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2023년, 수소·로봇·신소재·ESG에 주목하라"
2022년 세계 경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대응한 주요국 긴축 통화정책과 그로 인한 성장세 둔화 등을 겪었다.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을 이겨내고 일시 반등했던 경기는 다시 각종 불확실성과 고금리에 짓눌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내년 전망과 주요 산업별 대응 전략을 담은 '주력산업 혁신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KIAT는 분야별 위원회 구성·운영을 통해 산업별 환경을 조사·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산업 맞춤형 활력 제고·위기 극복 전략을 도출했다.
올해 분석에는 총 8개 협회와 단체, 21개 기업, 14개 대학, 7개 기관의 전문가 61명이 참여해 △미래형 자동차 △지능형 로봇 △첨단화학소재 △바이오·헬스 산업의 전략을 발표했다. 보고서는 세부 내용과 함께 내년 1월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KIAT는 현재 산업계 트렌드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민감도 상승 △산업융복합 가속화 △경기침체 우려 증폭 등 3가지 주제를 뽑았다. 기업경영에 있어 이윤추구보다는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이 중요해지는 시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투자 결정 지표로 ESG, 특히 환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또 산업환경은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바뀌고 제조업과 IT(정보기술)·엔터테인먼트 등 이종 산업 간 융복합이 가속화된다는 진단이다. 올해부터 이어진 물가 폭등(인플레이션)과 그에 대응한 통화정책(금리인상), 국제정세 변동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와 공급망 재편 등 변수도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KIAT의 전망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0년 이후 단계적으로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 판매 의무를 법제화하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에 대해서도 연비와 이산화탄소배출 기준을 강화하는 등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또 완성차 시장의 무게 중심이 에너지와 통신, AI(인공지능), 엔터테인먼트 등이 모두 융합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자동차 부품 산업 내 전장(전자장비) 부품 비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2030년 기준 내연기관 엔진 부품기업은 2019년 1669개에 비해 30% 감소한 1168개로 줄어들고, 같은 기간 친환경차와 전장 부품 기업은 250개에서 600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완성차업체가 아닌 대형 이종산업체의 참여로 공급망 전반이 변화하면서 산업 지배권을 둘러싼 경쟁도 예상된다고 한다.
반면 소비시장 전망은 썩 밝지 않다. 고금리와 고물가, 고환율에 따라 내수 경기 둔화가 예상되고 세계 경기 마저 침체 우려가 나오면서 내수·수출 타격 가능성이 커졌다. 경기침체에 따른 한계기업 퇴출로 인한 공급망 추가 악화 문제도 나오고 있다.
KIAT는 이같은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과제로 수소모빌리티 및 수소엔진 부품산업 지원과 차종별 전과정평가(LCA) 시스템 도입, 미래 모빌리티 핵심부품 공용 플랫폼 개발 등을 조언했다. 수소차 핵심부품 전문기업 전환을 돕고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해 친환경차 장려 정책의 기반이 될 평가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또 차량 연비·전비 효율 극대화를 위해 경량화 부품과 미래차의 한 축인 자율주행을 위한 센서 등을 전략 품목으로 키워야 한다고 귀띔했다.
로봇 기술와 탄소배출 절감, 에너지 효율화 등 산업계가 굵직한 숙제를 맞닥뜨리면서 지능형 로봇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로봇 기술을 활용해 빠르고 정확한 업무를 수행하고, 그를 통해 생산 및 효율성 강화, 탄소배출 절감, 에너지 효율 극대화 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직접 작업을 수행하기 위험한 환경에서도 로봇 기술 적용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점을 고려하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로봇의 역할은 날로 커지고 있다.
지능형 로봇 산업은 융복합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인 만큼 제조업뿐만 아니라 가사·복지·의료·국방·경비 등의 분야로 확대가 가능하다. IT와 가전·교육·오락 등 생활 밀착 분야와 의료복지·경비·안내 등 안전 분야와의 융복합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저임금 구조에 익숙했던 주요국 기업들이 고임금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 의존도를 낮추는, 즉 로봇을 활용한 사업전략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지능형 로봇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관련 부품과 제품·시스템·서비스의 표준 규정을 위한 인증체계, 표준화 기술 및 평가인증 기술 개발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데이터 기반 임베디드(내장) 모듈 개발을 위한 단계별 지원과 SW 개발 컨설팅, 산학연 협업과 공동연구 지원 등 정책도 뒤따라야 하고 자율주행 로봇용 라이다, 일체형 액추에이터 모듈 등 전략 품목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KIAT는 조언했다.
석유화학은 철강에 이어 두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2050년 탄소중립 이행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친환경 생태계 전환이라는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KIAT의 분석이다. 제도 측면에서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확물질관리법'등 소비자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에 대한 관리 책임이 커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신소재에 대한 원천기술은 파급력이 큼에도 기술 선진국에 의한 독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 수요산업인 IT와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등과의 융복합 등으로 첨단화학소재 요구가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화학산업이 전통적인 경기민감산업인 만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전방 수요 악영향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계속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으로 해외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KIAT는 친환경·인체무해성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R&D(연구개발), 물질등록 허가지원, 생분해 플라스틱 평가·인증 처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소재 분석·평가와 시험·인증, R&D 규제대응 컨설팅을 비롯한 기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픈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자율주행차와 전기자동차, UAM(도심항공교통) 로봇 등 전방산업과 연결된 R&BD(사업화 연계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KIAT는 바이오·헬스 분야와 관련, ESG 보고의무 중요성에 비해 많은 기업이 실질적 조치나 보고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10년 이내 탄소중립 및 폐수·폐기물 저감계획 등을 수립하는 등 ESG 의무를 강화하는 것과 달리 우리 바이오·헬스 산업은 전반적으로 ESG에 대한 평가점수가 낮다는 얘기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또 AI, IoT(사물인터넷) 등 정보기술과 융합이 가능해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가 가능하다. △약물전달 나노로봇 △혁신적인 엔지니어링 솔루션을 통한 신약개발비용 합리화 △바이오전자 △가공된 생체 재료 등 다양한 영역 활성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헬스케어 부문 실적과 전망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이지만 경기 침체 우려에서는 바이오·헬스 산업도 자유롭지 못하다.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대형 바이오기업을 중심으로 현금 부족 등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KIAT는 화이트(식물재료를 원료로 한 바이오산업)와 그린(농업과 관련한 바이오) 등 분야별 바이오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주기 기술개발과 실증지원 제조혁신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설비투자와 인증체계 도입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바이오 의약 공급망 자립과 시장지원을 위해선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설비투자·제도개선 등을 통한 안정적 공급망 구축 지원 필요성, 신약 개발을 위한 정책 펀드를 말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싹틔우기 위한 제도 개선과 SW 개발도 정책과제 제안에 포함됐다. 바이오·헬스 분야 전략 품목으로는 바이오플라스틱 및 첨가제, 동물세포배양용 배지 및 첨가물 등이 꼽혔다.
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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