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반격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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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급진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이듬해 청나라 이홍장과 일본 이토 히로부미는 톈진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한반도를 발판 삼아 아시아를 집어삼킬 원대한 꿈을 꾸던 일본군은 철군 대신 경복궁을 점령, 청일전쟁을 도발했고 결국 조선을 강제병합하며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청군 파병을 꼬투리 삼아 당시 한성(서울)을 점령했던 것처럼 일본은 북한의 최근 잇단 무력도발을 빌미로 한반도 군사 개입을 하겠다며 안보정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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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급진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이듬해 청나라 이홍장과 일본 이토 히로부미는 톈진조약을 체결했다. 조선에 들어온 양국 군대가 철수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유사시 한쪽이 조선에 들어오면 다른 한쪽도 군대를 보내는 공동파병 조건을 걸어 조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다. 그로부터 9년 뒤 조선 민씨척족정권의 무능·폭정에 분노해 동학농민운동이 폭발하자 고종과 민비는 자국민을 진압해달라며 청군에 파병을 요청한다. 이에 일본도 톈진조약에 따라 자동 개입했다. 조선이 외세 열강 간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동학농민군은 서둘러 조정과 전주화약을 맺고 자진 해산했다. 하지만 한반도를 발판 삼아 아시아를 집어삼킬 원대한 꿈을 꾸던 일본군은 철군 대신 경복궁을 점령, 청일전쟁을 도발했고 결국 조선을 강제병합하며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130년 전 일본의 ‘유사시 한반도 개입’ 야욕이 다시 스멀거린다. 일본 정부가 지난 16일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이른바 ‘반격능력’ 내용을 담은 ‘3대 안보문서’를 개정했다. 일본 미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할 경우 적국 미사일 기지 타격 등 자위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반격능력 대상이 북한 등 한반도 일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명시해 북한도 우리 영토에 해당하므로, 우리 영토가 일본의 직접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청군 파병을 꼬투리 삼아 당시 한성(서울)을 점령했던 것처럼 일본은 북한의 최근 잇단 무력도발을 빌미로 한반도 군사 개입을 하겠다며 안보정책을 바꿨다. 방위비도 2배로 늘린다고 한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이 같은 발표는 국내외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반격능력이 평화헌법(헌법 제9조)에 기초한 ‘전수방위(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가능)’ 원칙에 위배돼 일본 내에서도 위헌 논란이 나온다. 개헌도 하기 전에 전력 보유 및 교전권 금지 등을 명시한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시도라는 반발이다.
‘적국’으로서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중국은 기시다 총리의 발표 후 함재기를 띄우는 등 즉각 무력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직접 식민통치를 겪은 한국은 “일본이 반격능력을 행사하려면 우리 동의가 필요하다”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큰 틀 속에서 논의할 수 있다” 등 오히려 가능성을 열어둔다. 역사의 데자뷔 상황에서 개정 안보문서에 명시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에 관해서만 항의하는 정부의 대응 정도로 괜찮을까.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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