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오리지널 피노키오의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은 뭘까

2022. 12. 20.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0) 디즈니 버전과의 차이점
이탈리아 북부지역 산 밑 마을 배경
시대 배경은 2차세계대전으로 설정
내용과 플롯은 비슷하면서도 달라
거친 주인공의 행동·폭력적 정서 담아
19세기 후반 伊서민 고통 사실적 묘사
진보적인 동화 작가의 현실 인식 반영
올해는 피노키오의 풍년이다. 톰 행크스 주연의 실사판 피노키오가 지난 9월에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개봉되었고, 지난달에는 멕시코의 스타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가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가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되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실사판 피노키오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1940년에 제작된 디즈니 만화에 충실했기 때문에 낯이 익다. 디즈니는 근래 들어 과거에 만화로 제작된 작품을 실사판으로 다시 만들어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피노키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재탄생한 작품들은 스토리와 노래 따위를 거의 바꾸지 않고 다시 사용하고 있어서 새로운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원작에서 피노키오는 이미 나뭇조각이던 상태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델토로 감독의 피노키오는 디즈니 버전과 전반적인 내용과 플롯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구석이 많다.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있지만 피노키오 내용을 이미 아는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건 아주 사실적인 분위기다. 디즈니의 1940년 만화를, 그것도 대개는 어린 시절에 봤던 사람들은 그 배경이 유럽 어느 나라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정확히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배경이 이탈리아라는 사실이 디즈니 만화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델토로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시작부터 “여기는 이탈리아”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 어느 산 밑 마을이 배경이다. 지역적 배경뿐 아니라 시대적 배경도 2차 세계 대전 때로 아주 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군이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등장하고, 당시 히틀러와 손잡았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델토로 감독의 피노키오는 원작에 충실한 작품일까?

그렇지는 않다. 피노키오의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Le avventure di Pinocchio)’은 1883년에 나왔기 때문에 무솔리니와는 동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구현하려 노력한 델토로 감독과 미술팀의 노력으로 디즈니 버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이탈리아적인 작품이 되었다. 물론 전반적인 스토리의 전개는 디즈니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는 두 작품 모두 대체로 원작의 기본적인 플롯과 설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내용이라고 해도 19세기의 정서와 21세기의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디즈니 버전에 등장해서 피노키오를 속이는 역할을 하는 여우와 고양이는 원작에도 등장하는데 (델토로의 버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이들이 피노키오를 붙잡아 나무에 목매달아 죽여버린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19세기 후반만 해도 가능했던 듯하다.

물론 원작도 피노키오가 그렇게 죽으면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좀 우스운 사정이 있다. 애초에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나온 게 아니라 지역 어린이 신문에 연재되던 동화였다. 피렌체 출신의 작가 카를로 콜로디는 원래 저널리스트로, 정치 칼럼과 풍자적인 글을 쓰기는 했어도 동화 작가는 아니었다. 그런 콜로디는 50대가 되어서 비로소 아이들이 읽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881년에 연재를 시작한 것이 ‘꼭두각시(나무인형) 이야기’, 즉 피노키오였다.
피노키오의 원작엔 지금은 동화 속에 넣기 힘든 장면들이 등장한다.
피노키오 이야기를 2년 동안 연재하던 그는 신문사가 원고료를 제때 주지 않고 자꾸 미루자 두 강도(여우와 고양이)에 의해 목매달려 죽는 것으로 끝을 내버린 것. 하지만 이 이야기를 열심히 읽던 독자들의 항의가 쏟아졌고 이에 신문사에서 밀린 원고료를 지급하겠다며 설득해서 “죽은 줄 알았던” 피노키오는 실신했던 것으로 이야기를 바꿔 다시 살려낸 것이다.

주인공의 행동도 원작에서는 좀 더 거칠다. 원래 피노키오라는 이야기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리고 거짓말을 하다가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교훈적인 내용이고 따라서 주인공은 일종의 문제아이지만, 원작에서는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는 귀뚜라미를 망치로 죽여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귀뚜라미는 영혼으로 다시 등장하는데 이 역시 지금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게 사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과 파시즘의 무서움을 보여주려 한 델토로의 피노키오처럼 콜로디의 원작도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서민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원작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배고파하며 먹을 걸 찾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가난한 목수인 제페토는 “허기가 너무 생생해서 칼로 자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피노키오는 그런 제페토가 먹을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뿐 아니라 피노키오를 잡은 악당들은 그를 식사를 만들기 위한 땔감으로 사용하거나 튀김옷을 입혀서 먹으려 한다. 가난한 이탈리아 농촌 사람들의 생활이 반영된 장면들이다.

이런 사실적인 묘사는 작가 콜로디가 젊은 시절 정치 칼럼과 사회 풍자 글을 썼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1826년에 태어난 그의 본명은 카를로 로렌지니(콜로디는 필명이다)로, 노동자 계급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지역 귀족 가문의 영지를 돌보던 사람인데 그 가문의 딸이 피렌체의 유명 집안으로 시집갈 때 자신의 딸(카를로의 어머니)을 주인집 딸의 재봉사이자 말동무로 함께 보냈다. 어머니는 그렇게 피렌체로 와서 요리사와 결혼해 카를로를 낳은 것이다. 자녀를 열 명이나 낳았지만 성인이 되도록 살아남은 아이는 네 명 뿐이었을 만큼 삶이 힘들고 고단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자란 탓인지 진보적이었던 콜로디의 성향은 피노키오 연재 첫 회, 첫 문장에도 잘 드러난다. “‘옛날 옛적에…’라고 말하면 어린이 여러분들은 ‘왕이 살았어요!’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틀렸습니다. 옛날 옛적에… 나뭇조각 하나가 있었어요.”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나뭇조각은 피노키오가 되는 특별한 존재이지만, 어린이들이 듣고 읽는 동화들이 하나같이 왕과 왕비, 왕자, 공주로 가득하던 시절에 이런 틀을 전복하는 이야기를 쓴 것이다.

델토로 감독의 작품에서는 생략했지만 원작과 디즈니 버전에는 피노키오가 당나귀로 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는 당나귀가 두 가지 비유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아무런 기술도 없어서 죽도록 막노동만 해야 하는 가난한 계층의 노동자를 가리켜 당나귀라고 불렀고,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를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아이들도 흔히 당나귀로 불렸다고 한다. 콜로디는 피노키오가 당나귀로 변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움에 집중하지 않고 ‘당나귀’처럼 행동하면 나중에 자라서 힘든 노동을 하는 ‘당나귀’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것.

그뿐 아니라 피노키오가 제페토의 말을 어기고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하고 위험에 빠지는 플롯은 점점 공업화와 도시화의 길을 가던 19세기 이탈리아 사회에서 순진한 농부들이 일을 찾아 도시로 가서 사기를 당하고 이용만 당하는 일이 흔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동화이지만 진보적인 작가가 보는 이탈리아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일상 속 미술사’에 이어 그동안 이 연재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호기심을 갖고 일상에 숨어 있는 생각거리들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