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23%는 위험성 큰 ‘착공전 자금 조달’

김효인 기자 2022. 12. 20.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땅 매입 등 초기 비용에 들어가… 사업중단 리스크 커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과 단기사채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의 23%(올해 상반기 기준)가 착공 전 사업장에서 발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착공 전에 발행되는 유동화증권은 ‘브리지 론(bridge loan)’으로 불리는데 땅을 매입하는 등 초기 비용을 충당하는 데 쓰인다. 실제 공사가 시작되면 브리지 론이 본 PF로 전환되는데 아직 이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유동화증권의 비중이 5분의 1을 넘은 것이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브리지 론은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불황일 때는 리스크가 매우 커진다”며 “내년에 일부 사업장에서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했다.

◇12조 규모 브리지 론, 채무불이행 위험

19일 나이스신용평가 집계에 따르면 유동화증권 발행 한도를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에 준공된 사업장의 비중은 10%에 불과했다. 착공 전 사업장이 23%, 공사 중인 사업장이 67%였다. 착공 전 사업장에서 발행된 유동화증권 비중은 지난 2020년 상반기 17%에서 차츰 늘어 지난해와 올해 20%를 넘어섰다. 최근 5년간 이어진 부동산 활황기에 공사를 시작하려고 브리지 론을 받은 건설사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글로벌 금리 인상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브리지 론 리스크가 커졌다.통상 건설사나 시행사들은 착공 전에 증권사나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높은 금리로 브리지 론을 받은 뒤 공사가 시작되면 금리가 낮은 은행권에서 PF대출을 받아 브리지 론을 갚는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은행들이 PF대출을 대거 축소하면서 브리지 론을 갚기 어렵게 된 것이다.

나신평 집계에 따르면 이달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증권사·건설사의 신용보강 유동화증권 금액이 10조원에 달한다. 내년 상반기에도 50조원가량의 만기가 도래한다. 이중 약 20%가량이 브리지 론으로 추산된다. PF대출을 받지 못할 경우 12조원가량이 채무불이행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부동산 경기가 더 나빠지면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시행사들이 사업을 포기해버릴 확률이 높다”며 “공사가 진행될수록 빚만 커지고 분양 성공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소형 증권사, 캐피탈사, 저축은행 위험 커

신용평가사들은 부동산 PF와 관련해 가장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는 업종으로 증권사, 캐피탈사, 저축은행을 꼽는다. 지난 6월 기준 국내 PF채무증권 잔액은 159조원으로 이 보험사(42조원)와 은행(28조원)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문제가 가장 심각한 브리지 론을 주로 취급한 것은 증권사와 캐피탈사, 저축은행이었기 때문이다. 김대현 S&P 아태지역 금융기관 신용평가 이사는 “지난 10년간 증권사들이 부동산 PF 지급보증 규모를 빠르게 늘려왔고,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는 지난 5년간 부동산 PF 대출을 20% 늘렸다”며 “다양한 조달 구조, 펀딩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대형 증권사와 그룹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은행계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잘 대처하겠지만 중소형 증권사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 “이라고 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주요 증권사 24곳의 자기자본 대비 브리지 론 비중은 평균 12%다. 특히 중형 증권사는 18%, 소형사는 19%를 기록해 대형사(10%)의 2배에 달했다. 증권사별로는 하이투자증권(47%), BNK투자증권(35%), 현대차증권(31%), 다올투자증권(31%)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단기간에 부동산 PF 시장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나신평 측은 “아직까지는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유동성으로 차환발행 물량을 어렵게 소화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차환발행이 중단되고 건설사와 증권사의 신용위험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