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판 인·태전략은 미중 균형 유지해야

김홍구 전 부산외국어대 총장 2022. 12.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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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구 전 부산외국어대 총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제23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아세안 중심성’과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아세안과의 협력을 심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은 AOIP와 달리 중국 견제가 목적인 미국의 인·태전략과 다를 바 없다는 반응이 많다.

2019년 아세안 국가들이 발표한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은 미국 주도의 인·태 전략을 수용하면서도 ‘아세안 중심성’을 유지하고,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포용성)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은 포용 신뢰 호혜의 3대 협력 원칙하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으나 아세안의 인·태전략과는 같은 듯 다른 점이 있다.

아세안 중심성은 아세안과 외부 국가의 관계, 강대국을 포함한 지역 다자 협력에서 아세안의 지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아세안 중심성을 강조하는 아세안국가들은 실용주의를 추구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한 편에만 서려고 하지 않고 실제도 그렇게 행동한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 중 미·중 양국과 합동군사훈련을 갖는 나라가 많다. 또 양국 모두로부터 무기를 구입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시각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세안에서 오래전부터 외교술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국가는 단연 태국이다. 태국이 견지하는 대나무 외교정책이라는 필살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대나무는 휘기는 쉬워도 부러뜨리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태국의 외교적 유연성을 의미하는 외교정책이다. 태국이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구 식민지 경험 없이 독립을 유지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태국은 상황에 따라 친미와 친중 외교노선을 드나들고 있다. 최근 들어서 발생한 2014년 군사쿠데타 후 미국의 비난을 받자 중국 편에 바짝 다가갔다. 중국 무기를 구매하고 합동군사훈련도 실시했다. 그러나 미국이 인·태전략의 주요 파트너가 될 태국을 다시 찾고 있는 형국이 조성되자 내년 초 미국과의 합동군사훈련 재개를 계획하고 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다. 필리핀은 유엔 국제중재재판소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제소해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근거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중국에 대해 강력한 법적·정치적 요구를 할 것이란 일반적 예상을 깨고 경제협력을 통한 실리를 택했다.

미국과 필리핀은 유사시 필리핀의 안보와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방문군협정(VFA)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에 VFA 종료를 통보한 적이 있다. 미국이 두테르테 행정부의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인권문제와 연결시켜 비난의 수위를 계속 높여가자 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이다. 두테르테 정권 기간 중 친중 노선을 걷던 필리핀은 최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자 다시 미국과의 적극적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밀당 외교의 능숙함이 느껴진다.

사례를 든 이들 두 나라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중 하나인 동남아지역에서 미국이나 중국 어떤 한 나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외교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많은 아세안 국가들이 처한 외교적 상황과 전략은 이들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실리를 추구하고자 한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져있는 한국과 아세안의 전략적 이익은 유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협력을 목표로 하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과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연히 우리의 인·태전략의 목표는 AOIP와 접점을 넓혀가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미·중 간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데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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