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꼰대’의 유통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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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에게 청정 한국을 물려줄 의무가 있다
행운 남기고 잊히는 것이 꼰대의 로망이다
언제부터인가 노년층을 ‘꼰대’라고 부른다. 정확한 어원은 모르지만 사전을 보면 영남 사투리 ‘꼰대기’와 프랑스어 ‘콩테’(comte)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뜻은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선생 또는 노인을 가리키는, 청소년 또는 학생들의 은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른에게 배운다’는 개념이 없고 약간 무시와 조롱의 냄새가 있다.
꼰대의 대칭선상에 MZ가 있다. 사전을 보면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M) 세대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Z세대를 일컫는 한국만의 신조어로, 2020년을 기준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를 아우르는 세대를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정치 유관 분야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정치·사회·문화적 현상을 ‘꼰대와 MZ’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그 괴리에서 파생하는 불협화음만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어느 나라나 세대 간 괴리는 있다. 또 여러 문제가 세대 간 갈등에서 파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는 거기서 정반합(正反合) 과정으로 가기보다 대립 양상만 부각하며 파괴적으로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꼰대’에 대해서는 조롱기만 있고 ‘MZ’에 대해서는 건방기만 남는 것 같다.
어느 MZ세대는 신문 기고에서 “MZ세대에게 산업화와 민주화 담론은 유통기한이 다했다”고 했다. 이제 시대적으로 외환 위기, 경제 위기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젊은 세대의 관심거리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문제는 나 몰라라 하면서 애들 흉내나 내는 어른”을 꾸짖고(?) 있다.
견문(見聞) 부족인지 몰라도 나는 우리처럼 편 가르기가 심한 나라는 보지 못했다.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라 동서(東西)로 갈리고, 지역으로 갈리고, 세대로 갈리고, 남녀로 갈리고, 학력으로 갈리고, 빈부로 갈린다. 그리고 다시 꼰대와 MZ로 갈린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력이 앞장서서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고 또 그것을 극대화해서 권력 장악에 이용해 먹는 데 있다. 신문을 보면 온통 친(親)자와 반(反)자 돌림뿐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는 지역별·성별은 당연하고 연령별로 세분해서 20대에서 70대까지 나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안의 성격이 연령, 성별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구분해서 조사하지만 그것도 발표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갈가리 쪼개기 때문에 우리 여론조사에서는 안보·국방 관련 사안이 상위에 오른 적이 없다. ‘꼰대’의 제1 관심사가 전체에서는 MZ에게 밀려 5~6위에 머문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세대 차이는 있고 견해 차이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세대를 한 경향성으로 단정하고 획일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대마다 그 시대, 그 환경에 따른 관심 정도가 다르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구국과 살아남기가 절실했고, 배고픈 시대에는 먹을 것과 일자리가 중요했으며, 탄압의 시대를 산 세대는 민주화가 지상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꼰대는 어차피 물러가게 돼있다. 다음 세대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이 삶의 이치고 세상의 법칙이다. 다만 우리가 겪었던 시대의 문제가 무엇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관찰해달라는 것뿐이다.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유통기한’이라는 미명 아래 폐기 처분하는 식의 세대적 단절은 국가적으로도 이롭지 않다.
‘꼰대’들이 해야 할 일은 우리 세대 때 또는 그 이전부터 저질러진 안보 불안, 국가 정체성 불안, 전교조 불안, 민노총 불안, 연금 불안 등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들의 유통기한은 아직 진행형이고 꼰대들이야말로 이것들을 해결해 다음 MZ세대에게 청정 한국을 물려줄 의무가 있다.
엊그제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재정의 파탄 문제 등을 언급하며 “인기 없더라도 개혁은 회피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런 뜻에서 이해하고 싶다. ‘인기 없더라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
미국의 시인이자 가수인 로드 매쿠엔은 ‘계절마다 특별한 것’이란 제목의 노래에서 젊은이를 행운(fortune)으로, 노인을 잊히는(forgotten) 존재로 묘사했다. 그는 늙음과 젊음의 교차를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로 노래했다. 거기에는 대립이나 조롱이나 비난이 없다. MZ에게 ‘행운’을 남기고 ‘잊히는 것’, 그리고 ‘애들 흉내 내지 않는 것’이 꼰대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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