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후주택 안전관리 낙제점... 75%는 눈으로 보는 점검조차 없었다

윤현종 2022. 12. 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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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좁은 골목, 낮은 담, 녹슨 철대문. 금 간 벽체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독주택. ‘응답하라 1988’에서나 봤던 그 낡은 집들은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의 작업을 통해 1970년 전에 지어진 노후 단독주택의 구체적 규모와 세부 입지를 통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늙은 집들은 좁은 길과 가파른 언덕에 포위되어 도시 곳곳에 섬처럼 존재하고, 그 안에선 늙은 집을 탈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서울 노후주택 2만3,000채와 거주자 5만 명(추정)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기획취재는 저희가 정성 들여 제작한 인터랙티브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소재 건축 52년 이상 된 노후 단독주택의 모습. 각각의 사진은 모두 다른 주택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이 집들은 모두 구청의 안전점검을 단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다. 이한호 기자

※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수리도, 재개발도, 이사도 안돼요... 늙은 집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지난달 29일 찾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단독주택 밀집 지역. 폭 2m도 안 되는 골목길로 들어가니 낡은 집 한 채가 있었다. 페인트 칠도 없이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된 외벽에는 수도 없이 금이 가 있다. 전깃줄 여러 가닥이 어지럽게 집 안팎을 넘나들고 있었는데, 피복이 다 삭아 조금이라도 더 벗겨지면 누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담장 위에 박힌 뾰족한 방범용 금속 창살은 모두 녹슬어 있다. 1969년 건축된, 올해로 쉰세 살 먹은 집이다.

"뭐? 안전점검? 50년 넘게 여기 사는 동안 구청에서 그거 한다고 온 적은 없었어."

이 집 주인 최삼영(86·가명)씨가 말했다. 겉으로 봐도 위험해 보이는 이 집은 구청 안전점검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곳 강북구 미아동의 준공 52년 이상 노후주택 1,483채 중, 안전점검을 한 번이라도 받은 집은 338채(22.7%)에 불과하다.

[박제된 나의 집 ②: 오래된 집에 갇힌 사람들]

1970년 이전 준공된 서울의 노후 단독주택(다가구 주택 포함) 총 2만2,980채 가운데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안전점검을 한 번이라도 받은 집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4분의 3에서는 지자체의 육안 점검조차 없었거나, 안전점검 이력에 관한 자료 자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자치구들은 노후주택들을 안전점검 대상에 올려놓고도 실제 점검을 하지 않았다.

통상 주택 내구연한을 50년으로 본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전 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은 노후주택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①한국일보가 서울 각 자치구에 노후주택 안전점검 수검 여부 등을 정보공개 청구해 받은 자료, ②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에 요구해 받은 동일한 자료를 종합한 결과, 노후 단독주택의 안전점검 수검률은 25.4%에 머물렀다.

"자료가 없는 주택들은 안전점검을 안 받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A구청 관계자의 답변)

강동·동작·성동·종로 안전점검 '제로'

각 구청 얘기를 종합하면, 자치구들은 ‘직권점검’이란 이름으로 노후주택 점검을 자체적으로 해 왔다. 또 일부 구청은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30년 이상 주택을 대상으로 계획을 세워 안전점검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안전점검은 먼저 육안으로 주택을 점검(1차)한 후 결과를 △우수 △양호 △보통 △미흡 △불량 5단계로 나누고, 미흡과 불량 등급에 한해 정밀진단(2차 점검)을 하는 식이다.

그러나 준공 52년 이상 노후주택 총 3,515채를 보유한 강동·동작·성동·종로구 등 4개 자치구는 안전점검 결과가 전무했다. 1차 육안 점검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노후 단독주택 1,656채가 소재한 종로구청 관계자는 “소규모 노후 건축물의 경우 지난해부터 안전점검 계획을 세워 1년에 300채씩, 올해까지 총 600채가량의 안전점검을 했다”면서도 “점검했다면 자료가 있겠으나 사용승인 연도 1970년 이전 노후주택의 안전점검 자료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성동구 관계자도 “해당 건축물들이 점검 대상으로 잡혀 있긴 하지만 점검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구청 실무자가 안전점검 여부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노후 단독주택 150채가 있는 한 자치구 관계자는 “노후주택 안전점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은데 2018년보존기간 만료로 폐기돼 자료가 없다”면서 “자료 폐기 후 해당 주택 안전점검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건축 50년이 된 서울 성북구 장위동 오수현씨(가명) 집의 내부. 천장을 나무판자로 덧댔다. 붕괴 위험 때문이다. 윤현종 기자

”법적 의무 아니라서" "홍보가 덜 돼서”

중·서대문·영등포·마포·동대문구 등 5개 자치구에서도 노후 단독주택 총 6,614채 가운데 안전점검을 받은 적 있는 주택은 377채(5.7%)에 불과했다. 이들 지역 노후주택 중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비율은 △중구 99.3% △서대문구 97.2% △영등포구 96.1% △마포구 93.7% △동대문구 90.0%로 확인됐다.

중구에서는 관내 노후주택 1,088채 중 단 8채에 대해서만 육안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한 것이 전부다. 구청 관계자는 “건축물관리법상 노후주택의 안전점검은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로 규정돼 있다”며 해당 사무가 자치구의 법적 의무는 아니라고 말했다.

영등포구에도 1970년 이전 준공 노후주택 891채가 있으나 안전점검을 받은 것은 35채뿐이었다. 구청 관계자는 “매년 20~40채씩 진행하는 직권점검 대상이지만 아직 점검하지 못했다”면서도 “해당 주택 소유·거주자들은 언제든지 지자체에 안전점검을 요청할 수 있는 ‘찾아가는 안전점검’ 제도의 대상이지만, 홍보가 덜 되어 (거주자 등의) 신청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주택정책실은 천준호 의원이 요구한 관련 질의에 답하며 "각 자치구의 건축물관리조례로 위임해 30년 이상 소규모 노후 건축물의 안전점검 지원사업을 2018년부터 매년 추진하고 있었다"며 "현재까지 약 14억 원을 지원해 3만8,951동을 점검했고, 2024년부터 3년간 매년 7만 동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집 때문에 사람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면, 국가가 구체적인 조치에 나서야 합니다."
(이강훈 변호사)

”최저 주거기준에 ‘안전’을 담아야”

전문가들은 노후주택 안전점검을 의무화하고, 더 나아가 최저 주거기준에도 건축물의 안전관련 요소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소규모 노후주택의 안전점검을 규율한 건축물관리법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이강훈 변호사는 “노후주택 안전점검을 의무 사항으로 규정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라며 "여기에 더해 안전 문제로 거주자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위해의 정도를 분류하고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변호사는 “면적, 방 개수, 필수설비, 채광 등만 규정한 현행 최저 주거기준(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수준)에 주택 구조·화재안전 요소를 꼭 포함하고 ‘일정 수준 이상 위험한 집에선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개념이 확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일보 인터랙티브 '박제된 나의 집' (링크가 열리지 않을 경우 아래 URL을 복사해서 이용해주세요) :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old_house/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몰아보기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①서울 '초노후주택' 2.3만 채... 그중 56%는 차도 못 가는 골목에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316290003977

②서울 ‘초 노후주택’ 2.3만채 통계화 어떻게 했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814340000766

③수리도, 재개발도, 이사도 안돼요... 늙은 집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121190000960

④[단독] 쩍쩍 갈라지고 파여도...노후주택 75% 점검조차 없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2110004952

⑤노후주택 가구주 절반이 60대 이상... 집과 사람이 함께 늙어간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14270003639

⑥서울서 연탄 쓰는 노후주택 여전히 600가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17240000973

글 싣는 순서
<박제된 나의 집: 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①도시의 섬이 된 늙은 집들
②오래된 집에 갇힌 사람들
③개발-재생의 이분법을 넘어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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