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넘을 구조물 만들자” 그 야심이 탄생시킨 ‘대관람차’
- 1893년 시카고박람회장 절반
- 엑스포 사상 첫 놀이공원 조성
- 美 대표 랜드마크 ‘빅휠’ 첫선
- 대관람차, 세계 도시 상징물로
- 부산도 180m 높이 건립 거론
- 북항 건설 땐 새 랜드마크 기대
온갖 문명의 산물이 엑스포를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그중 가장 덩치가 큰 발명품은 아마도 놀이공원일 것이다. 놀이공원이란 흔히 테마파크, 어뮤즈먼트파크라 불리는 대규모 위락시설을 말한다.
세계박람회는 전시가 아닌 평시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였으니 자연스럽게 본연의 전람기능 외 오락기능이 생겨났다. 171년 세계박람회 역사상 처음으로 놀이공원이 등장한 것은 1893년 시카고박람회였다. 물론 이전에도 잘 가꾼 야외 정원, 공연장, 수족관, 미니어처, 민속물, 음식점, 탑승용 열기구 등 다양한 유흥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시카고 박람회장에 등장한 본격 놀이공간은 이전의 오락시설을 압도했다. ‘미드웨이 플레이선스’라 명명된 이 세계 최초 놀이공원은 면적만도 박람회장 290만㎡의 절반을 넘었다. 어찌 보면 박람회장 자체가 놀이터가 됐다. 중앙로 1.5㎞를 따라 서커스, 오락극, 퍼레이드, 스트립쇼, 카지노, 토속인촌, 각종 공연, 탈것과 놀이기구, 선술집과 식당가 등 온갖 위락시설이 한자리에 모인 놀이문화의 결정판이었다. 그야말로 먹고 마시고 타고 보고 놀거리가 넘쳐났다.
■놀이기구의 신기원, 대관람차
이집트 카이로 풍경을 재현한 마을에서 음식과 술을 즐기고, 남태평양 토속촌에선 이국적 정취를 한껏 맛볼 수 있었다. 낙타 타기와 야생마 길들이기, 벨리댄스, 패션쇼, 마운틴 혼과 요들송 공연, 인조얼음 스케이트장 등이 인기를 끌었다. 유럽과 미국 식민지에서 가져온 각종 토속품도 눈요깃거리가 됐다.
놀이공원 어디서든 보이는 랜드마크는 대관람차였다. ‘빅휠(Big Wheel)’이라 불린 이 놀이기구는 높이 80.4m 바퀴에 매단 36개 곤돌라에 관람객들을 태우고 빙글빙글 돌았다. 바퀴 중앙축 양쪽에선 대형 성조기가 휘날렸다.
빅휠의 탄생은 세상의 이목을 끌 획기적인 조형물을 세워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시카고박람회 조직위는 1889년 파리박람회에서 에펠탑이란 독보적 기념물이 등장한 데 고무됐다. 그래서 대놓고 ‘에펠탑을 능가할만한’ 독창적인 기념물 공모에 나섰다. 이에 철골건축가 조지 페리스(George Ferris)가 대담한 아이디어를 들고나왔다.
수직으로 세운 철제 바퀴 2개 사이에 버스만한 관람용 곤돌라를 붙여 돌린다는 구상이었다. 페리스는 자전거 바퀴에서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휠 설계안은 위험하고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러나 페리스가 끈질긴 기술 보증과 직접 투자자까지 유치하는 추진력을 발휘한 끝에 조직위의 승인을 얻어냈다.
공사는 엄청난 하중을 견딜 높이 42.7m, 무게 40.5t 주탑을 세우고 바퀴살과 테두리, 곤돌라를 붙여나가는 순으로 진행됐다. 전체 무게 71t의 휠을 돌리기 위해 1000마력짜리 대형 증기엔진이 장착됐다. 어렵게 완공된 휠은 애초 우려와 달리 미시건 호반의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이 잘 돌아갔다.
빅휠의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한 번에 최대 2160명을 태우고 20분간 운행했다. 의자 40개가 설치된 곤돌라는 입석까지 60명 정원이었다. 탑승료는 박람회 입장료와 같은 50센트였다. 그럼에도 인파가 줄을 이어 폐막 때까지 탑승자 수 160만 명을 기록했다.
■“박람회도 비즈니스” 美 상업주의
빅휠은 박람회가 끝난 이듬해까지 운행된 뒤 해체됐다. 이후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에 옮겨 다시 조립해 운영됐다. 원본 휠은 재활용 뒤 사라졌지만 그 원형은 설계자 이름을 딴 ‘페리스 휠’이란 명칭으로 전 세계에 전파됐다.
대중 흡인력이 높은 놀이공원 덕분에 시카고박람회는 흥행에 대성공했다. ‘시카고 데이’로 선포된 10월9일엔 75만1026명이 입장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진기록을 남겼다. 이후 놀이공원은 엑스포의 필수요소가 됐다. 특히 1915년 샌프란시스코, 1939년 뉴욕, 1974년 스포캔, 1984년 뉴올리언스 등 일련의 미국 박람회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금주령 폐지 직후 열린 1933년 시카고박람회 놀이공원은 놀이와 환락, 퇴폐와 외설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뱀쇼, 나이트클럽, 댄스홀, 누드촌 등 온갖 유흥거리가 관람객들을 유혹했다.
자녀를 동반한 관람객들을 위해 ‘마법의 성’이란 최초의 어린이 전용 놀이공원을 따로 만들었다. 유럽과 달리 미국 박람회는 “박람회도 비즈니스”라는 상업주의와 이윤 동기가 깊숙이 작용했다. 놀이공원은 미국 대중문화가 빚어낸 문화상품이라 할 수 있다.
엑스포에서 독립해 특화 발전한 놀이공원은 뉴욕 코니아일랜드부터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드림랜드, 무비월드 등으로 진화의 맥이 이어졌다. 그새 박람회장 내 놀이공원은 효용도가 크게 낮아졌다. 인류 공통과제 논의를 전면에 내세운 2000년 하노버엑스포 이후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가 개최한 1993년 대전엑스포에선 모노레일과 함께 ‘꿈돌이동산’이란 놀이공원이 설치된 반면 2012년 여수엑스포는 놀이공원이 없었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에선 10만㎡ 규모의 놀이공원이 설치됐다.
■세계 최고 250m ‘아인 두바이’
대관람차는 여전히 인기가 높다. 박람회장뿐만 아니라 놀이공원, 도시 전망에서 빠질 수 없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대관람차 규모는 1985년 일본 쓰쿠바엑스포 때까지는 원형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테크노코스모스’라 불린 휠은 높이 85m로 8명 정원인 48개 곤돌라를 달고 15분마다 한 바퀴씩 돌았다. 곤돌라에 태양열 집적판을 달아 에어컨이 가동되는 첨단 방식이었다. 이 무렵 세계 각국은 최고 높이 휠 건설 경쟁에 뛰어들었다. 1990년 일본 후쿠오카 테마파크에 건립된 ‘스페이스 아이’ 휠이 처음으로 높이 100m를 돌파했다.
그러자 중국 베트남 이집트 호주 미국 대만 등이 잇따라 높이 100~160m 휠을 세웠다. 올해 완공된 러시아 ‘선 오브 모스크바’(140m), 2008년 세운 ‘싱가포르 플라이어‘(165m), 2000년 건설된 영국 ‘런던 아이’(135m) 등은 도시의 랜드마크로 세계적 인지도를 얻었다.
현재 세계 최고 높이 대관람차는 지난해 10월 두바이엑스포와 함께 문을 연 블루워터스 아일랜드의 ‘아인 두바이(Ain Dubai)’다. 현대건설이 건설에 참여한 이 휠은 250m 높이로 이전 기록이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하이롤러’(167m)를 훌쩍 넘어섰다.
2030년 부산엑스포 예정지에도 180m 높이 대관람차 건립이 민간 차원에서 거론된 바 있다. 북항에 이 정도 규모의 대관람차가 들어선다면 현재 건설 중인 오페라하우스와 건립 예정인 상징조형물, 재개발 건축물들과 함께 부산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그리게 된다.
※공동기획=국제신문, ㈔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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