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 “단절, 낮아진 목청과 경향 없는 경향성…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분투”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소설과 시, 평론 모두 응모편수는 지난해보다 조금 줄었다. 단편소설은 지난해 744편에서 723편으로, 시는 1065건(1건당 3편 이상, 모두 3195편 이상 추산)에서 966건(2898편 이상 추산)으로, 평론은 46편에서 29편으로 각각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응모작의 내용과 밀도는 이전보다 더 풍성해지고 진해졌으며 수준 역시 높아졌다는 게 예심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올해 세계일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경향과 표징을 소설과 시 부문을 중심으로 예심 심사위원들(가나다순)에게 들어본다.
<소설 부문>
오태호 평론가=“신춘문예 소설 예심은 서사의 새봄을 마주하려는 문학청년들의 치열한 마음과 공들인 솜씨를 들여다보는 고된 작업이다. ‘즐거운 고역’ 속에서도 기꺼운 마음으로 한 해 동안 쌓아올린 투고자들의 노작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에서, 핍진하게 플롯을 짜깁기하는 현재적 감수성에 주목했다. 인물들의 내면에 새겨진 ‘과거의 상흔과 육체적 장해, 퇴직과 실연, 병통과 죽음’ 등을 추적하는 전통적 서사를 비롯하여, ‘각종 아르바이트와 배달 노동, 반려동물, 디아스포라적 현실’ 등의 현재적 표정이 포착되고, 미정형의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는 ‘포스트 휴먼’이나 인공지능의 가능성도 탐색 중이었다. 서사적 상상력의 약진은 안정감 있는 문장력의 단단한 내공과 함께 지연과 반전, 암시와 복선, 비유와 상징 등의 미학적 장치가 적재적소에서 감각의 빛을 발할 때 달성된다. 단편 소설의 전략적 목표는 세부 묘사가 지닌 전술적 설득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셈이다. 허구적 개연성과 세밀한 묘사력의 균형 감각이 소품들의 유기적 활용 속에 하나의 주제로 집약될 때 서사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해진 소설가=“2020년대는 코로나와 함께 시작됐다. 세계의 최전선에서 현실을 직면하는 장르답게 올해 응모된 소설들에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경직되고 소극적인 자세에 익숙해진 인물들과 마스크, 낯설어진 맨얼굴, 배달 앱처럼 ‘사회적 거리두가’와 관련된 같은 소재가 자주 발견됐다. ‘단절’이라는 화두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의 고달픔이라든지 노인이 된 부모를 돌봐야 하는 청년의 괴로움은 사회적 연대나 도움 없이 홀로 관계를 지켜나가야 하는 개개인의 고투가 그만큼 이 시대의 공통된 난제임을 드러내는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혹은 기존의 물질적 토대라든지 신뢰하던 관계를 잃은 탓에 저마다 표류하고 괴로워하는 인물들은 어쩌면 한동안 동시대 소설의 보편적인 얼굴이 되리란 예감도 들었다. 독자로서 공유하고 싶었던 작가의 문제의식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흩어지는 응모작이 많아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습작에 습작을 거쳐 단련된 예비 작가들의 작품들은 소설이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이 여전히 입체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쓰고 읽는 한 혼자가 아니다. 그것을 일깨워준 모든 응모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해이수 소설가=“투고작은 전체적으로 경향이 없다는 게 경향이었다. 그럼에도 특징을 꼽자면 ‘마스크 안의 웅얼거림’과 ‘몸에 대한 서글픈 고백’으로 요약될 듯하다. 우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상당수였다. 의도 전달을 위해 플롯을 짜고 복선을 깔고 구조를 세우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마스크 안에서 중얼거리듯 소리의 증폭이 작아도 상관없는 듯 했다. 다음으로 지역 나이 젠더를 떠나서 외로움에 수척해진 몸들이 많이 보였다. 캐릭터들은 원룸, 모텔, 호텔에 갇혀 홀로 울거나 혹은 취한 상태로 상대를 지나치게 억압했다. 본인과 가장 가까운 몸을 가장 모르는 주인공의 엔딩은 대개 미완적이고 미온적이었다. 단편의 프레임이 바뀌더라도 ‘소설적 사건’은 어느 정도 뜨거워야 제 맛이지 않을까. 특히 몇 백 편 중 한편을 택하는 공모전에서는 제법 뜨거워야 할 것이다. 그 뜨거운 것을 선별하는 능력이 세상사를 스토리로 담아내려는 작가의 안목이 아닐까.”
김종태 시인=“수천 편의 작품들이 응모됐다. 개인의 일상과 서정적 내면 의식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도 꽤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서는 가족사의 희로애락, 실직과 가난의 고통, 이상향에의 동경 등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고, 후자의 경우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태원 참사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것들에서는 인간 세계의 폭력성이나 부조리 같은 것이 고발되고 비판됐다. 이색적이게도, 암울한 현실 저편에서 들려오는 월드컵의 환호성을 생생하게 전달한 작품들도 있었다. 교도소에서 보내 준 작품, 노령의 응모자가 자필로 써 내려간 작품 등을 읽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사건과 재난 속에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해 내며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작품을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천수호 시인=“작년에 비해 편수는 좀 줄었다고는 하나 전반적인 시의 밀도는 높아졌다. 취미처럼 연말에만 비장하게 투고하던 원고가 현저히 줄었고, 청년실업이나 직장인의 피로감 또는 정체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젊은 층의 분발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원고마다 차분하게 연마한 흔적이 짙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닫힌 생활로 가족 이야기가 유난히 많았던 작년에 비해 시의 소재가 다양해졌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좀 더 숨통이 열렸다. 신인의 시에서는 무엇보다 모험을 기대하는 마음이 컸고, 무모한 의욕만 앞선 시가 아니라 신선한 진실을 발견한 시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긴장과 감각으로 각자의 뜨거움을 열어 보이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지하고 단정하게 심사자를 집중시키는 원고 보다 새로운 시선의 소용돌이로 휘감는 원고가 아쉬웠다.”
정리=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발열·오한·근육통' 감기 아니었네… 일주일만에 459명 당한 '이 병' 확산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