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동요 콘서트’ 조경옥 “슬프고 불안해 요즘 시국 같다고…”
김창남 교수 김민기 노래 창작 배경·의미 해설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18일 저녁 5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조경옥 콘서트: 김민기 동요상자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출신 조경옥은 차분하고 여린 음색으로 ‘백구’를 불렀다. 무대 위엔 백구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영상이 노래와 함께했다.
이날 콘서트는 경기문화재단의 ‘아침이슬 50돌 기념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김민기는 예술감독으로 직접 참여해 콘서트 전체 연출을 맡았다. 학전블루는 발 디딜 틈 없는 만석이었다. 강추위를 뚫고 이곳을 찾은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50~60대였다.
첫 노래를 ‘인형’으로 시작한 조경옥은 “지난 금요일 첫 공연을 본 분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요. 목소리가 슬프고 불안해서 요즘 시국과 맞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죠. 이게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라며 웃음 지었다.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스탠드 불빛이 보였다. 그 앞에서 노찾사 동기이자 남편인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가 조경옥이 부르는 노래의 창작 배경과 의미를 해설하며 관객이 콘서트에 몰입할 수 있게 힘을 보탰다.
조경옥이 ‘백구’를 부르기 전, 김 교수는 이 노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려견이 죽은 뒤 뒷동산에 묻어주기까지 이야기를 담은 노래입니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느끼는 상실을 그렸습니다. 이런 걸 통해 아이는 조금씩 성장해 가는 거죠. 7분이 넘는 곡이어서 방송에 거의 나온 적이 없는 노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기억하고 좋아하죠.”
김 교수가 말을 이었다. “쉽고 평범한 단어를 골라 가사를 쓰고, 가장 어울리는 멜로디를 붙였기 때문이죠. 작곡가 김민기의 가장 큰 장점이자 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노래는 ‘작은 연못’이었다. 김 교수는 “숲속 동화 같은 풍경을 담은 동요지만 자세히 보면 잔혹 동화가 숨어 있습니다. 전쟁, 환경파괴 같은 현실을 떠올리게 하죠”라고 설명했다.
조경옥이 ‘작은 연못’을 부르자 김창남 교수가 예고 없이 ‘훅’ 들어와 두 사람은 노래를 함께했다. 노래가 끝난 뒤 김 교수는 “사실은 민기 형이 저보고 ‘너 그 노래(‘작은 연못’) 부르지 마’라고 했어요. 하지만 제가 이 노래를 꼭 같이하고 싶었어요. 괜찮았죠?”라고 하자, 관객은 큰 박수로 답했다.
이날 콘서트에선 동요와 결이 다른 두 곡을 들을 수 있었다. 한 곡은 ‘공장의 불빛’이었다. 이 노래는 조경옥이 지난해 발매한 <김민기, 어린이를 담다> 앨범에 실린 노래였다. 김 교수는 “60~70년대는 물론이고 80년대에도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치고 생활 전선에 나가서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그런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라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친구>였다. 김창남 교수는 이렇게 해설했다. “작곡가(김민기)가 고등학생 때 지은 노래입니다. 보이스카우트 야영을 하러 갔다가 사고로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죠. 어이없는 사고로 학생이 죽었는데 어른들은 어떻게든지 축소하고 가리려고 급급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분노한 감정을 담아 만든 노래입니다.”
김 교수는 말을 이었다. “사실 최근에 우리도 그런 사고를 겪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구석에는 변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콘서트 중반엔 11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 2013년 <스페이스 공감>(교육방송)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받은 록밴드 로큰롤라디오가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다.
김창남 교수는 로큰롤라디오를 소개하며 ‘웃풋’(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 얘기를 했다. “로큰롤라디오는 결성된 지 10년쯤 된 나름 인디 바닥에서 인정받고 있는 중견 밴드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인디밴드로 산다는 게 쉽지 않죠. 더구나 지난 3년은 코로나 때문에 콘서트도 못 하고 페스티벌도 못 했어요. 그때는 내내 아르바이트만 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개점휴업하고 알바만 뛰었는데 오히려 소득 수준이 올라갔어요.”
김 교수가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로큰롤라디오에서 보컬과 리더를 맡은 김내현이 김 교수 아들이어서다. 김내현은 “이번에 작업하면서 혹시나 원작자(김민기)한테 누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굉장히 부담스러웠거든요. 많은 리메이크가 원작자에게 누를 끼치곤 하는데, 우리는 누를 좀 적게 끼치자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라고 했다. 로큰롤라디오는 김민기의 ‘강변에서 ‘차돌 이내몸’를 록 감성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로큰롤라디오가 마지막 노래 ‘새벽길’을 부르려고 할 때, 이번엔 조경옥이 ‘훅’ 들어왔다. “이 친구들(로큰롤라디오)이 자기네가 하겠다고 했지만, 저도 밴드에서 노래 한번 부르고 싶어서 같이 부르자고 했어요.” 조경옥은 한 마디 더했다. “관객 여러분에게 약간 섭섭한 게 있는데, 어제 공연 때는 이 친구들이 환호를 많이 받았어요. 오늘은 조금 약해요.” 아들을 향한 엄마의 마음을 알 듯 관객은 열렬한 환호로 호응했다.
공연 마지막 즈음에 조경옥은 “옛날부터 ‘넌 소처럼 먹으면서 소리는 풀 먹은 것처럼 내냐’며 핀잔을 준 분이 있어요. 하지만 늘 애정으로 저를 아껴주시는 분, 이 자리가 있게 해 주신 정말 고마운 김민기 선배를 소개합니다”라고 말하자, 김민기는 잠깐 무대에 나와 인사만 한 뒤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런 김민기를 보며 조경옥은 “한 말씀 하시라고 했는데 ‘내가 (무대에서 말하면) 성을 간다’며 안 하시겠다고 하셨어요”라며 웃음 지었다.
마지막 노래는 ‘바다’였다. 조경옥은 “‘바다’는 여러분이 많이 아시죠. 아, 저도 폴 매카트니 기분을 맛 좀 보게 해주세요. 떼창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조경옥은 앙코르로 ‘아름다운 사람’을 불렀다. “이 노래 가사가 오늘 들려드린 노래들의 요약판 같아요.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며 삶에 대한 통찰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은 노래여서 선택했습니다.”
이날 공연을 본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동요가 사라진 시대에 조경옥의 감성으로 부른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니, 어느틈엔가 잃어버린 노래의 중요한 가치를 새롭게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조경옥 콘서트는 21일 고양시 문예회관에서 마지막으로 열린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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