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는 ‘낮은 곳’에 더 매서웠다

김세훈 기자 2022. 12. 1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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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주거지 가보니
경기 북부지역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19일 찾아간 경기 포천시 가산면 일대 이주노동자 숙소의 모습은 열악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설치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용변은 야외에 설치된 재래식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했다. 하우스 입구에 위치한 욕실 내부는 한기가 돌았다. 포천 |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비닐하우스살이’ 이주노동자 “패딩 차림으로 화장실 가”
서울 한복판 쪽방촌에선 “등유값 올라 이불 감고 밥 먹어”

19일 경기 포천시 가산면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수백동 위에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비닐하우스 전부가 농작물을 키우는 곳은 아니었다. 일부는 말 그대로 비닐로 만들어진 하우스, 즉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샌드위치 패널로 세운 가건물이 보였다. 4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 A씨(29)는 “어두운 밤 패딩 차림으로 털양말까지 신고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가 가장 불편하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B씨(29)는 경기 김포시의 한 제조공장에서 일한다. 오후 7시에 일이 끝나면 B씨는 10㎡ 남짓한 컨테이너 가건물에 몸을 누인다. 방에는 잠금장치도 없고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지만 숙소비로 매달 25만원을 낸다. B씨는 “춥고 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있으니 우울감이 심하다”고 했다. 6개월 전 김포고용센터에 열악한 주거환경을 신고한 적이 있다. 그러자 고용주는 B씨와 동료의 숙소를 일반 주택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들은 한 달쯤 뒤 다시 원래 있던 가건물로 돌려보내졌다.

B씨는 지난달 14일 김포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류상 거주지가 가건물이 아닌 ‘주택’으로 등록돼 있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타향살이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아늑한 집’은 낯선 개념이다. 2020년 12월20일 영하 15도의 날씨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이 임시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사망한 후로 고용노동부는 컨테이너를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고용을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 이주노동119가 지난 9월 발표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상담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이주노동자 66명 중 30명이 비닐하우스 살이를 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의 가건물은 대체로 컨테이너를 뜻한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C씨(30)와 D씨(28)는 지난해 2월26일부터 충북 논산시의 한 딸기 농가에서 일을 시작했다. 숙박시설을 제공받는 대가로 매달 임금에서 14만3000원을 공제한다고 근로계약서에 써 있었지만, 농장주는 이들에게 폐가를 안내했다.

설상가상으로 농장주는 두 사람에게 약속보다 더 많은 숙박비를 받아갔다. 월 36만~41만원을 임금에서 공제한 것이다. 올해 2월에는 난방비와 전기요금 명목으로 140만원을 추가로 걷어간 적도 있었다. 지난 3월 이주노동자지원단체 지구인의정류장을 통해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뒤에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노동부가 직접 주택상황을 살피지 않고 관행적으로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숙소를 주택으로 허위 신고하고 실제로는 가건물에 살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주에 돌아봤더니 반경 5㎞ 내 농장 15곳에서 노동자 40여명이 불법 가건물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장주의 90%는 임차농이라 숙소를 짓고 싶어도 못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 행정적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쪽방촌은 유독 겨울나기가 힘든 곳이다. 특히 올겨울은 강추위에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겨울을 지내기가 한층 힘겨워졌다. 서민 연료인 등유가격이 올해 초 1100원대에서 현재 1700원대로 50%가량 뛰었다. 2년 전 장당 700원에 팔리던 연탄도 올해 850원으로 올랐다. 올해 전기요금은 세 차례에 걸쳐 kWh당 19.3원 인상됐다.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은 1000여명이 모여 사는 서울 최대 쪽방촌이다. 지난 17일 방문한 이곳은 영하 10도의 날씨 탓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동자동 쪽방촌 비탈길 중턱에 있는 이순자씨(77)의 집문 안쪽에는 이불이 걸려 있다. 한파에 대비해 이달 첫째주에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요즘은 가스비를 줄이려 이불로 몸을 감싸고 그 안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돈의동 쪽방촌 상황도 비슷했다. 한 쪽방 건물 3층에 손모씨(60)가 살고 있었다. 3.3㎡ 남짓한 방에 사는 그는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을 받아 월세로 24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한다. 손씨는 내복 위로 옷을 여러 겹 껴입는 방식으로 추위를 버틴다고 했다.

쪽방촌 주민인 김선학씨(47)는 무료급식소와 연계해 틈틈이 주민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한다. 덕분에 쪽방촌의 주거환경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김씨는 “술을 마시면 몸이 달아올라 추위를 견디기 용이하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겨울철에 술을 더 많이 먹는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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