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파업의 본질에 접근 미흡…정부의 ‘노동 혐오’는 설득력 있게 비판
파업만 하면 따라붙는 ‘대란’…노동자에 부정적 인식 확산 우려
월드컵 보도 비중엔 엇갈린 평가…스포츠 민족주의 부각은 불편
전월세·중기보다 주택 보유자·대기업 위주 경제 기사 더 많은 듯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2022년 12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김나리(미디어인큐베이터오리 대표), 박영흠(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신지영(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오지혁(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 윤희웅(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표미정(동명여고 수학교사) 위원이 참석했다. 곽경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이 함께했다.
회의에서는 화물연대 파업 보도를 놓고 상황에 대한 중계를 넘어 파업의 본질에 대한 의제화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월드컵 관련 보도가 지나치게 많다는 의견과 함께 승패에 집착하는 관행을 벗고 선수와 팀의 스토리를 조명하는 시도가 의미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경제 관련 기사가 주택 보유자나 대기업 중심으로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군 입대 현황 등을 분석한 기획 등 데이터저널리즘의 효용성을 보여주는 기사들이 좋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박영흠 = 한국언론의 파업 보도는 대부분 파업의 본질보다 실황 중계에 집중되고 있다. 파업의 원인은 구조적인 데 있는데 이는 새로운 팩트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독자들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파업의 본질에 대해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의제화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경향신문의 보도도 안전운임제가 쟁점이라는 점을 언급은 했으나 맥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부족했다. 그럼에도 분투했다고 평가할 만한 기사들은 꽤 있었다. 11월30일자 <왜곡된 눈으로 ‘불법’ 낙인…대화 아닌 힘으로 누르는 정부>는 주제는 노동 혐오를 드러내는 정부에 대한 비판인데, 안전운임제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이 붙어 수요자 눈높이에서 쓴 기사라 평가된다. 안전운임제와 관련된 새로운 팩트를 발굴해 의제를 던진 기사들도 있었다. 11월28일자 <정부 “안전운임제 효과 불분명” 주장에 해외 전문가들 “1~2년간 조사론 한계”>는 호주와 미국의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한 의미 있는 기사고, 11월29일자 <“16시간 운전, 월 1400만원 벌지만 비용 빼면 300여만원 남아”>는 화물노동자들의 열악한 수입 구조를 제대로 보여줬다. 아쉬운 점은 이번 파업이 노동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대한 분기점이 되는 이슈인데 상황을 수세적으로 좇아가지만 말고 공세적으로 나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화물노동자의 노동 현장을 밀착 취재한다든지 해외 현지 취재를 통해 외국 화물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떤지 알아보는 시도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표미정 = 학교비정규노조도 파업을 했는데 11월14일 기사 제목이 <“급식 대란 오나”…경기지역 학교 현장 내일부터 ‘총파업’>이다. 급식 대란, 물류 대란, 보육 대란 등 노동자들이 파업만 하면 ‘대란’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난해에도 학교비정규직노조가 파업을 했다. 사실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전체 노동자 중 극히 일부다. 급식 노동자들 몇명이 파업에 참여해도 학교 전체가 영향을 받고 급식은 빵과 우유 등으로 대체되는 것은 맞다. 당연히 학생들 입장에서 부족하긴 하지만 급식 대란이라 할 상황은 아니었다. 기사 내용에는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제목을 이렇게 뽑으면 파업과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
김춘식 = <“16시간 운전, 월 1400만원 벌지만…> 기사는 내용이 좋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 기사의 온라인 댓글을 보면 화물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의 질이 아니라 제목에도 나온 총수입에 주목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남들도 대부분 그렇게 산다, 남들도 다 내야 하는 비용인데 파업의 이유가 되느냐는 등의 댓글이다. 요즘 MZ세대들은 삶의 조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입이 아니라 장시간 노동 등 화물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에 주목하는 기사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박영흠 = 월드컵 보도가 과다했다. 지난 5일자 1면 톱기사 <확률 23%는 숫자…브라질도 뚫는다>는 브라질전을 잘하자는 내용이다. 그날 3면에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긴급개입 내용이 실렸는데, 기사 배치 판단이 맞았는지 의문이다. 경향신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도 대부분 월드컵으로 도배돼 있다. 스포츠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과열 보도가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에서 적절한지 싶다. 코스타리카와 독일 경기 때 월드컵 본선 최초로 여성 주심이 심판을 봤다. 경향신문에는 기사가 딱 하나 나왔다. 그것도 코스타리카 감독의 말을 따와 쓴 단신이다. 다른 매체에서는 크게 보도한 이슈인데 너무 소홀하게 다룬 것 같다.
김춘식 = 브라질전 패배 다음날 보면 1면 톱기사가 2면, 3면, 22면, 23면 전면이 월드컵 기사였고, 대부분이 한국팀과 관련된 얘기였다. 경향신문 총 28개 지면 중 5개 면이 월드컵 소식인 것은 과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월드컵 기간에도 중요한 이슈들이 여럿 있는데 독자들이 경향신문이 어디에 주목하고 있는지 평가할 때 오해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윤희웅 = 월드컵 보도를 어떤 수준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적 문제가 월드컵에 가려진다는 부정적 영향도 있겠지만, 전 국민적 이목이 쏠려 있는 이벤트이고 경향신문에는 스포츠경향도 있다 보니 협업이 이뤄지며 월드컵 소식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졌다. 재난이나 젠더 보도에서처럼 스포츠 이벤트 보도에서도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면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승패에 집착하고 이긴 팀 중심의 결과를 보도하는 것을 넘어 선수들의 스토리나 진 팀들에도 주목하는 기사들이 제법 있었다. 스포츠 이벤트에서도 인간적인 얘기를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표미정 = 정부의 2022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해 지난 9일 교육부의 행정예고에서부터 이달 6일 심의안 상정 때까지 여러 기사들로 상세히 다뤘다. 노동자라는 표현이 근로자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었고, 성평등, 성소수자 표현이 삭제된 데 이어 생식이라는 어휘까지 빠진 개정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했다. 특히 7일자 <보수색 덧칠한 새 교육과정, ‘생식’도 지웠다> 기사에는 쟁점을 요약한 표를 넣어서 교육과정 개정의 문제점을 눈에 보이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교육과정은 이 같은 총론뿐 아니라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전 교과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에 대한 분석과 논의가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쉽다.
김나리 = 한국의 주거형태를 보면 자가 점유율은 60%가 안 되고 40% 넘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살고 있지 않은 현실인데 주택 관련 기사는 자기 집을 갖는 것에 집중돼 있다. 전세 대란 얘기가 가끔 나오지만 대출받아 ‘영끌’해서 집 샀다는 등의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 정리해고 문제도 푸르밀처럼 유명 회사나 대기업들의 상황은 많이 다루지만 작은 기업들이 얼마나 많이 정리해고 하는지, 스타트업의 도산이 얼마나 심각한지 등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 기사들이 자가 거주자나 대기업 중심으로만 다뤄지는 것은 문제다. 지난달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 대해 다른 언론들은 많이 다루지 않았지만 경향신문은 기사를 10개나 써 매우 반가웠다. 행정안전부가 가수 이랑씨의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공연 곡을 검열했다는 의혹에 대해 11월30일 <행안부 ‘가수 이랑 노래 검열’ 의혹에…문체부 “별도 입장 없다” 뒷짐> 기사와 정동칼럼 등을 통해 다뤘다. 월드컵 때문에 많은 것이 잊혀지고 그냥 넘어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안을 빼먹지 않고 다뤄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데이터저널리즘 활용 눈길…기후·환경 분야 적극적 목소리 응원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교열 등 기사의 디테일 부분은 보완 당부
윤희웅 = 눈에 띄는 데이터저널리즘 기사들이 많았다. 지난달 17일자 <‘신의 아들’은 여전히? 고위공직자 아들들은 직할부대에 많았다>는 우리 사회에 은밀하게 남아 있는 군대 관련 특혜와 부조리에 대한 의혹을 데이터 실증으로 보여줬다. <기울어진 운동장, 대입 교육> 시리즈도 부유한 사람들이 입시에서 승자가 되는 현실을 데이터로 밝혀냈다. 데이터를 깊이 있게 분석해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의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아쉬운 건 데이터의 그래픽 시각화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지난 5일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경향신문 선정 2022년 디딤돌·걸림돌 판결>은 잘 기억되지 못하지만 의미 있는 판결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며 한 해를 정리하는 좋은 기획이었다고 평가한다.
신지영 = <‘신의 아들’은 여전히?…> 기사는 공정과 정의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준 기사다. 기사를 보니 실제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현역 판정 비율이 생각보다 그리 낮지는 않았지만 편한 보직에는 많이 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문제점이 보였다. 11월9일 나온 <정부의 ‘참사 공문’과 ‘사고 공문’, 슬픔을 대하는 시선부터 달랐다>도 10·29 참사 관련 공문들을 입수해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참사를 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사였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민간인들이 어떻게 고문을 당했고, 조폭으로 몰렸는지 등 인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시리즈, 10·29 참사와 관련된 4회의 연속 기획, <기울어진 운동장, 대입 교육> 시리즈 등도 돋보이는 기획이다. 11월23일 나온 <국민의힘 조수진 “MBC 사태, 홍보수석실이 접근을 대단히 잘못”> 기사에서는 사실관계가 문제되는 부분이 있다. 기사를 보면 ‘지난 18일 출근길문답 과정에서 대통령실 비서관과 MBC 기자가 설전을 벌인 일과 관련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설전은 출근길문답 과정에서가 아니라 끝나고 나서 발생했다. 마치 출근길 문답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잘못된 사실관계다.
오지혁 = 11월24일자에 <환경기술 개발 30년의 결실, 함께 만드는 녹색미래>라는 제목의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기고가 실렸다.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는 기후문제 있어 산업자원부보다 더 산업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고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나 생태 정책에서 역행하는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 또 한 장관은 기후문제와 관련해 기업에 얼마나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많이 얘기하는 분이다. 기고문도 이 같은 취지의 내용이 들어 있는데 왜 경향신문에 실렸는지 의문이다. COP27 관련해서는 경향신문에 기사가 많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논조도 대체로 한국의 책임을 짚어냈다. 이 같은 관점도 좋은 시도이지만 기후 문제에 있어 한국의 가해자성을 좀 더 명확하게 짚어내고 책임질 필요가 있다는 담론이 필요하다. 경향신문이 기후·환경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기후 위기와 관련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짚어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곽경란 =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국가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한 것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세심하게 분석했다. 기중기 진압의 쟁점과 손해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정확하게 설명해 사건 이해가 쉬웠다. 손해배상소송이 ‘마지막 진압장비’였다는 제목의 기사 역시 사건의 본질과 소송경과를 잘 포착했다. 유튜브를 통해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도 서로 다른 매체의 장점을 녹여 조화를 이뤄낸 좋은 시도였다. 다만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이 오래전 일이라는 것을 고려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기사에 ‘2009년 회사의 정리해고에 반대한 옥쇄파업’이라고만 돼 있는데, 파업의 경위나 정당성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해주었으면 독자들이 이 판결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기사들에서 어법, 표기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띈다. “학업성취도보다 가정 환경 등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등’ 뒤에 조사인 ‘이’가 빠져 있다. ‘쟈니즈’처럼 외래어 표기법을 어긴 사례도 있었다. 벤투 감독이 ‘16강 진출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다’는 기사는 ‘강변’의 사전적 의미를 고려하면 적절하지 않은 문장으로 보인다. 교열에 좀 더 신경써주면 좋겠다.
정리 |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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