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의 아줌마와 2022년의 젊은이, 초상으로 읽는 한국사회

2022. 12. 1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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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그녀는 짙은 루즈를 칠하고 굵은 진주 목걸이를 걸쳤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이, 그녀는 단단한 아줌마가 됐다.

작가는 20여년간 아줌마, 여고생, 군인 등 한국사회의 특정 인물군의 모습을 포착, 그들이 느끼는 공통적 불안감과 정서적 흔들림에 주목해 왔다.

다만 여고생, 군인, 아줌마 처럼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그룹을 이루고, 명료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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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오형근 : 왼쪽얼굴’ 전
오형근 : 왼쪽 얼굴 전시전경, 2022, 아트선재센터. [작가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1999년의 그녀는 짙은 루즈를 칠하고 굵은 진주 목걸이를 걸쳤다. 머리는 곱슬곱슬, 동그란 턱선이 인상적인 앳된 아줌마다. 활짝 웃는 얼굴이 아가씨였을 적 모습을 짐작케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이, 그녀는 단단한 아줌마가 됐다.

2022년의 그녀는 눈매를 강조한 화장을 했다. 아이라인을 길게 빼고 귀에는 피어싱이 여러개, 데콜테 부근엔 작은 문신도 있다. 무표정한 얼굴은 세상에 대한 흥미가 반쯤 사라졌다는 것이 읽힌다. 무심한 공허(空虛). 가장 욕망할 나이, 욕망은 사라지고 없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장언)는 사진작가 오형근의 개인전 ‘왼쪽 얼굴(Left Face)’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06년부터 진행해온 ‘불안초상(Portraying Anxiety)’의 중간결산을 갈음한다. 작가는 20여년간 아줌마, 여고생, 군인 등 한국사회의 특정 인물군의 모습을 포착, 그들이 느끼는 공통적 불안감과 정서적 흔들림에 주목해 왔다. ‘불안초상’은 동시대 한국인들이 감지하는 불안의 징후들이다.

‘왼쪽 얼굴’에 등장하는 인물든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이 있던 이태원을 중심으로 만났던 사람들이다. ‘젊은이’로 불리지만 이전 작업들처럼 계층과 직능으로 특정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유형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구름처럼 느껴지는, 모호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규정되지 않는 이들은 아니다. 개개인을 보면 트랜스젠더, 배우지망생, 다문화가정 출신 등 이들을 규정지을 단어는 많다. 다만 여고생, 군인, 아줌마 처럼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그룹을 이루고, 명료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아닐 뿐이다. 작가는 “레이어가 많은 인물들”이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건 20여년이 지나도 불안의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20년전 피사체는 욕망하는 것이 있어서 불안했다면, 지금의 피사체는 거세된 욕망 때문에 불안하다. 화장하는 여고생은 학생으로 규정짓는 사회에서 자유롭고 싶고, 내조와 뒷바라지를 하는 아줌마는 가족이 잘 되어야한다면서도 본인을 잃어버려 고립감과 격리감 속에 불안해 했다. 그러나 2022년 이태원의 젊은이들의 표정에서는 공허가 읽힌다. 그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불안하다.

마스크 아래 숨긴 무표정은 한국인들의 불안을 가시화 한다. 전시제목인 왼쪽 얼굴의 왼쪽은 좌측이라는 뜻도 있지만 남겨진 흔적으로써 왼쪽(left)이기도 하다. ‘왼쪽 얼굴’전은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1999년에 열렸던 ‘아줌마’전은 아트선재센터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1월 29일까지.

오형근, 진주 목걸이를 한 아줌마, 1997년 3월 25일 [작가 제공]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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