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조선의 입시열풍
대학 입시를 치른 수험생들이 거둔 결과가 하나둘 나오고, 기쁨과 좌절이 교차하는 시기다. 언제나 나오는 이야기는 “사교육이 문제”니 “공교육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공교육이 만족스러웠던 적이 있기는 했나. 조선만 해도 성균관에서 왕세자의 입학식을 치렀지만, 이후론 조선 최고의 학자들에게 특별 과외를 시켰다. 일반인들은 또 어떤가. 아이들은 엄마 및 할머니에게 한글을 배우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는 한자를 배웠다. 그때도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천재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유명한 선생들에게 자식들을 유학 보내곤 했다. 퇴계 이황이나 우암 송시열 같은 이들이 바로 이런 ‘스승’들이었고, 이 모든 공부의 끝은 대체로 과거 및 입신양명이었다.
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이라고, 꼭 질서정연하고 엄숙했던 것은 아니다. 뽑는 사람은 33명인데 응시하는 사람이 1000명 쯤 되는 조선 후기의 과거는 그야말로 북새통. 게다가 혼자서만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시험 문제 잘 보이는 좋은 자리 잡아주는 사람, 답안지 글씨 예쁘게 써주는 사람들까지 끼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답안지 제출이라 다른 사람들 밀쳐가며 먼저 답안지를 밀어넣는 사람이 꼭 필요했다. 불법이지만, 아예 대리로 답안을 써주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옛날엔 급제하려면 사교육뿐만 아니라, 사설 인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수준. 이래서야 가난한 사람은 과거 급제는 아예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허나 남인 출신이며 가난하고 스승도 없었던 정약용은 과거에서 2등으로 급제했으며, 반대로 정권의 실세이며 노론 벽파의 수장으로 영의정까지 지낸 심환지의 장남은 (전폭적 지원을 받았겠지만) 성적이 영 좋지 않았다. 정조는 친히 “네 아들 성적이 300등 안쪽이면 붙여주려 했는데...”라면서 놀리는 건지 위로하는 건지 모르는 편지를 심환지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설령 많은 난관이 있어도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되는 것이 공부요 인생이다. 오늘도 힘든 시절을 보내는 수험생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지금의 고생은 내일의 당신을 위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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