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면 갑자기 두통·눈 통증…혹시 ‘폐쇄각 녹내장’?
- 약물·레이저 치료, 백내장 수술
- 다른 눈 예방조치 상담도 중요
- 증상 비슷한 뇌졸중 오인 빈발
- 환자 44% 뒤늦게 안과 진료
주부 L(61) 씨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쉬던 중 갑자기 오른쪽 머리와 눈에 통증이 생겼다. 아울러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났다. 응급실을 찾은 그는 머리 CT(컴퓨터단층촬영) 등 신경과적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오른쪽 눈이 뿌였게 보여 안과 진료를 받으니, ‘급성 폐쇄각 녹내장’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안압 하강제 및 레이저 치료를 받은 후로는 두통이 없어졌고, 2~3주 뒤 시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녹내장은 자각 증상 없이 수년에 걸쳐 시신경이 조금씩 손상되면서 실명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이다. 이런 일반적인 녹내장과는 양상이 완전히 다른 녹내장도 있다. 바로 급성 폐쇄각 녹내장이다. 부산의료원 안과 박건형 과장의 도움말로 그에 대해 알아봤다.
이 질환의 특징은 갑작스러운 두통, 안구통, 시력 저하 등이다. 60대에서 발병률이 가장 높고, 여성에게 더 잦다. 계절과 조명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특히 겨울철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 그 이유는 어두운 환경에서 빈발하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밤이 길고 실내 활동시간이 많아져 발병률이 높다.
이 질환은 오심, 구토가 흔하다. 따라서 편두통 혹은 머리 이상으로 생각해 내과 또는 신경과에서 검사·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44%의 환자가 다른 과 진료를 먼저 받다가 뒤늦게 안과를 찾는다. 응급실에 오더라도 뇌졸중 뇌출혈 등과 증상이 비슷해 헷갈린다. 하지만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두통 구토 등과 함께 눈에 안개가 낀듯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력 저하가 갑자기 생기면, 뇌가 아닌 눈 이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눈 안의 ‘방수’가 빠져나가는 전방각이 홍채에 막혀 일어난다. 방수가 나가지 못하면서 안압이 급격히 오르고 두통 안구통 시력 저하가 생긴다. 박건형 과장은 이에 대해 “보통 전방각이 선천적으로 좁거나 눈이 상대적으로 작은 여성, 수정체가 큰 경우에 잘 발생한다”면서 “드물지만 약물에 의해 유발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발기부전 치료제와 다이어트약이 해당되며 감기약 복용 후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치료는 일단 안압을 떨어뜨리기 위한 고강도의 안압 하강제를 사용한다. 그래도 안되면 레이저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이 질환은 치료 면에서도 일반 녹내장과 큰 차이가 난다. 그것은 백내장 수술로 완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녹내장을 백내장 수술로 치료한다니 이상하게 여길 수 있으나, 발병기전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전방각은 눈 속에서 큰 부피를 차지하는 수정체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좁아지기 쉽다. 따라서 백내장 수술로 수정체를 제거하고 얇은 인공수정체로 대체하면 전방각이 훨씬 넓어지고 방수 흐름이 원활해져 안압이 영구적으로 떨어지는 원리이다. 그래서 급성기에 일단 약물치료를 하고, 이후 경과를 보면서 필요할 때 백내장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의료원 박건형 과장은 “급성 폐쇄각 녹내장이 생기면 수년 내 반대쪽 눈에도 녹내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레이저 홍채 절개술 같은 시술을 미리 시행하면, 방수 흐름이 좋아지고 전방각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레이저 치료도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감소하고, 일부에서는 치료 후에도 결국 녹내장이 발병했다는 보고도 있다.
박건형 과장은 “백내장 수술은 예방 효과가 훨씬 우수하지만, 시력이 잘 나오는 눈에 미리 수술하는 경우는 잘 없다. 급성 발작이 나타난 환자라면 의사와 상담해 반대쪽 눈의 예방 치료법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방수
눈의 각막 뒤와 홍채 사이의 공간이나 홍채 뒤와 수정체 사이에 들어 있는 액체로, 눈알 안의 영양과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많아지거나 배출작용에 장애가 생기면 녹내장을 일으킨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