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이상한 나라의 노동자/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직장에 매이지 않은 프리랜서 노동자지만 아파서 쓰러지지 않는 한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강의 하고, 논문이나 원고를 쓰고, 번역을 하느라 하루 여덟 시간, 때로는 13시간을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수입은 중소기업 대졸 신입사원 초봉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사, 작가, 번역자 중에서 그래도 한시적이지만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데가 강사라서 직업을 시간 강사로 쓸 때가 많다. 그런데 특강을 가거나 원고를 보냈을 때 내 직업은 수시로 교수로 바뀌어 있다. 게다가 많은 경우 대학에서는 시간 강사를 겸임 교수, 초빙 교수라는 말로 바꿔 부른다. 임금도, 처우도 시간 강사와 똑같은데 앞에 ‘교수’자를 붙여 계약한다. 하지만 강사료를 지불할 때,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교수와 시간 강사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나는 그들 마음대로 교수가 됐다가 강사가 됐다가 한다. 그런 일은 다른 노동자에게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도, 파업도 불가능한 개인 사업자라고 했다가 정부가 강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때는 노동자라고 한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이지만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빨갱이로 여기던 시절을 지나왔고, 지금도 노동자보다는 근로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유럽에서는 어려서부터 배우는 노동권을 성인이 돼서도 배운 적 없고, 노동자들의 파업에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며, 자식이 노동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노사 분쟁이 생기면 자본가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툭하면 귀족노조를 들먹이지만 우리나라가 노동 인권에 있어서 국제적으로도 최하등급에 속한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1960년대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당시에는 하루 14시간씩 주 80시간 넘게 일했다. 주 5일 근무에 68시간 노동이 가능해진 건 2000년 김대중 정부 들어서다. 2018년이 돼서야 주 52시간이 됐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놀라운 건 그렇게 힘겹게 얻어낸 성과도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더라는 것이다. 주변의 노동자 중에서 주 52시간만 노동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수시로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장을 간다. 이번에 총파업을 한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씩 일했다. 그들은 법은 법이고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 52시간 법정 노동시간이 시행된 지 겨우 4년 만에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유연화’라는 말로 다시금 노동시간을 늘리려 한다. 외려 개정되기 전보다 한 시간이 늘어 ‘주 최대 69시간 제도개혁안’을 발표했다. 우리의 노동 인권 시계는 거꾸로 간다.
살기 좋아졌다고들 한다. 이제는 누구도 굶어 죽지 않는다고도 한다.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세계 10대 부국에 들어간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여전히 노동자는 안전 규칙과 상관없이 혼자 일하다가 떨어져 죽고,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죽고, 장시간 운전하다 죽고, 감정 노동에 시달리다 자살하고,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고, 공사 현장에서 불타 죽고, 깔려 죽고, 손가락이 잘리고, 암이나 희귀병에 걸리고, 하루아침에 해고돼 길거리에 나앉는다. 그런 현실을 알리기 위해 허구한 날 75m 공중에 매달리고, 굶고, 삼보일배를 한다. 법적으로 권리가 보장된 노동자들의 저항 방법인 ‘파업’이라는 수단을 써도 검찰이 업무방해죄로 노조 간부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이들은 정말로 노동할 곳이 없어 노동자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가 없어져야 나라가 산다는 사람이 대통령 자문 역할을 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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