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슈보다 개인 내면에 집중...팬데믹 후유증과 무력감 반영된 듯
팬데믹이 야기한 단절은, 우리의 시선을 안으로 끌어당겼다. 회식 대신 '혼술'로 내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낸 것처럼. 올해 신춘문예 시·소설 부문 응모작들도 사회 문제보다는 자기 내면을 살피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덕분에 한두 가지 이슈에 쏠리지 않았지만, 보편성이 부족하거나 흐릿한 메시지가 아쉬움을 남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달 15일 심사 완료된 '2023 한국일보 신춘문예' 5개 부문에는 전년(1,812명)보다 40여 명 늘어난 총 1,854명이 응모했다. 부문별 응모자 수는 소설 부문 628명, 희곡 부문 106명, 동시 부문 243명으로 각각 전년보다 소폭 늘었다. 반면 동화 부문(206명)과 시 부문(671명)은 약간 감소했다.
신춘문예 응모작은 그해 우리 사회를 투영한다. 세월호, 촛불집회, 'n번방' 사건, 코로나19처럼 사회를 흔든 사건과 연관된 작품들이 당해에 쏟아지곤 했다. 10·29 이태원 참사와 같은 큰 사건이 없지 않았으나 올해는 비교적 사회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 비중이 적은 편이었다.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이수명 시인은 이를 "전체적으로 내면화됐다"고 표현했다. 주로 응모자 개인의 고통과 슬픔을 말하는 데 집중했다는 의미다. 코로나19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선사한 까닭일 수도 있고, 청년의 무력감 혹은 패배감이 깊어진 탓일지도 모른다는 게 심사단의 분석이다.
아쉬운 것은 개인의 벽을 뚫고 나갈 힘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소설 부문 심사에 참여한 은희경 소설가는 "현실이 너무 어렵고 자기 자신이 힘들다는 데서 그친 이야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내면을 향한 시선이 타인으로 확장되는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작가 자신도 정확한 메시지를 모른 채 내면에서만 공명하는 목소리를 글로 옮기다 보니 읽는 이의 완전한 이해를 얻지 못한 셈이다. 시인인 박준 심사위원은 "타자, 외부가 있어야 내 목소리도 생기는 것"이라면서 "내면에서만 (작가의 시선이) 돌다 보니 (메시지가) 부유할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소재는 다양했다. 청년빈곤·주택·취업·환경 문제나 가족·직장 내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희곡 부문 김명화 심사위원(극작가 겸 연극평론가)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와 같은 IT(정보기술) 소재의 미래 사회를 다룬 작품들이 꽤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소설 부문의 한 심사위원은 "세대나 계층, 젠더 등의 측면에서 소설 속 인물 다양성이 예년에 비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4, 5년 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나 여성 혐오 범죄로 쏟아졌던 여성 중심 서사물은 줄었고 SF 장르물 급증세의 기울기도 완만해졌다.
형식면에서 새로운 시도들도 있었다. 소설의 경우 전통적인 구조적 완결성, 꽉 짜인 플롯보다는 부분 부분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소설 부문을 심사한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식 문장'처럼 호흡이 빠르고 잘 읽히는 문장이 눈에 띄었는데, 부정적으로 말하면 표피적인 문장들이 꽤 있었다"고 했다. 산문 형태의 동시도 종종 응모됐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더 많은 그림이 그려져 (동시에) 탄력을 주면 좋겠다"는 개선점이 지적됐다.
아동문학 부문은 올해도 통념에 갇힌 응모작이 적지 않았다. 엄마와의 이별 같은 비슷한 배경 설정, 어른의 눈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그린 피상적 묘사 등이 아쉬움을 남겼다. 동화 부문 심사위원인 김민령 아동문학평론가는 "문장이나 대화 내용을 보면 '문학 훈련'이 된 작가임이 분명하지만, 어린이 인물 묘사 등을 보면 아동문학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동시의 경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어놓고 '상상력'이라고 우격다짐하는 시가 많다"는 평도 나왔다. 동시 심사를 한 이정록 시인은 "동시를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진지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당선작은 내년 1월 2일 자 한국일보 지면에 발표된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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