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윤제균 감독의 감성으로 재해석된 뮤지컬 영화 '영웅'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2. 12.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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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웅'(감독 윤제균)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 스포일러 주의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유 독립이 가진 의미를 깊이 새겨준 안중근 의사 마지막 1년, 그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무대에 올린 뮤지컬 '영웅'이 스크린으로 재해석됐다. '대한민국 최초 쌍천만 감독'의 수식어를 단 윤제균 감독은 뮤지컬 영화 '영웅'을 통해 무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안중근 의사의 1년을 그려냈다.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진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전쟁 포로가 아닌 살인의 죄목으로, 조선이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된다. 영화 '영웅'은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다.

영화 '영웅'은 지난 2009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긴 첫 번째 작업이자 '해운대' '국제시장' 등을 연출하고 '공조' 시리즈 등을 제작한 윤제균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또한 윤 감독의 첫 번째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은 무대 위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오면서 서사나 표현 방식, 기술적인 면 등에서 영화적인 구성 방식을 고민했고, 캐릭터 역시 영화에 맞게 보다 중심으로 이동시키거나 이야기를 보강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윤제균 감독만이 가진 색이 '영웅'에 덧입혀졌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우선 '영웅'은 뮤지컬이 가진 무게감은 내려놓으며 가벼워진 대신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관객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왔다. 오롯이 노래로 진행되거나 영화의 일반적인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뮤지컬 구성으로 옮겨가는 과정 사이를 다양한 편집 방식을 이용해 장르와 장르, 장면과 장면 전환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영화가 '뮤지컬'이란 장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선언하고 넘어가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스크린으로 이끈다. 대체로 영화가 나아갈 분위기를 예고하는 동시에 단숨에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몰입시켜야 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은 중요하다.

오프닝 타이틀을 어떻게 선보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기대도 달라진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명의 동지들이 생사를 무릅쓰고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결의를 담은 '단지동맹' 넘버(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를 통해 뮤지컬 영화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영화가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며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앞서 말했듯이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의 영향을 받는 뮤지컬과 달리 공간 구성이나 이동, 시각효과 사용 등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기법의 장면 전환을 보여준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무대에서 흔히 장면 전환에 사용되는 암전을 비롯해 영화라서 가능한 편집 방식을 통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장소나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며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에서는 명확하게 장면과 장면 사이를 나누며 마치 뮤지컬 무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에 1900년대를 디테일하게 재현한 세트라는 영화적 공간과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조명, CG를 사용해 뮤지컬 무대보다 공간과 시각을 확장해 나간다.

또 하나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더해진 장점은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들의 내면과 그들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뮤지컬은 무대 위 배우들의 호흡과 그 순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상황과 감정에 맞는 배우들의 표정을 가깝게 볼 수는 없다. 영화는 넘버와 공기로 상상했던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관객들에게 조금 더 인물의 내면에 접근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전문 뮤지컬 배우들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배우들이 보다 가사(대사)의 전달과 얼굴과 몸짓에 드러나는 감정을 멜로디에 실으며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뮤지컬 영화와 달리 '영웅'은 현장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을 채택하면서 현장성과 감정 전달력을 높였다.

뮤지컬 초연 때부터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온 정성화 역시 영화에서는 무대 위에서보다 발성의 무게는 조금 내려두고 표정 연기와 몸짓 등에 집중한다. 반면 설희 역의 김고은은 특히 영화 오리지널 솔로 넘버인 '그대 향한 나의 꿈'을 부를 때 마치 디즈니 라이브 액션을 떠올리게 한다. 뮤지컬과는 또 다른 느낌의 솔로 넘버를 볼 수 있는 건 '영웅'만의 장점이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캐릭터와 서사적인 면에 있어서는 뮤지컬에서는 생략되거나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독립군 정보원 설희(김고은)의 이야기를 보충하고, 그의 신념 내지 목적과 행동 계기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렇게 설희는 뮤지컬에서보다 타당성을 가진 인물로 재탄생됐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서사 대신 안중근 의사의 명분에 무게중심을 뒀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군들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독립운동의 의지와 명분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그들의 희로애락을 좀 더 진하게 드러내며 비장함과 숙명의 무게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독립군은 물론 안중근 의사에게도 유머를 넣음으로써 그들 역시 우리와는 동떨어진 삶이 아닌 일상을 살아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친근함 속에 나온 하얼빈과 그 이후의 행보는 안중근 의사라는 인물을 더욱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다만 여러 편집 기술을 활용한 장면 전환 등 기술적인 부분의 다양성이나 웃음 코드는 양날의 검과 같다. 이러한 요소들이 과도함이나 이질적으로 다가올 때는 장점이자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뮤지컬과 다른 영화만의 차별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시도들이 어떤 관객들에게는 피로감으로 다가갈 여지도 있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분명한 건 호불호를 떠나 고민과 노력, 새로운 시도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겨오기 위해 창작자는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등을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색과 창의성이 들어가게 된다. 윤제균 감독은 특유의 감성적인 연출과 그만의 미장센을 담아 '영웅'을 재창작했고, 지금까지와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재창작 과정을 하나씩 뜯어보는 것 역시 영화를 보는 재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웅'을 완성하는 건 넘버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가 걸어온 길을 녹여낸 '영웅'의 원작 넘버가 갖는 상징성과 감동은 스크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한 나문희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의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이전까지는 눈물을 참아왔던 관객도 이때만큼은 터트릴 수밖에 없다.

안중근 의사가 지닌 비장함과 여기서부터 기인하는 울컥함과 달리 조마리아 여사의 것은 보다 보편적이고 가까운 감정이기에 더욱더 깊숙하게 스미며 다가온다. 그리고 짧은 등장이지만 배우가 가진 힘은 넘버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었고, 나문희는 떨림조차 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20분 상영, 12월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영웅' 포스터.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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