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아이나르 홀뵐과 헬레보루스
사람 이름도, 꽃 이름도 생소하실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인물과 식물이지만, 그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꽃은 알고 있었으나 아이나르 홀뵐은 필자도 처음 접하는 인물이었다. 서울 서촌의 ‘창성동 실험실’에서 열렸던 크리스마스실(seal) 전시회는 옛 추억을 소환한 반가운 전시였다. 덕분에 크리스마스실의 역사도 만날 수 있었다.
성탄절 하면 떠오르던 크리스마스실. 연하장에 글을 쓰고 우체국에서 부치던 아날로그적 정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결핵 모금 운동이 아직 활발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럽에 결핵이 만연하던 19세기 말, 어린이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 홀뵐은 결핵 기금 마련을 위해 크리스마스실의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1904년 12월4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이 탄생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932년 12월 캐나다 선교 의사였던 셔우드 홀에 의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실의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으니, 그 역사가 이제 90년이다.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은 그 형태가 우표와 같은 모습이었다. 위쪽에는 JULEN(덴마크어로 성탄을 뜻함)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좌우에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꽃이, 그리고 중앙에는 자선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덴마크 여왕 루이제 폰 헤센카셀의 사진으로 장식하였다. 실에 그려진 꽃은 언뜻 보면 튤립 같지만, 헬레보루스다. 흔히 ‘크리스마스장미’라고도 불리는데, 장미과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꽃이 장미와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꽃이 귀한 겨울에 하얀색의 꽃이 피는 상록성이라 전 유럽에서 원예용으로 사랑받고 있다. 헬레보루스라는 이름은 학명(Helleborus niger, 헬레보루스 니게르)에서 유래하였다. 헬레보루스는 약용식물로 사용되었지만, 호흡기 질환에 사용된 예는 없어 결핵과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홀뵐이 실의 디자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크리스마스 즈음에 예쁜 꽃을 피우고, 그 이름도 성탄과 관련이 있어 소재로 사용된 듯하다. 덴마크 크리스마스실에 그려진 인물은 바뀌었지만, 헬레보루스는 1910년대 초까지 계속 실의 프레임 장식으로 그려졌던 걸 보면, 그 의미가 컸던 모양이다.
대한결핵협회에서 발행한 올해의 크리스마스실은 손흥민 선수가 주인공이다. 그를 포함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활약 덕분에 온 국민이 힘을 얻은 연말이었다. 결핵을 극복하는데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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