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팽나무’ 돌보는 ‘당산나무 할아버지’… “내 자식 같죠”

창원=이소연 기자 2022. 12.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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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할아버지'가 됐다고 해서 별로 달라진 건 없어요. 늘 해오던 대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내 자식처럼 나무를 지킬 뿐입니다." 경남 창원시 북부리 동부마을.

당산나무 할아버지는 문화재청이 전국 천연기념물 가운데 노거수(老巨樹) 179그루를 선정해 올해 3월부터 주변 마을에서 이를 지킬 담당자를 임명한 공식 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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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천연기념물 179그루
가까이서 보살필 어르신들 임명
“번듯한 아파트는 못 물려줘도
후손 위해 자연유산 지켜주는 마음”
당산나무 할아버지 윤종환 씨가 16일 천연기념물인 경남 ‘창원 북부리 팽나무’ 앞에서 “관광객들의 주차 대란으로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근 인근 공터 주인을 수소문해 임시 주차장을 만들고 있다. 늘 그랬듯 내년 봄에도 나무가 아무탈 없이 싹을 틔우길 바란다”며 웃었다. 문화재청 제공·창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당산나무 할아버지’가 됐다고 해서 별로 달라진 건 없어요. 늘 해오던 대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내 자식처럼 나무를 지킬 뿐입니다.”

경남 창원시 북부리 동부마을. 주민 60여 명인 이 마을의 이장인 윤종한 씨(60)는 올해 10월 또 다른 중책을 맡게 됐다. 바로 ‘당산나무 할아버지’다. 당산나무 할아버지는 문화재청이 전국 천연기념물 가운데 노거수(老巨樹) 179그루를 선정해 올해 3월부터 주변 마을에서 이를 지킬 담당자를 임명한 공식 직함이다. 현재까지 윤 씨를 포함해 전국에서 85명이 뽑혔다. 물론 당산나무 할머니도 여럿 있다. 문화재청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나무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윤 씨가 맡은 천연기념물은 ‘창원 북부리 팽나무’. 올해 화제의 드라마였던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나무다. 윤 씨와 함께 16일 수령 500년가량의 팽나무를 찾았다, 극심한 한파에도 이 나무를 보기 위해 30여 명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윤 씨는 “최근까지 매일 1000명 이상, 차량만 쳐도 500대가 넘게 마을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최근 몇 달은 생업인 농사도 뒷전이었어요. 나무 보러 오는 인파를 관리하느라 주차요원도 됐다가 청소부도 됐다가…. 나무를 사랑해줘서 고맙긴 한데, 너무 많이 찾아와서 팽나무가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걱정되긴 해요.”

한파로 인파가 다소 줄었지만 당산나무 할아버지는 여전히 바빴다. 주변 쓰레기를 치우고, 나무에 생채기는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윤 씨는 “하루에 쓰레기가 50L짜리로 8포대가 나올 정도로 몰려들기도 했다”며 “바쁠 땐 화장실 갈 틈도 없다”며 웃었다.

‘당산나무 할아버지’는 문화재청 공식 직함이지만 임금이나 수고비는 없다. 하지만 윤 씨는 “집이 나무에서 걸어서 1분 거리라 당연히 내가 맡아야 할 일”이라며 “사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고 했다. 10월이면 함께 당산제를 지내는 팽나무를 동부마을 주민 모두가 정성스레 돌봐왔다고 한다.

“평생 농사만 지어서 자식들한테 변변한 아파트 한 채 물려주기 어려워요. 하지만 마을을 지켜준 500년 팽나무는 돌보고 지켜줄 수 있죠. 미래 아이들에게 훌륭한 자연유산을 물려준다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당산나무 할아버지 제도를 만든 것도 이런 마을 주민들의 선의를 믿기 때문이었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이원호 학예연구관은 “전문가는 아니어도 오랫동안 나무를 돌보고 지켜봐온 주민들이야말로 나무를 제일 잘 아는 보호자들”이라며 “이번에 임명된 당산나무 할아버지 가운데 화마에서 천연기념물을 지켜내신 분도 있다”고 귀띔했다.

주인공은 3월 2일 경북 ‘울진 화성리 향나무’의 당산나무 할아버지로 임명된 이재욱 씨(59). 임명된 지 사흘 만인 5일에 난 울진 화재 때 집도 내팽개친 채 소방대원들과 향나무를 지켰다. 16일 통화한 이 씨는 “당시 농기구가 가득했던 60평 창고가 다 탔다”며 “창고야 다시 지으면 되지만 천연기념물은 한번 잃으면 끝이지 않느냐”고 했다.

“마지막 불씨 하나가 잡힐 때까지 나무 곁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재산 피해가 4억 원 났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당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란 뜻이에요. 대대로 이어진 전통을 불에 타 사라지게 할 순 없잖아요. 고민할 게 뭐 있어요. 나무를 지켜야지.”

창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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