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 “단절, 낮아진 목청과 경향 없는 경향성…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분투”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2. 12. 2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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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이끌고 나갈 신진 작가의 산실인 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지난 9일 끝났다. 소설 예심은 소설가 정길연, 조해진, 해이수, 평론가 오태호씨가, 시의 예심은 시인 천수호, 김종태씨가 각각 맡아서 수고해줬다. 이날 예심을 통해 단편소설 12편과 시 20건이 예심을 거치지 않는 평론 응모작과 함께 본심으로 올라갔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되며, 당선작은 세계일보 내년 신년호 지면에 소개된다.

소설과 시, 평론 모두 응모편수는 지난해보다 조금 줄었다. 단편소설은 지난해 744편에서 723편으로, 시는 1065건(1건당 3편 이상, 모두 3195편 이상 추산)에서 966건(2898편 이상 추산)으로, 평론은 46편에서 29편으로 각각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응모작의 내용과 밀도는 이전보다 더 풍성해지고 진해졌으며 수준 역시 높아졌다는 게 예심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올해 세계일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경향과 표징을 소설과 시 부문을 중심으로 예심 심사위원들(가나다순)에게 들어본다.

<소설 부문>

오태호 평론가=“신춘문예 소설 예심은 서사의 새봄을 마주하려는 문학청년들의 치열한 마음과 공들인 솜씨를 들여다보는 고된 작업이다. ‘즐거운 고역’ 속에서도 기꺼운 마음으로 한 해 동안 쌓아올린 투고자들의 노작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에서, 핍진하게 플롯을 짜깁기하는 현재적 감수성에 주목했다. 인물들의 내면에 새겨진 ‘과거의 상흔과 육체적 장해, 퇴직과 실연, 병통과 죽음’ 등을 추적하는 전통적 서사를 비롯하여, ‘각종 아르바이트와 배달 노동, 반려동물, 디아스포라적 현실’ 등의 현재적 표정이 포착되고, 미정형의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는 ‘포스트 휴먼’이나 인공지능의 가능성도 탐색 중이었다. 서사적 상상력의 약진은 안정감 있는 문장력의 단단한 내공과 함께 지연과 반전, 암시와 복선, 비유와 상징 등의 미학적 장치가 적재적소에서 감각의 빛을 발할 때 달성된다. 단편 소설의 전략적 목표는 세부 묘사가 지닌 전술적 설득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셈이다. 허구적 개연성과 세밀한 묘사력의 균형 감각이 소품들의 유기적 활용 속에 하나의 주제로 집약될 때 서사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길연 소설가=“소통과 치유는 글쓰기의 순기능이다. 불통과 혐오의 시대에도 700편을 훌쩍 상회하는 응모작이 당도한 이유이지 싶다. 전반적으로는 목청이 좀 낮아진 듯하다. 최근의 10·29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사회 분위기를 다루기에는 시기상조라 하겠으나, 팬데믹이라든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세월호 같은 공통의 트라우마를 언급한 작품도 눈에 덜 띈다. 기득권에서 미끄러지거나 애초에 진입이 불가능한 중장년 및 청년의 좌절, 가족 또는 동료와의 불화, 아동 또는 약자에 대한 육체적 정서적 학대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 독거나 별거, 퀴어적 소재도 늘고 있고, 우주나 해외로의 공간 확장,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 이동, 평행이론 차용 등도 꾸준하다. 다만 창작자와 작중인물 상호 간에 발생한 감정이입 탓인지 대부분의 작품이 자기연민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기대했던 임팩트나 서사의 탄력성은 주춤하고, 패기도 부족해 보인다. 무대 세팅에 공력을 들이고도 메시지 전달력이 떨어지는 모노드라마 같다고나 할까. 모호한 독백이 객석에 전달되지 않듯, 독자와 분리된 채 웅얼거리는 혼잣말에서 그친 아쉬움이 크다. 자본의 증식과 지배의 욕망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세태 속에서도 읽고 쓰는 일에 면벽 정진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응모작을 낸 이들의 빛나는 선택을 응원한다.”

조해진 소설가=“2020년대는 코로나와 함께 시작됐다. 세계의 최전선에서 현실을 직면하는 장르답게 올해 응모된 소설들에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경직되고 소극적인 자세에 익숙해진 인물들과 마스크, 낯설어진 맨얼굴, 배달 앱처럼 ‘사회적 거리두가’와 관련된 같은 소재가 자주 발견됐다. ‘단절’이라는 화두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의 고달픔이라든지 노인이 된 부모를 돌봐야 하는 청년의 괴로움은 사회적 연대나 도움 없이 홀로 관계를 지켜나가야 하는 개개인의 고투가 그만큼 이 시대의 공통된 난제임을 드러내는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혹은 기존의 물질적 토대라든지 신뢰하던 관계를 잃은 탓에 저마다 표류하고 괴로워하는 인물들은 어쩌면 한동안 동시대 소설의 보편적인 얼굴이 되리란 예감도 들었다. 독자로서 공유하고 싶었던 작가의 문제의식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흩어지는 응모작이 많아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습작에 습작을 거쳐 단련된 예비 작가들의 작품들은 소설이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이 여전히 입체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쓰고 읽는 한 혼자가 아니다. 그것을 일깨워준 모든 응모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해이수 소설가=“투고작은 전체적으로 경향이 없다는 게 경향이었다. 그럼에도 특징을 꼽자면 ‘마스크 안의 웅얼거림’과 ‘몸에 대한 서글픈 고백’으로 요약될 듯하다. 우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상당수였다. 의도 전달을 위해 플롯을 짜고 복선을 깔고 구조를 세우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마스크 안에서 중얼거리듯 소리의 증폭이 작아도 상관없는 듯 했다. 다음으로 지역 나이 젠더를 떠나서 외로움에 수척해진 몸들이 많이 보였다. 캐릭터들은 원룸, 모텔, 호텔에 갇혀 홀로 울거나 혹은 취한 상태로 상대를 지나치게 억압했다. 본인과 가장 가까운 몸을 가장 모르는 주인공의 엔딩은 대개 미완적이고 미온적이었다. 단편의 프레임이 바뀌더라도 ‘소설적 사건’은 어느 정도 뜨거워야 제 맛이지 않을까. 특히 몇 백 편 중 한편을 택하는 공모전에서는 제법 뜨거워야 할 것이다. 그 뜨거운 것을 선별하는 능력이 세상사를 스토리로 담아내려는 작가의 안목이 아닐까.”

<시 부문>

김종태 시인=“수천 편의 작품들이 응모됐다. 개인의 일상과 서정적 내면 의식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도 꽤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서는 가족사의 희로애락, 실직과 가난의 고통, 이상향에의 동경 등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고, 후자의 경우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태원 참사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것들에서는 인간 세계의 폭력성이나 부조리 같은 것이 고발되고 비판됐다. 이색적이게도, 암울한 현실 저편에서 들려오는 월드컵의 환호성을 생생하게 전달한 작품들도 있었다. 교도소에서 보내 준 작품, 노령의 응모자가 자필로 써 내려간 작품 등을 읽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사건과 재난 속에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해 내며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작품을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천수호 시인=“작년에 비해 편수는 좀 줄었다고는 하나 전반적인 시의 밀도는 높아졌다. 취미처럼 연말에만 비장하게 투고하던 원고가 현저히 줄었고, 청년실업이나 직장인의 피로감 또는 정체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젊은 층의 분발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원고마다 차분하게 연마한 흔적이 짙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닫힌 생활로 가족 이야기가 유난히 많았던 작년에 비해 시의 소재가 다양해졌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좀 더 숨통이 열렸다. 신인의 시에서는 무엇보다 모험을 기대하는 마음이 컸고, 무모한 의욕만 앞선 시가 아니라 신선한 진실을 발견한 시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긴장과 감각으로 각자의 뜨거움을 열어 보이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지하고 단정하게 심사자를 집중시키는 원고 보다 새로운 시선의 소용돌이로 휘감는 원고가 아쉬웠다.”

정리=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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