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연말[2030세상/김지영]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2022. 12.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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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한번 해야지." 이맘때면 가까운 이들과 으레 주고받는 말이었다.
그 '가깝다'는 수식을 지키기 위해 채워야 하는 최소한의 교류가 있다면, 연말연시는 벼락치기 시즌이니까.
그리웠던 이들을 보고 듣는 시간은 대체로 다정했지만, 몰아서 하는 무언가가 대개 그러하듯 귀한 만남과 비싼 술 끝에도 종종 체기가 올라왔다.
그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전에 없이 정적인 연말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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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한번 해야지.”
이맘때면 가까운 이들과 으레 주고받는 말이었다. 그 ‘가깝다’는 수식을 지키기 위해 채워야 하는 최소한의 교류가 있다면, 연말연시는 벼락치기 시즌이니까. 그리웠던 이들을 보고 듣는 시간은 대체로 다정했지만, 몰아서 하는 무언가가 대개 그러하듯 귀한 만남과 비싼 술 끝에도 종종 체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이른 11월부터 구정까지, 길게는 세 달 가까이를 새해 인사를 주고받으며 보냈다. 많이 만나고 많이 마셨다. 말하자면 ‘과잉’이 평균인 시기였다. 원래대로라면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올 초, 버스에서 내리다가 발목을 다쳤다. 한 달 깁스 후 당장 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은 회복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술이 필요했다. 입원과 수술, 다시 목발과 재활까지 두 달은 족히 감수해야 할 예견된 불편은 아득했고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이직하고 첫해인데 이 업무만 마무리하고. 이번 달은 외부 활동이 많으니까 이달만 지나고. 취소하기 어려운 약속을 잡아버렸으니 조금만 더 있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나열하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출근길, 덜컥 수술 날짜를 잡아버린 것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자각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그래, 수술이라도 하자. 해 가기 전에 이거라도 하자. 흔히들 기피하는 시기이다 보니 예약은 순조로웠고 그렇게 얼마 전, 근 일 년을 미루던 수술을 마침내 해치웠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시자마자 병상에 누워 제일 먼저 한 일은 감당 못 할 약속들을 취소하고 사과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전에 없이 정적인 연말을 보내고 있다. 활동이 불편한 만큼 동선은 최소화하고, 왁자지껄한 모임 대신 간소한 식사를, 술 대신 차를 고른다. 그마저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약속은 고사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드 가득 올라오는 모임 인증샷들과 단체 채팅방의 후기들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들 바쁜데, ‘이럴 때’ 아니면 모이기 힘든데, 무리해서라도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때때로 일지만 별수 있나. 시시각각으로 부어오르는 발이 귀가를 재촉하는데.
더불어 한편으로는 목발을 면죄부로 합법적으로(?) 쟁취한 이 무력한 고립감이 더없이 안락하다…고 하면 사회성을 의심받을까.
연말연시는 일상에 치여 놓친 이들을 되찾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밀린 만남 빚을 치르거나 무의미한 단합에 동원되는 시기이기도 하니까. 특유의 달뜬 번잡함에서 한발 물러나 객석에서 관망하며 맞는 익숙한 계절이 새삼 사치스럽다. 예의를 몰라서도 아니고 사교성이 떨어져서도 아니고 다만 몸이 허락지 않아서, 당분간은 이렇게 스스로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최소한의 일정을 최소한의 품을 들여 소화하기로 한다. 이따금 어려울 테지만 별수 있나. 진짜 나의 ‘새해 복’을 빌어줄 이들은, 부재를 추궁하는 이들이 아니라 수술 날짜를 기억했다가 “괜찮냐” 물어오는 이들, 군소리 하나 없이 빈 책상에 영양제 하나 던져주고 가는 이들임을 이제는 안다.
이맘때면 가까운 이들과 으레 주고받는 말이었다. 그 ‘가깝다’는 수식을 지키기 위해 채워야 하는 최소한의 교류가 있다면, 연말연시는 벼락치기 시즌이니까. 그리웠던 이들을 보고 듣는 시간은 대체로 다정했지만, 몰아서 하는 무언가가 대개 그러하듯 귀한 만남과 비싼 술 끝에도 종종 체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이른 11월부터 구정까지, 길게는 세 달 가까이를 새해 인사를 주고받으며 보냈다. 많이 만나고 많이 마셨다. 말하자면 ‘과잉’이 평균인 시기였다. 원래대로라면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올 초, 버스에서 내리다가 발목을 다쳤다. 한 달 깁스 후 당장 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은 회복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술이 필요했다. 입원과 수술, 다시 목발과 재활까지 두 달은 족히 감수해야 할 예견된 불편은 아득했고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이직하고 첫해인데 이 업무만 마무리하고. 이번 달은 외부 활동이 많으니까 이달만 지나고. 취소하기 어려운 약속을 잡아버렸으니 조금만 더 있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나열하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출근길, 덜컥 수술 날짜를 잡아버린 것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자각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그래, 수술이라도 하자. 해 가기 전에 이거라도 하자. 흔히들 기피하는 시기이다 보니 예약은 순조로웠고 그렇게 얼마 전, 근 일 년을 미루던 수술을 마침내 해치웠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시자마자 병상에 누워 제일 먼저 한 일은 감당 못 할 약속들을 취소하고 사과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전에 없이 정적인 연말을 보내고 있다. 활동이 불편한 만큼 동선은 최소화하고, 왁자지껄한 모임 대신 간소한 식사를, 술 대신 차를 고른다. 그마저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약속은 고사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드 가득 올라오는 모임 인증샷들과 단체 채팅방의 후기들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들 바쁜데, ‘이럴 때’ 아니면 모이기 힘든데, 무리해서라도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때때로 일지만 별수 있나. 시시각각으로 부어오르는 발이 귀가를 재촉하는데.
더불어 한편으로는 목발을 면죄부로 합법적으로(?) 쟁취한 이 무력한 고립감이 더없이 안락하다…고 하면 사회성을 의심받을까.
연말연시는 일상에 치여 놓친 이들을 되찾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밀린 만남 빚을 치르거나 무의미한 단합에 동원되는 시기이기도 하니까. 특유의 달뜬 번잡함에서 한발 물러나 객석에서 관망하며 맞는 익숙한 계절이 새삼 사치스럽다. 예의를 몰라서도 아니고 사교성이 떨어져서도 아니고 다만 몸이 허락지 않아서, 당분간은 이렇게 스스로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최소한의 일정을 최소한의 품을 들여 소화하기로 한다. 이따금 어려울 테지만 별수 있나. 진짜 나의 ‘새해 복’을 빌어줄 이들은, 부재를 추궁하는 이들이 아니라 수술 날짜를 기억했다가 “괜찮냐” 물어오는 이들, 군소리 하나 없이 빈 책상에 영양제 하나 던져주고 가는 이들임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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