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만 피하면 된다 했는데, 딱 붙었네요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으로 첫 ‘쌍천만’ 기록을 세운 윤제균 감독이 차기작으로 뮤지컬 <영웅>의 영화화를 결정했을 때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윤제균이 왜 하필?’과 ‘천하의 윤제균이라도 해도…’.
한국의 대표적 흥행 감독으로 꼽히는 윤 감독이 흥행의 무덤과도 같은 국내 창작 뮤지컬 영화에 도전했다는 점에서였다. “투자사 반응도 그랬어요. 논리적 설득은 안 되더라고요. 국내 뮤지컬 영화는 성공한 데이터가 전무하니까요. 정말 간곡하게 하고 싶다, 도와달라고 수없이 말할 수밖에 없었죠.” <아바타: 물의 길>(아바타)과 맞붙어 21일 개봉하는 영화 <영웅>의 윤제균 감독을 16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제균 감독은 제작자로 참여했던 영화 <댄싱퀸> 출연 배우 정성화의 초대로 뮤지컬 <영웅>을 보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2012년 일이다. 그 전까지 뮤지컬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고 한다. “뮤지컬 <영웅>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대결 구도로 갔더라면 큰 감명을 받지 않았을 거예요.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사형장으로 아들을 보내며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무너졌어요.” 윤 감독은 “<국제시장>이 아버지에 관한 영화였다면 <영웅>은 어머니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부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를 그린 뮤지컬 원작의 내용과 등장인물을 크게 바꾸지 않고 음악도 가져왔다. 그럼에도 뮤지컬 무대가 아닌 영화여야 하는 이유를 위해 추가한 대표적 장면이 1908년 벌어진 회령전투 신이다. “비주얼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내용적으로 공을 많이 들였어요. 안중근 의사가 왜 단지동맹을 하고 거사를 결심하게 됐는지 결정짓는 터닝포인트가 됐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안중근 의사를 이토를 저격한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지, 거사를 결심하게 된 구체적 계기나 안중근 의사의 직업이 무엇이었지 잘 모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용기 있는 의사 안중근이 아닌 갈등하고 두려움도 느끼는 인간 안중근을 좀 더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뮤지컬 <영웅>을 오래 이끌어온 정성화 배우가 극의 중심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면 영화에 캐스팅된 가상의 인물 설희 역의 김고은과 조마리아의 나문희 배우는 영화 <영웅>의 치트키 역할을 한다. 뮤지컬 경력이 없는 김고은 배우의 노래 실력은 캐스팅 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주변에 “연기도 되고 노래도 되는 배우를 수소문했는데 모두 한명으로 답했다”고 한다. 김고은 배우의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감독과 배우 모두 ”패닉이 왔다.” “북받치는 감정을 연기하면서 노래하는데 눈물 콧물이 쏟아지니까 노래가 제대로 안 나오는 거예요. 무조건 라이브로 가겠다고 선포한 상황이었는데 아찔했죠.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테이크를 가야 했는데 격정적이고 긴 노래를 세번 연이어 부르고 나면 목이 쉬어요. 김고은 배우가 목에서 피맛이 날 정도로 고생스럽게 완성했습니다.” 모든 삽입곡들은 사전 녹음과 현장 녹음, 후시 녹음을 했는데 매끈한 기교 대신 쇳소리가 나고 거칠어도 진심을 담은 현장 녹음을 70% 이상 골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나문희 배우가 연기한 조마리아는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의 감정을 최고로 고조시킨다. 감독도 관객도 나문희 배우가 아닌 인물을 떠올리기 힘든 캐스팅이다. “예전에 악극을 하셨다는 걸 알고는 있었어요. 하지만 수준 높은 노래 실력보다 상징성 때문에 대안을 떠올릴 수 없는 캐스팅이었죠. 연락을 드린 후 바로 답이 왔는데 언젠가 안중근이 영화화되면 조마리아를 연기하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뮤지컬의 영화화에는 무대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볼거리와 적역을 찾는 캐스팅 과제보다 더 높은 산이 있다. 이야기와 음악, 연기와 노래가 찰떡같이 붙기 어렵고, 일반적인 영화어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노래가 몰입을 되레 방해하기 십상이다. 윤제균 감독이 “사활을 걸었다”고 표현한 연출 포인트도 “송 모멘트”, 즉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정교하게 설계했던 게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의 연출이었어요. 예를 들어 설희가 이토와 대사를 하다가 눈물이 한방울 떨어지는 순간에 전주가 시작되고, 이토가 건배를 하면서 샴페인 잡는 순간 그의 곡이 시작되고, 다시 설희가 답가처럼 노래할 때 암전됐다가 핀라이트가 설희한테 꽂히는 순간 노래를 시작하는 등 모든 곡이 시작되는 순간에 연결 지점들을 만들면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데 역점을 뒀습니다.” 안중근에 대한 인물 묘사나 스토리 전개 등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나올 수 있지만 영화 <영웅>은 음악적인 측면에서 지금까지 나온 한국 뮤지컬 영화 중 가장 자연스럽게 관객을 이끌어가는 영화로 꼽힐 만하다.
천하의 쌍천만 감독도 “<국제시장>이후 8년 만의 연출작이니 많이 떨린다”고 했다. 게다가 코로나로 개봉이 미뤄지면서 ‘언제 개봉하냐’는 주변의 질문에 농담처럼 “<아바타>랑만 안붙으면 된다”고 했는데 딱 붙게 됐다. “사랑받고 싶죠. 당연히. <아바타>처럼 <영웅>도 극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청각의 즐거움이 있는 영화입니다. 가슴 뜨거운 영화이기도 하고요. 연말에 가족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영화가 됐으면 합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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