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한국 반도체, ‘반쪽 우등생’ 틀 깨라[아듀 2022 송년기획 - 기로에 선 K반도체]
교육·설계·생산 근본대책 절실
산업 부문에서 올해는 ‘반도체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 급감과 국제적 위상 부각에 울고 웃은 것은 거의 다 반도체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정보기술(IT) 부품 차원을 넘어선다. 미국·중국 간 갈등의 중심에 반도체가 놓여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올 5월 방한 당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으로 달려간 장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앞서 일본이 2019년 7월 대한국 수출통제를 가한 것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관련 3대 핵심소재였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를 보유한 한국의 위상이 남다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반도체 업계는 설계부터 소재, 장비, 생산까지 국제 분업체계로 짜여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반도체를 만드는 데 5~6개 지역이 참여한다.
예컨대 내년 상반기 나올 삼성전자 갤럭시S23에는 미국의 퀄컴이 설계한 ‘스냅드래곤8 2세대’가 탑재된다. 퀄컴은 설계도 일부를 영국의 설계자산(IP) 업체인 ARM에서 가져다 쓴다. 설계도를 그릴 때 사용하는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EDA)은 미국의 시놉시스나 케이던스의 것을 이용한다.
설계가 끝나면 한국의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가 칩을 위탁생산한다. 이번 스냅드래곤은 TSMC의 4나노(㎚·10억분의 1m) 공정에서 전량 생산되는데, 이는 네덜란드나 일본에서 만든 첨단장비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미·중 갈등은 이들 물류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망의 주요 선수로 등장하기 시작해서다.
화웨이나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은 자체 설계한 AP를 내놨고,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는 14나노 반도체 양산에 이어 7나노 반도체 생산에 성공했다. 중국 YMTC도 올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한국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이런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위협을 느낀 건 미국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정부에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참여를 요구한 것도 동맹국끼리 공급망을 재편, 강화하려는 의도다.
한국 반도체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공급망의 리더인 미국을 따를 것인가, 최대 시장인 중국도 아우를 것인가. 게다가 우리는 그동안 메모리 위주의 ‘반쪽 우등생’에 가까웠다. 외주생산(파운드리)을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라는 더 큰 시장은 아직 도전의 영역이다. 이제 한국 반도체의 재도약을 향해 교육부터 설계, 생산까지 기존 틀을 바꾸는 근본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로에 선 K반도체’의 민낯을 총 3차례에 걸쳐 짚어봤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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