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돌봄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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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저자는 간병인,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아이 또는 노인을 돌보는 사람 등 수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대 사회가 처한 돌봄의 위기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어린이집, 요양원 등에서 종사하는 돌봄 관련 일자리에 높은 임금이나 좋은 노동조건을 제공해 돌봄 인프라를 빠르게 확충하기보다 의료 공공성을 약화하는 등 돌봄을 시장에 내던짐으로써 사회 전체를 '돌봄의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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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개혁 말하기 전 공적 서비스 늘려야
가뜩이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률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2020년 전체 의료비 총액 대비 공공재원 지출 비용, 즉 국가 지원과 건강보험을 합친 비용을 살피면, OECD 국가 평균치는 76.3%에 달했으나 한국은 62.6%로 36위를 기록했다. 공적 의료비 지출이 줄면 개인 부담이 커진다. 큰 병에 걸리면 돈 걱정에 죽음을 택하거나 집안 전체가 몰락하는 재난을 맞는 것이다. 참담한 일이다.
영국 작가 매들린 번팅의 ‘사랑의 노동’(반비 펴냄)에 따르면, 돌봄 없는 사회는 현대의 가장 두려운 악몽이다. 저자는 간병인,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아이 또는 노인을 돌보는 사람 등 수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대 사회가 처한 돌봄의 위기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었다. 공중보건 제도의 도입과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이다. 1908년 영국인의 기대수명은 50세 전후였으나, 현재는 80세를 넘었다. 그러나 수명 증가는 어둠도 가져왔다. 당뇨, 치매 등 장기적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많아지는 등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취약한 존재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부분 생애 마지막 6년 동안 약과 의술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아이의 양육 강도도 무척 세졌다. 1900년에는 의식주만 제공하면서 12~15년 아이를 보살피는 것으로 부모의 의무를 다했으나, 오늘날 아이를 낳으면 고등교육, 문화생활 등 정서적 보살핌을 25년 정도 제공해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도전이 된 셈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폭증했으나, 돌봄 시스템은 갈수록 앙상해졌다. 전통 사회에서 돌봄을 담당했던 대가족은 무너져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다시 ‘나 홀로 가구’로 빠르게 해체됐다. 한국의 경우, 2022년 기준으로 나 홀로 가구 숫자는 720만으로 전체 가구의 33.4%에 이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주로 돌봄을 담당하던 가족 내 주체도 여성의 사회 진출에 따라서 고갈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청하고 베풀던 이웃 간 문화도 급격히 증발했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느는데도, 공적 돌봄 서비스는 이를 전혀 뒤쫓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집, 요양원 등에서 종사하는 돌봄 관련 일자리에 높은 임금이나 좋은 노동조건을 제공해 돌봄 인프라를 빠르게 확충하기보다 의료 공공성을 약화하는 등 돌봄을 시장에 내던짐으로써 사회 전체를 ‘돌봄의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그 결과는 기록적 저출생과 증가하는 고독사, 독박 돌봄에 지쳐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간병 살인이다.
돌봄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우리는 취약해졌을 때 충분한 돌봄을 요구할 권리와 함께 서로를 돌볼 의무를 지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그런 의존성에 토대를 두는 돌봄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랑의 노동’을 국가가 더 많이 책임짐으로써 아이를 낳아도, 아파도 걱정하지 않는 사회여야 좋은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개혁을 말하기 전에 우선 새겨들을 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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