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국내외 ‘판갈이’ 정치

기자 2022. 12.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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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지는 해가 짙은 암운에 가려 황혼도 깃들지 않고 서산을 넘고 있다. 새해에는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은 빛이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기를 소망한다.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2023년에는 우리의 소망처럼 세상이 안팎으로 좀 나아질 것인가? 우리는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교수신문은 지난 1년간 우리나라 현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했다.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은 과이불개(過而不改)였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조선시대 폭군이었던 연산군에게 대간(관리를 감찰하고 임금에게 간언하던 벼슬아치)이 ‘소인의 등용이 불가하다’고 아뢰고 상소하였으나 연산군이 듣지 아니하자, 사관이 실록의 <연산군일기>에 썼던 말이다. 2~5위로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알(卵)을 쌓아놓은 듯 위태롭다’ ‘잘못된 허물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꾸미어 고치지 아니한다’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식견이 좁아 자기 주관대로 사물을 판단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들이 뽑혔다. 2022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나라 ‘안팎’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정치는 동서고금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적으로 두 가지 일을 중시해 왔다. 그 하나는 민생문제의 해결이다. 특히 정치가 돕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과 품격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의 민생을 책임지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조장하는 각종 분열을 막고 공동체와 공공선을 위해 통합을 이뤄내는 일이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 정치는 이러한 정치 본령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한편, 국제사회를 보면, 인류 공통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강대국 간의 ‘협력적 국제 거버넌스’가 실종된 지 오래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패권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토(미국·유럽)와 러시아 간의 전쟁까지 겹쳐서 기존의 국제체제 내의 변화가 아닌 국제체제 자체의 ‘판갈이’가 진행 중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의 지식과 질서를 흔들어버리는’ 기술 패권 추구와 지정학적 패권 추구가 결합하여 기존의 국제질서의 조직원리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팎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국내적으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행태를 보면, 2024년 4월에 있을 제22대 총선에서 통합전략보다는 오히려 각종 ‘갈라치기’의 분열전략을 통해 승리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야당도 신뢰받는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반(反)정치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소야대의 상황인데도 민생과 민주주의, 한반도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대 반지’를 손에 쥔 정치화된 검찰에 대한 공포와 반(反)개혁적인 기득권 거대 양당체제의 해악에 질린 시민들은 정치 자체의 ‘판갈이’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행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새해 4월 말에 임기를 마치면, 곧바로 ‘선거법 개정’만을 다루는 정치개혁특위를 출범시켜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과 ‘대선 결선투표제’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과 결단을 통해 2024년 4월 총선에서 다당제 연합정치를 탄생시키고 21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인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단순히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는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탄생시켜 제도적으로 시민들의 다양한 선호와 요구를 반영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할 때다.

한편, 국제질서의 대변환이 진행되는 지금 상황에서는 당장 국익에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전략과 정책도 나중에 우리와 후손에게 손해를 끼치는 낭패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긴 안목’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주성과 국제성을 미래지향적으로 조합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은 ‘미·중 균형론’과 ‘한·미동맹 강화론’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할 때가 아니라 양자병행이 답이다. 현재와 미래의 핵심적인 문제들의 해결을 고민하되, 국제질서의 판갈이를 고려하여 무엇이 과연 우리와 후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길인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지도자가 안팎 정치를 잘 알고 또 긴 안목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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