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고용 한파 온다"…채용 줄이고 희망퇴직 받는 기업들
마케팅·판촉비 등 비용절감 움직임…"허리띠 졸라매야"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업황이 부진한 국내 기업들이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으로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나섰다.
곳곳에서 심상찮은 감원 소식이 들려오고 신규 채용은 속도를 조절하려는 분위기가 다분하다. 내년 투자 계획도 최대한 보수적 관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모습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 바람은 국내 유통가와 금융권 등에도 이미 불어닥쳤다. 업계에서는 내년에 역대급 고용 한파가 몰려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있는 직원도 줄여야 할 판"…유통·금융·IT '찬바람'
2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코로나로 인한 사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창사 이후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2020년에도 한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롯데하이마트는 가전 시장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또 희망퇴직 대상자를 모집했다. 매장 수를 줄이는 효율화 작업에 따라 향후 추가적인 감원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LG전자 베스트샵을 운영하는 하이프라자도 희망자를 대상으로 근속 연차에 따라 기본급 4∼35개월치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올해 경기가 너무 안 좋았다 보니 기업의 생존이 화두가 됐다"며 "채용이 문제가 아니라 있는 직원도 줄여야 할 판국"이라고 말했다.
올해 실적 부진을 경험한 LG디스플레이는 사업구조 재편에 따른 인력 효율화 방침에 따라 일부 인원을 계열사에 전환 배치하기로 한 데 이어 생산직 직원 대상으로 3∼7개월씩 한시적으로 자율 휴직을 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은행과 증권가에는 이미 희망퇴직 삭풍이 불고 있다.
하이투자증권과 다올투자증권이 최근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우리은행, NH농협은행, 수협은행 등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만 40세(1982년생) 직원마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됐다.
올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만 거의 2천400명이 희망퇴직 방식으로 직장을 떠나게 될 전망이다.
HMM은 근속 10년 이상 육상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시 최대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위로금과 자녀 학자금 등을 지원하는 '리스타트 지원 프로그램' 신청을 받았다. 내년 해운업계 침체 전망에 따른 선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크루트가 지난달 직장인 1천2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2.2%는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 감원 목적의 구조조정이 현재 진행 중이라고 답했고, 조만간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도 32.7%나 됐다. '일부 부문 또는 팀을 통합하거나 인력 재배치 진행(예정)'이라는 응답도 23.3%였다.
'줄폐업→고용시장 악화' 악순환 가능성도
고용이 대표적인 경기 후행 지표인 만큼 올해 경기 불황은 내년 고용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용춘 팀장은 "내년에 역대급 고용 한파가 올 가능성이 있다"며 "일부 업종은 줄폐업할 수도 있는 분위기여서 고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인력이 대규모로 쏟아지면서 고용 시장이 악화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고 진단했다.
사람인 HR연구소가 최근 기업 39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6.7%가 채용 규모를 올해보다 축소하거나 중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채용을 중단 또는 축소한다는 응답은 대기업(47.8%)이 중견기업(40.6%)이나 중소기업(32.8%)보다 더 높아 대기업 중심의 신규 채용 축소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인크루트 조사에서도 올해보다 채용을 늘릴 것이라는 답변은 10.3%에 그쳤고, 채용 계획보다 적게 뽑거나(31.1%) 채용 계획이 없을 것(18.4%)으로 예상하는 답변이 절반에 달했다.
실제로 통신사와 플랫폼 기업들은 내년 경기 부진을 우려하며 채용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일단 올해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내년 경제 여건이나 사업 성장세 등에 따라 고용 수준이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필요 인력을 수시 채용해온 온라인 플랫폼 업체 역시 대내외 상황을 주시하며 고용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내년 채용 규모나 시기가 확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채용 속도를 조절하고 있고, 채용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건설업계도 채용 확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100명 정도의 신입사원을 채용할 것"이라며 "다만 경력직과 수시채용은 시장 상황에 따라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건설사를 포함해 최근 일부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형 건설사 중에서는 신규 사업 축소와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그룹 차원의 신입 정기채용을 없애고 상시 채용 체제로 전환한 만큼, 경영 환경과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채용 규모를 조절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더 어렵다"…긴축 또 긴축 외치는 기업들
삼성전자는 15∼16일 디바이스경험(DX) 부문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 데 이어 오는 22일에는 반도체 등 부품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위기 대응책을 논의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전사적으로 불필요한 경비 절감을 지시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10조원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투자액 대비 내년 투자 규모를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연초 계획대비 1조원 이상의 시설투자비를 줄인 데 이어 재무건전성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필수 경상 투자 외에 투자·운영 비용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현금흐름 기준 내년 시설투자비는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이내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SK머티리얼즈는 내년 초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면서 긴축경영에 나설 예정이다.
유통업계도 내수 소비 침체 분위기에 허리띠를 졸라맬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고용 규모나 사업 계획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내년은 올해보다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고 당장 줄일 수 있는 마케팅 비용과 판촉비 등부터 긴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의 경우 다른 업종보다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인 만큼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투자도 보수적으로 접근해 칼바람에 대비하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국의 30인 이상 기업 24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내년 경영 계획을 수립했거나 초안을 짠 기업 중 90.8%가 현상 유지(68.5%) 또는 긴축 경영(22.3%)을 하겠다고 답했다.
긴축 경영을 택한 기업 중 72.4%는 구체적인 시행계획으로 전사적 원가 절감을 택했다. 인력 운용 합리화(31.0%)와 유동성 확보(31.0%)도 뒤를 이었다.
신성장 동력 확보엔 그래도 총력…"계획된 투자 차질 없이"
다만 주요 대기업은 전사적인 비용 절감 기조 속에서도 장기적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미 계획한 투자에 한해서는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지난 5월 발표대로 향후 5년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IT(정보통신)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고,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5년간 8만명을 신규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LG그룹도 배터리(소재 포함), 바이오, 인공지능, 차세대 디스플레이, 전장 등 미래 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2026년까지 국내에 106조원을 투자하고 5만명을 직접 채용하기로 한 만큼 미래 준비 차원에서 전체 투자 규모와 채용 계획은 기존 계획대로 집행할 예정이다.
롯데그룹도 미래 성장에 꼭 필요한 투자는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롯데는 지난 5월 향후 5년간 37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내년도 경영환경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신규 투자의 경우 세밀한 점검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업종에 따라 채용 규모를 늘리는 곳도 있다.
조선과 항공업계는 코로나 사태 이후 수요 회복에 맞춰 인력을 충원한다.
올해 800여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선발한 현대중공업그룹은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규모로 채용 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일반직 사원 공개 채용을 3년만에 재개했다. 여객, 여객PRM, 화물, 항공기술, 항공우주 부문 등에서 100여명을 채용한다. 코로나 사태로 휴직했던 직원들도 순차적으로 복직 중이다.
현대차는 내년 자율주행, 수소에너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 강화를 위한 전문인력을 채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청년희망 온(ON) 프로젝트' 간담회에서 향후 3년간 3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방산과 친환경에너지를 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 중인 한화그룹도 올해 UAM 개발 인력 등을 포함해 통상 채용 인원보다 20% 이상 더 뽑은 데 이어 내년에도 신사업 관련 채용 규모를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LIG넥스원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천궁-II 수출을 진행하면서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을 이끌어갈 핵심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올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650여명을 신규 채용한 데 이어 내년 경제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채용 규모를 검토 중이다.
(서미숙 장하나 김기훈 이신영 홍국기 최평천 임성호 오규진 기자)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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