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수도권 언론이 뺀 대통령의 ‘지방 살리기’

강필희 기자 2022. 12.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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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30분 관통한 핵심주제…진보도 보수언론도 철저 외면
균형발전 무관심 편파보도가 지방민 분권염원 막는 걸림돌

지난주 TV로 생중계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점검회의 지상파 방송시청률은 0.5~0.9%에 그쳤다. 기본적으로 딱딱한 국정회의 시청률이 높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정작 기자를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이날 회의를 전한 수도권 언론의 보도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양한 진단과 대책이 쏟아지고 타 주제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된 ‘지방 살리기’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아니 묵살됐다. 오만함인지, 무지함인지, 지방에 대한 악의까지 느끼게 하는 이런 태도는 보도의 우선순위 문제가 아닌 사실 왜곡에 가깝다. 안타까운 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듯 우리 국민 대다수가 ‘수도권에 의한, 수도권을 위한’ 수도권 언론사의 시각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지방시대’라는 주제가 ‘경제·민생’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과 함께 점검회의에서 다뤄진다 했을 때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다. 멀리 갈 것 없이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마지막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방분권 문제는 지방지 입장에서 제목 한 줄 뽑기 힘들 정도로 단 한마디 언급되는데 그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지방 혹은 분권은 특정 섹션에 국한되지 않고 점검회의 전반을 관통한 주제였다. 기회발전특구 지정, 내년 하반기 2차 공공기관 이전 시작, 지자체 조례로 문화재보호구역 해제 추진 등 파격적 내용이 이어졌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의 요체는 교육이라며 지방에 교육자유특구를 만들고, 지방대 예산 편성과 정원 조정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기겠다는 약속은 획기적이었다. 국무총리나 국가균형발전위원장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 장관, 교육부 장관, 여당 정책위의장 입에서 계속 언급된 게 ‘지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이 러닝메이트가 되면 어떤가”라는 깜짝 제안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2시간30분 행사가 끝난 뒤 시청자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은 이슈가 ‘지방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정책에서 중요한 건 의지의 표명만 아니다. 만난을 무릅쓰고 뚫고 나갈 실행력,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해 나가돼 그 본질을 잃지 않는 혜안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냥 도상계획, 립 서비스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이후 중앙정부가 이번처럼 지방 어젠다를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은 없다.

놀라운 건 당일과 다음날 수도권 언론 보도다. 회의를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한 통신사 뉴스에서 지방시대 섹션이 차지한 비중은 극히 일부였다. 중앙지는 더했다. 다음날 해설면에 조그맣게 박스로 처리한 채, 1면은 온통 부동산정책 연금개혁 노동개혁이었다. 1면 종합기사에서 분권 관련 내용을 쓰지 않은 신문이 대부분이었다. 보수지들은 다주택·임대업자의 주택담보대출 허용이나 연금·노동개혁을 주요하게 다루면서 정책 완성을 촉구하고, 진보지들은 점검회의 내용이나 형식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다. 2500만 지방민 관심사에 중앙 언론은 아무 응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생중계를 직접 보지 않은 국민이 이런 지면만 접한다면 그들에게 국정과제 점검회의는 온통 연금과 부동산이었을 것이다.

언론학자들은 종종 ‘무보도 현상’에 주목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드러내지 않는 것, 없는 것이 바로 무보도이고 이것이 갖는 함의를 추적하다 보면 때로는 표면에 떠있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분명 실제했던 일인데도 어떤 언론은 못 본 듯 아예 눈감아 버리고, 어떤 언론은 지나치게 상세히 분석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이번에도 중앙 언론 입장에선 아무리 대통령이 강조한다 한들 지방 문제는 그저 무보도 대상이었을 뿐이다.

부동산정책이나 연금개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손대지 못했던 연금개혁을 이번에 이루지 못하면 미래세대는 더 암담해진다. 건강보험도 개혁의 골든타임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바탕에 저출산 고령화가 있고 그 근원엔 수도권 집중화가 있다는 사실에 이제는 많은 이가 공감한다. 사람이 수도권에만 모이니 집값이 오르고, 주거와 교육 비용이 높아지니 결혼을 못하고 아이를 안 낳는다.


수없이 외쳐온 ‘지방시대’ ‘지방분권’ 구호가 도로에 그친 건 관료들의 몰이해 때문만이 아니다. 언론도 걸림돌이다. 중앙지와 방송이 수도권에 있고, 종사자들은 거기서 자녀를 키우며 사는 수도권 주민이다. 권한과 혜택을 지방에 빼앗기기 싫은 이해당사자의 한 축이다. 비수도권 주민들이 수도권 집중의 폐해와 지방 살리기 당위성을 끊임없이 중앙정부에 채근하고 요구하는 한편으로, 지방을 ‘딴나라’ 취급하는 편파적인 언론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남의 눈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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