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33> 부산시민공원 출토 반달돌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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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 끼 하자" "밥이 넘어가냐?" "밥맛없다" "밥값 해야지" 밥과 관련된 수많은 관용어처럼 우리 삶은 밥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농사 기술이 고도화되지 않은 청동기시대에는 곡식이 같은 속도로 익지 않았기에 먼저 익은 일부 줄기만 끊을 수 있는 반달돌칼이 유행했다.
한 개의 끈을 구멍에 꿰어 끝을 묶어준 뒤, 끈 사이에 손을 넣어 반달돌칼을 잡아 고정하면 곡식 줄기를 누르거나 당길 때 안정감이 있었고, 힘의 강약을 더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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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 끼 하자” “밥이 넘어가냐?” “밥맛없다” “밥값 해야지” 밥과 관련된 수많은 관용어처럼 우리 삶은 밥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오죽할까.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퍽 고달팠다. 사냥과 채집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목숨을 잃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주변의 먹거리를 계속 이용하다 보면 고갈되기 마련이라 떠돌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신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따뜻해졌고 처음으로 조·기장 등 초보적인 농경이 시작됐다.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발전이었지만 아쉽게도 아직 농경은 보조적 수단이었고 주로 어로 사냥 채집을 통해 먹고 살았다.
한반도는 청동기시대가 되면 밭농사 말고도 벼를 수확하는 논농사가 시작돼 본격적인 농경사회에 접어든다. 정착, 마을 형성, 잉여생산물, 지배계층 분화 등 농경사회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부산에서도 청동기시대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다수 조사됐지만 아쉽게도 농경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논·밭은 조사되지 않았다. 다만 농경이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있는데, 바로 오늘 소개하는 반달돌칼이다.
반달돌칼은 곡식 이삭을 잘라 수확하는 도구다. 농사 기술이 고도화되지 않은 청동기시대에는 곡식이 같은 속도로 익지 않았기에 먼저 익은 일부 줄기만 끊을 수 있는 반달돌칼이 유행했다. 몸체가 반달 모양인 것이 많아 이름 붙여졌지만, 사실 물고기모양 네모 세모 사다리꼴 등 다양하다.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부지에서 출토된 반달돌칼도 반달보다는 물고기 모양에 가깝다. 날로 사용할 부분은 아래로 볼록한 호선으로, 앞면에서 뒷면을 향해 비스듬히 날이 세워져 있다.
손바닥이 닿는 부분은 위로 약간 볼록한 형태로, 날 없이 편평해 잡기 좋다. 몸체 중앙에 뚫린 구멍 2개는 효율성을 높여주는 장치다. 한 개의 끈을 구멍에 꿰어 끝을 묶어준 뒤, 끈 사이에 손을 넣어 반달돌칼을 잡아 고정하면 곡식 줄기를 누르거나 당길 때 안정감이 있었고, 힘의 강약을 더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반달돌칼은 다른 박물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며 형태도 비슷하다. 그만큼 농경이 보편화되었다는 증거이다. 한반도에 여러 변화를 촉발한 농경과 그것을 상징하는 반달돌칼에 담긴 의미가 어찌 농사뿐일까. 정착에서 오는 안정감, 더 좋은 내일을 꿈꾸는 희망, 맛있는 밥에 대한 기대, 어쩌면 고인돌 축조에 대한 힘겨움까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묻어있을 것이다. 예사로이 지나치지 마시고 그 다양한 사연에 귀 기울여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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