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따라비오름] 제주의 농촌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2. 12. 20. 07: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귀포 표선면 가시리의 중산간 오름…세 개의 분화구 독특한 600년 말 목장
여름날의 따라비오름. 굼부리마다 신록이 한 바가지씩 담겼다.

제주도는 바람의 땅이다. 제주는 이 바람에 계절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 육지로 밀어 올린다. 봄바람 부드러운 들녘, 신록의 곶자왈과 은빛 억새 춤추는 오름, 설국의 한라산 소식도 담겼다. 바람결에 부친 이 편지는 도무지 모른 체 할 재간이 없다. 그 성화에 떠밀리듯 찾은 제주 바람의 거처, 따라비오름. 제대로 때깔 좋은 가을 풍광을 만났다.

시간을 더하는 마을, 가시리加時里. 시처럼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이곳은 서귀포시 표선면의 내륙 깊은 중산간 마을이다. 제주의 농촌 모습을 잘 간직한 가시리에 따라비오름이 있다. 어느 예술가가 '가시리는 바람 불 때 아름답다'고 했는데, 이 '가시리 바람'이 가장 도드라지는 곳이 마을 북쪽의 갑마장과 따라비오름이다. 명성 자자한 제주의 바람을 만나기에 이보다 더 멋진 곳이 있을까. 억새가 뒤덮은 따라비오름은 찾을 때마다 바람이 연출해 내는 온갖 아름다운 퍼포먼스로 걸음이 즐겁다.

따라비는 제주의 오름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숱한 오름 마니아가 자신의 베스트 오름으로 따라비를 꼽기에 주저함이 없다. 따라비는 그 자체로 비교 불가한 절경을 가졌다.

몇 해 전의 갑마장 풍광. 지금은 풍력발전기 아래로 태양광 발전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서서 볼썽사나워졌다

언제 찾아도 그대에게 힐링!

따라비의 능선에 설 때마다 여느 오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에 매료되는데, 움푹움푹 파인 세 개의 굼부리(분화구)가 한 오름 안에 들어선 모양새가 그야말로 희한해서다. 동서에서 마주 보는 두 봉우리를 남쪽 능선이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북쪽으로는 아예 트이며 키를 낮춘 몇 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지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신비롭고 멋지다.

봄날, 오름을 뒤덮은 묵은 억새 사이로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의 설렘과 주변의 드넓은 갑마장을 따라 번져가는 제주의 봄 빛깔은 말을 잃게 만든다. 각기 모양과 깊이가 다른 굼부리마다 흉내 낼 수 없는 초록이 한 바가지씩 담긴 여름날의 마법은 또 어떤가. 가을은 따라비오름이 가장 빛나는 때다. 바람결 따라 뒤척이는 억새의 춤사위가 이토록 환상적인 곳을 본 적이 없다.

서쪽 봉우리에서 동쪽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걷는 것은 가을날 최고의 사치다.

제주를 사랑해서 제주의 바람이 된 사진작가 김영갑씨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오름이 따라비다. 그가 애지중지하며 카메라에 담아오던 광활한 억새밭이 따라비오름 일대의 벌판인 갑마장이다.

지금은 그 억새지대 대부분이 사라지고, 풀밭오름이던 따라비 곳곳을 소나무가 잠식하며 옛 풍광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따라비의 아름다움은 건재하다. 현재 드넓은 갑마장엔 청정 섬 제주를 상징하는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따라비오름은 완만하고 부드러운 초지대 사이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세 개의 굼부리를 감싼, 높이가 다른 세 개의 둥근 능선이 서로 연결되는데, 그 곡선미가 환상적이다. 무엇보다 풍광에 녹아든 길 자체가 아름다워서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눈부신 청춘들에게 그 어떤 사랑의 언어가 더 필요할까? 이 길을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선 시간에 쫓기거나 얽매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 봉우리마다 놓인 벤치와 평상을 차지하고는 한껏 여유를 부려볼 일이다. 따라비오름야말로 소처럼 느릿느릿 걷거나 넋 놓고 풍광에 빠져드는 게 가장 어울리는 여행법이다.

이 오름에 '따라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웃한 오름들 때문이다. 동쪽의 알오름을 품고 있는 어머니 모지오름과 장자오름, 북쪽의 새끼오름이 따라비오름과 더불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여서다. 가장 격이라 하여 '따에비'라 하던 것이 '따래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모지오름과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형국이라고 여겨 '땅하래비'라고 했다는 등 이름에 얽힌 여러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한자로는 지조악地祖岳이라 쓴다.

따바리오름과 한라산. 건너편이 큰사슴이오름이고, 그 사이로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들녘이 갑마장이다.
정상 능선에서 본 따라비와 한라산. 제주를 대표하는 명장면이다.

600년 말 목장 유적

조선시대에 따라비오름 서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초원을 무대 삼아 산마장[개인 목장이던 사마私馬목장]인 녹산장과 우수한 말들만 따로 길러 진상했던 국영목장인 갑마장甲馬場이 설치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600년이 넘는 제주 목마장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 주는 유적이 풍부하다.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잣성을 비롯해 목감막 터와 목감집, 급수통, 목도 등이 지금도 살아남아 견고한 땅의 유전자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갑마장을 에두른 '갑마장길'을 따라가면 이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탐방은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가서 계단을 따라 바로 능선에 붙거나 오른쪽으로 둘레길을 걸어 북쪽까지 간 후 능선에 오를 수도 있다. 따라비와 잣성, 대록산, 유채꽃프라자, 조랑말체험공원(행기머체)을 잇는, 전체 10km의 '쫄븐갑마장길'을 걷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코스다. 4~5시간은 족히 걸리니 식수와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게 좋다.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가기가 힘들다. 버스가 다니는 가시리사거리에서 3km 이상 떨어져 있으며, 들어서는 포장 농로는 중간에 갈림길이 자주 나타나기에 초행이라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쫄븐갑마장길'을 걸으려면 접근이 쉬운 유채꽃프라자나 조랑말체험공원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녹산로 유채꽃길.

주변 볼거리

녹산로 유채꽃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가시리 녹산로'는 녹산장과 갑마장을 관통하는 길이다. 가시리사거리에서 조랑말체험공원과 정석항공관을 지나 대천동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길은 그야말로 '길 멀미가 나지 않는' 환상의 코스. 이곳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채꽃길로, 4월 초순이면 노란 유채꽃 위로 하얀 벚꽃도 만개해 녹산로 10km는 천상의 꽃길이 된다.

가스름 식당의 흑돼지구이.

맛집(지역번호 064)

가시리엔 제주 흑돼지고기와 순대국으로 유명한 네 곳의 식당이 성업 중이다. 나목도식당(787-1202), 명문사거리식당(787-1121), 가시식당(787-1035), 가스름식당(787-1163) 중 아무 곳이나 찾아도 먹을 만하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