구센터)에서도 2027년이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명목GDP)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 때문에 한·일 관계 재설정에서 한국이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토대는 마련됐다.

그럼에도 〈그림 7〉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 대한 위협 인식은 남아 있다. ‘일본은 세계와 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57.4%), ‘일본은 위협적이다’(43.5%)라는 응답이 그렇다. 이는 현재의 경제·군사력에 대한 평가, 미래 역량에 대한 평가와는 사뭇 결이 달라서 모순돼 보이기까지 한다.

이 모순됨을 이해하는 것이 한·일 관계의 핵심이다. 그 요체에는 과거사가 있다. 한국인 대부분은 일본의 과거사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그렇기에 일본의 과거사 사과가 더 필요하다(87.8%)(〈그림 8〉 참조). 동시에 한·일 관계에 관심이 있고(80.4%),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79.2%)고 생각한다(〈그림 9〉 참조).

당면한 현실에 기반한 판단이다. 한·일 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71.5%), 한·일 간 민간교류에 영향을 미쳐서(51.5%), 중국의 영향력을 함께 견제해야 해서(45.4%),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39.3%)서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복수 응답 가능, 〈그림 9-1〉 참조).

하지만 이러한 관계 개선에 앞서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일본의 과거사 사과(77.5%)’가 독보적인 1등으로 꼽혔다(〈그림 9-2〉 참조). 한·일 관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는 복합적이다.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이라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71.9%)’라면서도,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관계의 실질적 개선은 이뤄지기 어렵다(76.5%)’라고 인식한다(〈그림 8〉 참조). 쉽지 않은 문제다.

이를 풀어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한·일 양국은 대체로 이 미묘함을 푸는 데 실패해왔다. 2015년 박근혜-아베 정부가 실시했던 12·28 ‘위안부’ 합의가 대표적이다. ‘촛불 혁명’ 이후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에 부정적이었다. 갈등은 문재인-아베 정부 당시 불거진 일본의 무역 보복, 한국의 불매운동과 ‘지소미아’ 논란 등으로 이어졌다.

‘가치 외교’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며 한·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5년 만에 한·미·일 3국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한국은 북한 도발에 대응이라고 강조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공조라는 것이다.

“그래도 과거사 사과는 받아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는 한·미·일 3국 연합훈련을 두고 ‘친일 국방’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반박하며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해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각각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최근 실시한 한·미·일 연합 훈련’에 대해 찬성 51.6%, 반대 25.9%였다(〈그림 10〉 참조). ‘조선은 일제 침략 때문이 아닌 내부 원인으로 망했다(〈그림 8〉 참조)’에 대해서는 동의 28.3%, 비동의 66.3%였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후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뜨거운 감자’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한국 대법원 판결대로 해야 한다’(40.8%), ‘일본 기업이 책임을 인정하되 한·일 정부나 기업이 재단을 만들어 대신 갚는다’(30.8%) 순이었다. 두 번째는 일종의 타협책인데,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바로 ‘일본의 책임 인정’이다. 이 이슈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한국인이 ‘일본의 과거사 사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일본의 과거에 대해서 여론은 단호하다. 이는 한·일 관계에서 일종의 원칙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등장한다. 경제적·군사적·안보적 이유에서다. 이처럼 한·일 관계 문제는 ‘잘 다루기’가 쉽지 않다. ‘속도전’처럼 단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국인에게 ‘일본 이슈’는 까다롭다. 한·일 관계가 기본적으로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한반도와 그 주변의 국제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 한국인들이 친구도 아니고 위협도 아니라고 느끼는 일본과 공존하는 방법은, 이처럼 까다로운 유권자의 요구를 제대로 읽는 데서 출발할 수 있을 듯하다.

11월2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운데)의 기자회견이 열렸다.ⓒ시사IN 신선영

 

이렇게 조사했다
조사 일시: 2022년 11월25~28일
조사 기관: ㈜한국리서치
모집단: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표집틀: 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2022년 10월 기준 전국 80만여 명)
표집 방법: 지역·성·연령별 기준 비례할당 추출
표본 크기: 1000명
표본오차: 무작위 추출을 전제할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 표집오차는 ±3.1%p
조사 방법: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가중치 부여 방식: 지역·성·연령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2022년 10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
응답률(협조율): 조사 요청 6312명, 조사 참여 1379명, 조사 완료 1000명(요청 대비 15.8%, 참여 대비 72.5%)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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