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은혜 갚고 교훈도 남긴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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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6일, 충남의 한 소방서 직원들은 오전부터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백구는 많은 이들의 박수 속에 소방청에서 제정한 '명예소방관 및 소방홍보대사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른 전국 1호 명예119구조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많은 어르신이 백구 못지않은 든든한 팔찌를 손목에 걸게 된다하니 백구가 갚은 것은 은혜요 남긴 것은 교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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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6일, 충남의 한 소방서 직원들은 오전부터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이는 의자를 나르고 다른 이는 방문을 예고한 손님들의 명단을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그사이 비장한 표정의 소방관 두 명은 팀을 이뤄 이날 행사의 주인공을 모시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어렵사리 모신 주인공을 지정석으로 모셨다. '백구'였다. 이날 백구는 많은 이들의 박수 속에 소방청에서 제정한 '명예소방관 및 소방홍보대사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른 전국 1호 명예119구조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보다 약 10일 앞선 2021년 8월 말, 자고 일어나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딸의 애타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과 소방은 물론 마을 주민들도 내 가족의 일처럼 만사를 제쳐두고 수색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달과 해가 한 번씩 뜨고 지고를 반복한 뒤 다시 해가 떴건만 어르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꼬박 40시간이 지났을 무렵 경찰의 열화상 탐지용 드론이 다시 날아올라 벼가 무성한 마을 논 어귀를 훑기 시작했다. 그때 사람치고는 작은 크기의 생체 신호가 포착됐다. 작은 개 한 마리가 내뿜는 체온이었다. 수색팀이 현장으로 달려가자 희고 작은 개 한 마리가 낯선 이들로부터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지친 목소리로 연신 짖어댔다. 치매를 앓는 90세 어르신이 물이 찬 논둑 근처에서 무려 4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실종되었다가 발견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었다.
3년 전, 주인 없이 떠돌이 신세였던 백구가 큰 개에 물렸을 때 도움을 주고 식구로 거두어 주었던 사람이 바로 실종되었던 어르신이었기에 백구가 은혜를 갚았음을 믿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국내 유수의 언론이 앞다퉈 취재했고 동물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특집 방송도 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미국 CNN에서는 백구를 '한국의 의견(義犬)'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마르고 작은 개 한 마리가 하기에는 너무도 큰일을 해낸 것이다.
우리 충남소방도 백구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다. 도내에 고령인구와 치매 환자가 늘어나니 이에 따른 실종 사고도 응당 늘었다고 생각만 했지, 이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깊게 반성했다. 그리고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댔다. 수년간 도내에서 있었던 치매 어르신 실종 사고 기록을 되짚어 나갔다. 집에서부터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이 되었는지, 얼마만큼의 수색 범위를 설정해야만 효과가 높았는지 등 여러 시각에서 사고를 분석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고 올해 초 바로 현장에 우리의 수색 방법을 적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올해 상반기 도내에서 발생한 치매 노인 실종 사고 48건에서 평균 수색 소요 시간이 6시간 50분으로 집계된 것이다. 최근 3년(2019~2021)간 도내에서 발생했던 사고에서 실종자 발견 평균 시간이 10시간 18분이 걸렸던 점을 감안한다면 무려 33%나 단축한 것이다. 1분 1초가 급한 실종자 수색에서 빠른 발견은 그만큼 생존 확률을 높였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애타는 가족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치매 어르신 실종만큼은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 나가려고 한다. 실종 경험이 있거나 실종 위험도가 높은 치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착용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호자에게 전송하는 기능이 있는 팔찌형 배회감지기 보급이 바로 그 첫걸음이다. 많은 어르신이 백구 못지않은 든든한 팔찌를 손목에 걸게 된다하니 백구가 갚은 것은 은혜요 남긴 것은 교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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